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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탈출의 꿈,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제자리에 - 오에 겐자부로의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

일본 시코쿠 산맥에 위치한 작은 분지 마을 반나이. 어느 날 이 마을 사람들 50여 명이 마을을 버리고 돌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고, 그들의 행방도 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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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뇰 콤푸렌데? 당신은 이해합니까?

나운 세뇰 나운 콤푸렌도! 아니요,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본 시코쿠 산맥에 위치한 작은 분지 마을 반나이. 어느 날 이 마을 사람들 50여 명이 마을을 버리고 돌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고, 그들의 행방도 묘연했다. 개중에는 TV까지 켜놓고 떠난 집도 있었다. 촌(村)의 지도자들은 이 해괴한 사건을 일단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외부에 알려질 경우 큰 소동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 년. 마을은 여전히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은 왜 떠난 것일까?

여기, 반나이 마을 사람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두 남자가 있다. 화자인 ‘나’와 삼림감시원. 두 사람은 도쿄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대학 동기다. 졸업 후 ‘나’는 도쿄의 한 언론사에 입사했고, 친구는 고향인 시코쿠로 내려가 삼림감시원이 되었다. 삼림감시원의 일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삼림 깊은 곳까지 펼쳐진 길을 지프로 달리면서 도벌꾼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삼림감시원이 ‘나’에게 보낸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자네는 모든 주민이 도망쳐 버린 마을을 보고 싶지 않은가?”

인적이 전혀 없는 깊은 숲 속을 지프로 몇 시간씩 달려 도착한 반나이 마을. 1년 간 사람의 손길이 끊긴 그곳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논밭은 완전히 황폐해졌고, 마을의 집들은 대문과 창이 모두 한밤중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반면에 집 안은 놀랍도록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그것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소농가의 실내 모습이었다. ‘나’는 버려진 분지 마을을 보고 거대한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마을 사람들이 몽땅 미쳐 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떠난 것이 아니라 정말 조용히 침착하게 떠났어. 그렇지 않았으면 발각이 되었겠지. 그들은 심야에 야생동물들처럼 묵묵히 대삼림을 넘어갔어. 만일 확실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알고 싶네. 이 촌(村)에 큰 재앙이 떨어져서 우리가 모두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라도 있었다면 우리도 모두 도망가야 될 텐데!”

우리는 웃는 대신에 어쩐지 서로의 마음 밑바닥을 의혹에 차서 엿보는 듯한 우울한 시선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6개월 뒤. 마을 사람들이 발견된 곳은 도쿄의 한 도장(塗裝)공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단조로운 업무를 반복하고 있었다. 삼림감시원 친구가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그들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간신히 알아낸 정보는 마을의 한 소년이 ‘에히노콕스’라는 희귀병에 걸려 도쿄의 한 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 ‘나’와 삼림감시원은 반나이 마을의 장로 2명을 수소문해서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도 반 년 뒤에 돌아갈 거라는 말 외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대학병원에 있는 그 아이의 병이 마을을 나온 이유입니까?” 삼림감시원은 노인의 암시적인 말투를 금방 물고 늘어졌다.

“아이지.” 백발노인은 미움에 차서 내뱉듯이 말했다. 머리가 벗겨진 노인은 얼굴을 붉히며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왜 촌을 떠난 겁니까?”

삼림조합감시원은 결연히 그에게 가장 긴급한 질문을 들이댔다. 두 노인은 잠자코 무시했다.


다시 6개월 뒤. 그들은 거짓말처럼 마을로 되돌아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귀환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시코쿠를 향해 출발한다. 본 디어(안녕). 반 년 만에 만난 삼림감시원 친구는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할아버지가 보던 책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시코쿠의 작은 마을에서 아흔 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한때 브라질로 건너갈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와 삼림감시원은 1년 전처럼 어두운 숲길을 달려 반나이 마을로 향한다. 2년간의 방랑 끝에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황폐해진 마을을 조직적으로 재건하고 있었다. 논밭의 잡초를 태우는 연기가 온 마을에 자욱했다. 마을 입구에 선 두 사람. 삼림감시원은 마을 사람들이 언젠가는 다시 떠날 거라고 말한다. 희귀병에 걸린 아이는 그저 하나의 핑계였을 뿐이라고, ‘다시 이 분지에서 떠나고 싶다는 희망, 또는 이곳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면 무언가 가공할 일이 벌어져서’ 그들은 기어코 마을을 떠날 계기를 만들고야 말 거라고.


“사실은 저 농부들보다도 여기 있는 내 자신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자네도 역시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나? 우리는 우정이라기보다 그런 욕구불만으로 맺어져 있는 건지도 몰라.”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외쳤다. 당신은 이해합니까? 나도 브라질식 포르투갈어로 대답하려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에게 배운 단 하나의 문장뿐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그리고 자신의 속좁은 망설임을 도려내기라도 하듯이 역시 큰소리로 외쳤다.

“나운 세뇰 나운 콘푸레엔도!(아니요,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으로, 1964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 대작가의 젊은 시절 관심사와 고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초기 작품이다. 전후 일본의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도 결코 작지 않다. 우선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라는 제목부터가 사뭇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어감이 뿜어내는 이국적인 느낌이라니. 듣기만 해도 남미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낯선 도시의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한편으로 이 작품은 우리의 잠재된 욕망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누구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저 삼림감시원의 할아버지처럼, 평생 동안 꿈만 간직한 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다. 물론 화자인 ‘나’처럼 마음 한편으로는 떠나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강하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나이 마을 사람들의 ‘엑소더스’는 성공이었을까 실패였을까. 그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도착한 곳은 고작 도쿄 변두리의 공장지대였다. 거기엔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은 그것을 품고 있을 때에만 꿈이다. 현실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꿈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이 일탈은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일탈의 욕망은 소중하다. 그것은 어찌해 볼 수 없는 팍팍한 일상 속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에 우리 뇌가 분비하는 도파민처럼, 일탈의 꿈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계속 견디게 해 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북돋아 준다.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
오에 겐자부로 외저/ 오경 외역 | 소화 | 2001년 11월

이 책에 담긴 오에겐자부로의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심적인 이방인들에 관한 내용인데 어느 한 산골마을에서 갑자기 모두들 자취를 감춰버리는 일을 계기로 그 자신도 삶을 반추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전의 오에의 글에서는 흐름이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나 이 작품은 왠지 작위적으로 연결된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이것은 초기의 작품이라 그런모양이다. (Doris 님의 리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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