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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독도라이더의 탄생 - 여행을 떠나기 전의 준비 과정

당시 나는 젊었고, 열정적이었고, 꿈이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멍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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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학교를 쉬어야 한다든가 여행이 위험하다든가 경비가 1억이 넘게 든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독도라이더 결성

당시 나는 젊었고, 열정적이었고, 꿈이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멍청했다. 1년 동안 학교를 쉬어야 한다든가 여행이 위험하다든가 경비가 1억이 넘게 든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딱 10초. 아니, 다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을 먹는 데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어느 만화책에서 악당이 한 말이 있다. “최초의 충동을 유지한 자만이 꿈을 이룬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두근거린다.

왜 여행을 떠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지만, 나는 분명 여행을 시작할 때의 마음과 떠날 때의 마음이 달랐고, 돌아온 뒤의 마음은 더욱 달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두근거렸기 때문입니다.”라고.

여행을 제일 먼저 구상한 것은 군대에서 만난 강상균 형이었다. 3월의 화창한 어느 날, 형은 같은 부대에서 지냈던 강석이 형과 함께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때까지 모터사이클 면허는커녕 125cc 모터사이클도 타보지 않았는데도 이미 세계횡단을 하자는 결심이 굳어 있었다.

함께하기로 ‘너무 쉽게’ 결정한 뒤에 강상균 형과 함께 강석이 형까지 만났다. 우리는 금방 진지한 회의를 벌였다. 점심때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저녁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나는 저녁 약속이 따로 있었지만 중간에 일어서기가 못내 아쉬워 결국 약속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이리로 올래?” 그때 만일 김상균 형이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정을 가끔 해본다. 사실 김상균 형은 ‘모터사이클 세계 횡단’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1등을 하던 모범생. 마른 체격에 하얀 얼굴. 조용한 말투……. 그러나 그날 나는 즉석에서 김상균 형을 꼬드겨 버렸다. “형, 이건 우리 인생을 바꿀 최고의 여행이 될 거야!”


원칙을 세워라

독도라이더는,
1) 구성원 개개인의 ‘배움과 성장’을 원칙으로 한다.
2) 전 세계 횡단 여행 도전에 그 목적을 둔다.
3) 독도의 대한민국 주권 확립에 기여한다.
4) 도전 정신과 열정의 가치를 모터사이클을 통해 표현한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확실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물론 이것을 정하기까지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왜 독도라이더에 독도가 가장 첫 번째 원칙이 아니냐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우리 대신에 독도를 훨씬 잘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래서 이 사람에게 여행비를 지원해주는 편이 좋다고 하면 우리는 여행을 포기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의 여행은 독도를 위한 여행이기도 했지만, 우리를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첫 번째 원칙 ‘구성원 개개인의 배움과 성장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 이기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마음가짐 덕에 우리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나는 손이 찢어지도록 장구를 치고, 주변의 사람들을 붙잡아 서명을 받고, 못하는 영어 연습해 가며 미국 대기업의 CEO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외국 언론을 찾아가 한 번이라도 더 독도를 알리고, 죽을 고비 넘기며 여행을 하고……. 하지만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초코파이가 좋아 교회 갔다가 정말 신자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남들보다 일 년이나 늦게 졸업을 해야 한다. 끝내 경비가 부족해서 빚을 졌고, 승일이는 돌아오자마자 친구들이랑 술 한 잔 못 하고 바로 입대했다. 하지만 무엇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고군분투 준비기

매주 수요?과 일요일마다 모여서 회의를 했다. 매주 회의 시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독도 세미나였다. 핵심은 물론 독도가 우리 땅이 맞는가 하는 점이다.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 일본 측의 주장부터 먼저 살펴보았다. 일본 측 자료만 보아 온 사람이라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믿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결코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독도는 단순히 두 나라의 영토 분쟁이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의 문제이다. 영토 분쟁에서는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게 마련이지만, 독도만큼은 명백히 한국의 영토라고 할 수 있다.

독도에 대한 공부와 동시에 여행 준비도 해야 했다. 일단 모터사이클부터 한 대씩 구입했다. 강상균 형은 내 친구인 상현이에게서 헐값에 마그마를 샀다. 형은 운동신경이 좋아서 몇 달 사이에 몇 년을 탄 나보다 더 잘 탈 수가 있었다. 강석이 형은 학비 마련으로 회사 일에 바빠서 조금 더뎌졌고, 김상균 형은 모터사이클마저도 학원에서 돈 주고 배웠다. 유난히 조심성이 많은 형은 안전 장비를 다 갖춘 다음에야 모터사이클을 타고 선선한 저녁바람을 쐬면서 동네를 한 바퀴씩 산책했다.

우리는 경비도 지원받고 행사의 공식적인 면도 부각시키기 위해 이곳저곳에 도움을 구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지금껏 실패한 사례를 더듬어 보자면 전화로 몇 마디 부탁을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 따위가 전부였다. 어렵지 않게 부탁하면 그만큼 상대방도 쉽게 거절한다. 하지만 내가 평범하지 않은 정성을 쏟는 순간부터 상대방 또한 변화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나는 이것에 대해 철저할 정도로 배웠다. 물론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결과가 돌아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K기업에 연락을 하면서는 심지어 텔레마케터 취급을 받으며 비아냥거리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막상 뒤집어 생각해보면 아직도 대접받고 싶은 엘리트 근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아 그냥 씁쓸히 웃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막판 뒤집기

여행 준비 8개월 만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헤럴드 미디어의 이충희 편집장님과 안주영 기자님이 <캠퍼스 헤럴드>를 새롭게 창간하는데 우리 이야기를 싣고, 여행 준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모터사이클 연습과 독도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정작 여행 경비 마련에는 좀처럼 진척이 없었던 차였다. 두 분의 도움으로 우리는 드디어 기업에게 찾아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여러 기업 문을 두드렸다. 몇몇 기업은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그중에서 처음 긍정적인 답을 준 곳은 기업은행이었다. 기업은행에는 독도 통장이 있었는데, 여기에 모인 기금 중 일부를 우리에게 지원해주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는 법인도 아니고, 단체도 아니기 때문에 막상 지원을 해주려 해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개받은 곳이 흥사단이었다. 우리는 바로 114에 전화를 걸어 흥사단 번호를 알아내고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그때 우리의 추진력은 정말이지 들소 같았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조언을 들으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흥사단에서 도움을 받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해가 바뀌고 1월이 되었다. 어렵사리 흥사단에서 지원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정작 기업은행에서는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실질적인 결과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아 우리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떠난다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닐까?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났다. 계속 우리 건을 검토 중이었던 GS칼텍스에서 결정이 난 것이다. 그때 담당자였던 준완이 형은 ―이일을 계기로 형으로 부르게 되었다.― “영빈아, 됐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전해 주었는데, 전화기에서 그 목소리를 들을 때의 짜릿한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GS칼텍스에서 5천만 원 지원이 결정되고 동아일보에 기사가 나가면서 기업은행에서도 2천만 원을 지원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게다가 국정홍보처에서 천만 원의 기금을 지원하고 각국의 대사관 및 영사관으로 독도 홍보 자료를 보내주시고 싶다는 뜻을 밝히셨다. 지원금도 지원금이지만 각국에서 홍보 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이 모두가 여행을 떠나기 겨우 2주 전에 벌어진 숨 가쁜 일들이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독도 라이더가 간다>는 ‘샘터’와 제휴하여 매주 금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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