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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경쾌한 도발 - <식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는 단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의 슬픔만을 다룬 영화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2억 5천만에 이르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나머지 미국인들의 이야기이자 미국 의료 보험 제도 자체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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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경쾌한 도발 <식코>

마이클 무어의 경쾌한 도발, <식코>

선진국 중 유일하게 민영 의료보험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5000만 명이 의료 보험에 미가입 상태이다. 이들은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무런 재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막대한 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는 단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의 슬픔만을 다룬 영화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2억 5천만에 이르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나머지 미국인들의 이야기이자 미국 의료 보험 제도 자체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다.

잘린 두 손가락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화씨 9/11> 이후 다큐멘터리스트 마이클 무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국내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상영되기도 했던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 같은 비판적인 영화들 속에서 마이클 무어는 ‘피해망상증 환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되며, 그의 영화 속 묘사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확실히 ‘아들 부시’의 재선에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영화 <화씨 9/11>은 당대에 요구되는 정치적 시선을 잘 담아내기는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돋보이게 하려는 ‘인위성’이 거슬리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미덕으로 지니고 있는 ‘객관성의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주관적인 시점으로 영화를 진행해 나가며 냉정하게 사실에 접근하기보다는 매우 감정적이고 때로는 야유에 가까운 풍자와 조롱도 서슴지 않는다. 부시의 외교 정책을 비판한 <화씨 9/11>은 그런 그의 조롱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영화다. 하지만 이런 주관적인 서술과 풍부한 유머로 인해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엄청난 대중성과 영향력을 가진 것 역시 사실이다.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벌어지는 미국 보수 매체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그런 영향력의 반증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에서 현행 미국 의료 보험 시스템의 주역으로 지목하는 리처드 닉슨

늘 엄청난 논쟁이 뒤따랐던 그의 전작에 비하면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식코>는 오히려 마이클 무어 영화를 구성하는 두 축 즉, ‘사실(fact)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와 ‘흥겨운 조롱이 중심이 된 대중성’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무어의 영화들은 그 주관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화자(話者) 즉, 마이클 무어 자신과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흥미로운데, 비교적 주관성이 도드라져 보였던 영화인 <로저와 나><화씨 9/11>에 비해 자신과 주제와의 거리가 비교적 떨어져 보이는 영화들인 <볼링 포 컬럼바인><식코> 등이 좀 더 설득력을 지닌다. 촛불집회 당시 야외 상영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영화에서 다루고자 하는 소재는 서두에 밝힌 것처럼 ‘미국의 의료 보험 시스템’이다. 영화의 시작은 보험에 들지 못해 직접 자기 손으로 상처를 꿰매는 남자, 잘린 두 손가락, 1만 2천 불짜리 약지와 6만 불짜리 중지의 접합 수술 중 ‘싼 쪽’을 선택해야 했던 남자, 의료 보험에 가입했지만 파산하고만 중산층 부부의 모습이 익숙한 마이클 무어의 나레이션과 함께 보인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스템의 피해자들의 모습 뒤에 이 ‘비열한 시스템’의 근원을 뒤쫓는다. 닉슨으로부터 비롯된 시스템의 시작, 힐러리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민간 보험 회사들의 로비로 유지되는 정책 시스템. 다른 영화들처럼 <식코>에서도 이토록 이상한 시스템에 의해 막대한 이득을 얻는 것은 소수의 위정자와 회사와 이로 인해 고통 받게 되는 수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풍자는 이 영화에서도 지속된다. 국회의원들의 로비 액수를 보여주는 장면.

명쾌한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도 썼던 방법 즉, ‘왜 이 시스템을 미국인들만이 받아들여 고통 받고 있는가?’라는 비교법을 선보인다. 영화에는 국가의료시스템에 유지되는 나라들 즉, 캐나다, 영국, 프랑스와의 비교를 통해 ‘미국 의료 보험 시스템’의 어이없음을 강조한다. 재미있는 점은 개개인의 사안들은 꽤 고통의 강도가 높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가볍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특히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에 가서 천연덕스럽게 ‘약값이 얼마냐?’나 ‘진료비가 얼마냐?’라고 집요하게 캐묻는 마이클 무어의 모습이 유머러스한데, 철저히 미국인들의 상식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런 그의 태도가 아마도 미국인들의 대중적 호응도를 얻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국가 의료 보험 체계인 ‘캐나다 의료시스템’을 맹비난하는 미국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 뒤 치료비의 개인 분담금이 거의 없고 자신들의 의료시스템에 만족해하는 캐나다인들과 더 낫거나 유사한 영국과 프랑스의 의료 시스템을 보여주며, 얼마나 미국의 의료 보험 시스템이 비극적인가를 역설하는 마이클 무어의 이런 대비법이 가장 절정에 달하는 장면은 후반부에 보이는 9/11 영웅들의 쿠바 방문 장면들이다. 9/11 사건 당시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소방관이나 응급 구조 요원들이 미국 의료 보험 체계 속에서 거의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다가 정작 ‘미국의 적’으로 손꼽히는 쿠바에서 ‘거의 무료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9/11의 미국 영웅들은 정작 ‘적국’ 쿠바에서 환대를 받는다.

