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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인권 이전에 보호되어야 할 것은 - 『법 앞에 평등하라』

『법 앞에 평등하라』에서 나오는 수많은 딜레마와 수많은 피해자의 이야기는 단지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피해자의 인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정말로 보호해야 할 것은 범죄자의 인권이 아니라,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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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열혈 주인공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헬로우 블랙잭』의 주인공 같은. 그가 의사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양심을 견지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만 끌어가는 상황은 다분히 유아적이다. 대체로 열혈 주인공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타인을 배려하기 이전에, 자신의 목적을 향해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혼자 열심히 노력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 스포츠라면 그런대로 가능하겠지만, 복잡한 상황과 입장이 얽혀 있는 현실 사회에서 열혈은 대체로 ‘민폐형’ 인간이다.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쓰고 카와라니사이가 그린 『법 앞에 평등하라』의 주인공 도모토 다카시 역시 그런 열혈 주인공이다. 다카시가 변호사를 지망한 이유는 어린 시절 이지메를 당하던 약자였기 때문이다. 자신 같은 약자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변호사가 되었다. ‘법률을 다루는 변호사라면 누구보다 정당하게 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대형 법률회사에 들어간 신인 변호사 도모토 다카시는 일종의 사회봉사를 위한 부서로서, 일반시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 센터라 할 'professional volunteer', 통칭 ‘프로볼 부서’에 배속된다. 그러나 처음 맡은 사건부터 다카시는 흔들리게 된다.

남편의 낭비벽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보였지만, 의외로 사건에는 복잡한 이면이 있었다. 게다가 처음 사건을 맡은 다카시는 남편이 고용한 변호사에게 마구 휘둘린다. 우왕좌왕하는 다카시에게, 선배 변호사인 스기자키가 말한다. “법률이 약자를 보호하진 않아. 법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강력하고 편리한 무기다. 법은 이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의 목숨을 대놓고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즉, 변호사는 모두 총잡이다.” 법은 절대적인 정의가 아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최대한 지금 존재하는 법을 이용하여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어야 한다. 동정이 아니라, 정의가 아니라, 승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이 법률을 심판할 수는 없어. 변호사에게 가능한 건 지금 있는 법률을 최대한 이용해서 의뢰인이 바라는 결과를 내는 것뿐이지.”

『법 앞에 평등하라』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 마루쵸』『시마네의 변호사』 등의 만화와 엇비슷하지만, 지향점은 약간 다르다. 『법 앞에 평등하라』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한 정의가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와 구제다. 가해자의 인권은 프랑스 혁명 때부터 옹호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당하고 짓밟혀왔다. 피해자를 대신하여 국가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범죄자가 징역을 사는 것만으로 피해자의 억울함은 해소되는 것일까?

『법 앞에 평등하라』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미성년자가 중년 남자를 폭행하여 죽인 사건이 나온다. 그런데 고의적으로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건은 상해치사가 된다. 18세 이하의 미성년이 상해치사로 입건된다면 전과도 없고, 형벌도 받지 않는다. 그는 살인범이 아니고, 전과자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가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범인의 가족에게 합의금을 받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피해자의 감정을 무시하고 가해자를 봐 주지. 그것에 의해 가해자는 반성도 속죄도 모르고 죄의식조차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그리고 새로운 피해자가 생기지.” 그렇게 소년범이라는 것을 이용해 연속으로 강간을 저지르는 소년도 있다.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보호되어야 할 것은 피해자가 아닌가. 선량한 보통 사람들의 인권이고.

열혈 주인공인 다카시는 당연하게도 대형 법률회사에서 쫓겨나 스기자키와 함께 법률 사무소를 차린다. 그 법률 사무소는 피해자 구제 전문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하게 나누기 힘든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다. 끔찍한 이지메를 당하던 소년들이 저항을 해서 그를 죽였다면?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때로는 가해자의 가족들 역시 심각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피해자의 구제란 이상은, 사회적인 정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법 앞에 평등하라』에서 나오는 수많은 딜레마와 수많은 피해자의 이야기는 단지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피해자의 인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정말로 보호해야 할 것은 범죄자의 인권이 아니라,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이다.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이념을 보호하기 위해 연쇄 살인범과 성폭력범을 옹호하는 것보다는, 흉악한 범죄자들 때문에 위협받고 상처를 입는 보통 사람들의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법 앞에 평등하라
Nakajima Hiroyuki 글/Kawaranisai 그림 | 북박스

화려한 연예계의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 도모토. 아이돌과 그 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매스컴과의 전쟁에 뛰어들게 되지만... 진짜 적은 내부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니?! 풋내기 변호사가 좌충우돌 자신 안의 정의를 이루기 위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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