마이클 무어의 전작에 비해 <식코>는 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데, 영국 노동당의 오랜 리더였던 토니 벤이나 체 게베라의 딸이자 쿠바의 의사인 알레이다 게베라 등의 목소리를 통해 공적 의료 보험 시스템이 ‘인간을 위한 예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요건이며 이런 시스템은 다수가 참여하여 요구해야 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이런 태도는 표면적인 문제가 더 눈에 잘 띄었던 그의 전작에 비해 좀 더 심층적으로 문제를 접근하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식코>는 올 상반기 최고의 ‘공포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민간 의료 보험 시스템’이 갖춰진 미국에선 쿠바에서 1달러 미만으로 구입하는 약을 120배 비싼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고, 응급실에 실려간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이 가입한 의료 보험 회사의 승인이 떨어져야 하며, 잘린 두 손가락 중 어느 쪽 손가락을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의 도입 여부가 한때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으며 이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TV에서 ‘의료 관광’을 온 미국인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식코>는 그들이 왜 ‘값싼 의료비’를 찾아 ‘관광’까지 가야 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다.

다큐멘터리로서 <식코>의 영상퀄리티는 매우 준수한 편.

1.85: 1 화면비의 <식코>는 HD 포맷으로 촬영된 영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의 화질을 논하는 일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마이클 무어의 제작진이 촬영한 장면들의 영상 퀄리티는 무척 깔끔한 편이지만, 이 영화에는 수많은 인용 화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홈무비부터 뉴스 화면들의 영상 퀄리티는 아무래도 떨어지는 편일 수밖에 없고, 밤 장면 등에서는 영상 퀄리티가 떨어지는 편이다.

음향 퀄리티 역시 깔끔한 편.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퀄리티는 준수한 편이다. 마이클 무어의 나레이션과 인터뷰 그리고 배경 음악으로 채워진 영화들의 음향 디자인은 다큐멘터리 장르이므로 특기할 만한 부분도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열악하기만한 것도 아니다. 풍자적인 음악들이 깔끔하게 재생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꺼내드는 사람들의 감정은 충분히 잘 표현되고 있다.

영화를 계기로 추진 중인 법안 브리핑장에서 연설하는 마이클 무어(좌)

마치 휴양지 같은 분위기의 노르웨이 감옥(우)

쿠바에서도 종교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수녀님(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잘 설명해 주는 토니 벤(우)

열정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체 게베라의 딸, 알레이다 게바라 (좌)

빈민가에서 이루어진 <식코>의 프리미어 현장(우)

이 DVD의 서플먼트는 꼭 챙겨볼 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영화에서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캐나다, 영국, 프랑스, 쿠바 등을 비교하고 있는데, 사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들이 ‘과장’이라고 생각한 프랑스의 복지 시스템을 능가하는 한 나라를 더 살펴보았다. 그 나라는 바로 노르웨이로, 범죄자들에게조차 복지 개념이 적용되는 노르웨이의 현실은 마이클 무어가 생각해도 너무 대단해서 본편에는 수록하지 않았다. DVD의 서플먼트에는 미국인들이 ‘믿기지 않는 이상 국가’로 프랑스를 묘사했다는 언론 보도와 함께 노르웨이의 상황을 보여주는 This Country beats France(10분 2초)가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이 영화를 계기로 미국 의회 내에서 국가 의료 보험 체계를 주장하는 H.R. 676 법안이 브리핑되는 현장을 담은 Sicko Goes To Washington(8분 42초), 모금 운동을 통한 도움도 무력화되는 상황을 담은 Uniquely American(4분 38초), 미국의 기업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복지 시스템을 따른다는 인터뷰를 담은 What If You Worked For G.E. In France(3분 28초),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에도 종교 활동이 허용된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Sister Mary Fidel(1분 28초), 의료 보험 시스템의 외곽에서 희생된 텍사스 주민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Who Would Jesus Deny? (6분 6초), 본편에도 등장하는 영국 노동당의 원로 토니 벤의 좀 더 긴 인터뷰를 담은 More With Mike & Tony Benn(16분 17초), 알레이다 게바라, 하버드 법대 교수인 엘리자베스 워렌, ‘제약 회사의 진실’의 저자인 마르시아 엔젤의 인터뷰가 수록된 Interview Gallery(26분 49초), 로스앤젤레스의 빈민층에게 상영된 특별한 프리미어를 다룬 A Different Kind Of Hollywood Premiere(2분 44초) 등이 담겨 있다. 그 외에도 뮤직 비디오와 극장용 예고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식코(Sicko) S.E.』

감독 : 마이클 무어

주연 : 마이클 무어

Spec

화면 1.8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음향 돌비 디지털5.1 서라운드

더빙 영어

자막 한국어,영어

상영시간 123분 4초

지역코드 DualLayer / Region 3

제작년도 2008년
                                        출시일자 2008년 7월 23일

Special Features

- 식코, 워싱턴에 가다!

- 미공개 장면 모음

- 인터뷰 갤러리

- 조금은 특별한 <식코> 식 시사회장

- 뮤직 비디오 "Alone Without You"

- 극장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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