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날 때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 『일본침몰』

하지만 만화판 『일본침몰』을 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그런 지식은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다. 이 만화의 탁월한 점은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날 때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일본침몰』의 원작은 고마쓰 사쿄가 197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당시 400만 부가 팔리는 엄청난 베스트셀러였고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일본침몰>은 2006년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인기 장르인 재난영화는 유난히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은 재난을 먼 나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현재 그들에게 직면한 위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열도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해 있어 지진이나 화산이 많고, 여름이면 많은 태풍이 지나가는 등 자연재해가 많은 곳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잘 알기 때문에, 일본인은 자연을 신으로 모시는 애니미즘이 발달했다. 원시종교인 신도는 여전히 존재하며 강력하게 일본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일본침몰』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기를 끈 이유도 그런 이유다. <일본침몰>은 일본 열도 자체가 가라앉아버린다는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일본침몰’이라는 사건은 황당한 판타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가능한 현실의 위협으로 느껴진다. 현실의 두려움을 영화로 보면서 조금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한편으론 경각심을 갖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 <일본침몰>이 인기를 끈 이유는 약간은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이 멸망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

만화로 만들어진 『일본침몰』은 고마쓰 사쿄의 원작을 이시키 토키히코가 그린 것이다. 기본적인 내용은 동일하지만,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은 많이 바뀌었다.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2006년의 <일본침몰>도 원작에서는 다룰 수 없었던 과학적 사실을 많이 추가했다. 하지만 영화 <일본침몰>은 사실 졸작이다. 일본 침몰의 장면들은 볼만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안이하고 지루했다. 사실 2시간여 동안 일본이 침몰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힘든 일이다. 구체적인 장면들을 재현할 수 있다는 장점 말고는 없다. 그러나 장편 만화라면 다르다. 일본 침몰의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모두 그려낼 수 있다. 단지 스펙터클이 아니라, 인간의 드라마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심해 잠수정 파일럿 오노데라 토시오는 신주쿠에 놀라갔다가 기묘한 사건을 만난다. 빌딩 지하의 술집에 들어갔다가 마치 지하에서 회오리가 부는 것처럼, 빌딩이 비틀리며 지하로 빠져 들어가는 상황을 만난 것이다. 뛰어난 육감을 가진 오노데라는 비번이었던 도쿄 소방청의 구조대원 아베 레이코와 함께 사람들을 무사히 피신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조에 불과했다. 빌딩의 위험을 예측했던 지질학자 다도코로 유스케는 일본 열도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어서 사가미만에 해일이 밀어닥쳐 21만 명이 사망하고, 교토에 지진이 일어난다. 정부에서는 일본 열도의 침몰을 전제로 한 D계획을 시작한다.

만화판 『일본침몰』은 1973년에는 알 수 없었던 첨단과학을 이용하여 일본이 침몰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대륙이동설을 파기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가 하면, 과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도 전개한다. 조금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은 그림과 글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쉽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세한 일본 침몰의 이론적 가능성을 만화 『일본침몰』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만화판 『일본침몰』을 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그런 지식은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다. 이 만화의 탁월한 점은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날 때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일본침몰, 2006>의 한 장면

재난영화에는 대개 ‘미친 과학자’가 나온다. ‘위대한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육감과 상상력’이다. 혜안을 가진 과학자가 재앙이 다가온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은 믿지 않고 그를 미치광이라고 낙인찍는다. 그러다 실제로 재난은 닥치고, 모두 우왕좌왕한다.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들은 미치광이라고 불리다가 재난이 닥친 후에야 천재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사후 약방문은 쓸모가 없다. ‘전쟁이나 범죄 같은 비극은 상상력과 상상력의 결여 두 요소로 인해 발생하지만, 재해는 상상을 하건 말건 평등하게 무자비하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력이 필요한 예측을 무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들은 생각한다. ‘지진 예측을 하고, 만약에 지진이 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적어도 자신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것이 바로 관료주의다.

『일본침몰』에서 자세하게 묘사되는 것 또 하나는 재난을 겪은 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둠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이 한데 모여들면… 그들은 어둠을 틈타 사실은 각자 추스르지 않으면 안 되는 광기를 주위 사람과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들을 죽인 것처럼 폭도로 변해버린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들을 학살하는 것이다. 『일본침몰』은 인간이 악마로 돌변하는 끔찍한 상황을 리얼하게 전달한다.

재앙을 겪은 후에도, 사람들은 다시 그런 일이 벌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없었다고 믿는 것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는 최선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모두가 동등하게 나눠 삼킨다는 암묵조건 하에, 이 사건을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남의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일본침몰』은 과감하게 일본이라는 나라가 ‘침몰’ 직전에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일본이 기억상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일본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을 당해왔는지 잊고 더불어 남에게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도 잊었다. 대공습을 받은 기억을 비롯해, 그 직후 정작 자신들을 능욕한 대국이 베푼 친절에 급속도로 정신적 상처를 잊고, 가해자와의 동일화를 꾀하는 가운데 ‘재기했다’라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급성 쇼크로 인한 적극적인 기억상실’이었다. 과거 일본은 ‘적당히 잊는 것이 민족적 지혜라고 믿어온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을 상실하며 그로 인해 전진하는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완벽하게 대응할 수 없다면?’

작가는 지금의 일본이 바로 그런 위기의 상황이라고 본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미 침몰하고 있다. 이미 민주주의는 사라졌고, 사회 시스템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붕괴는 민중이 주인공이라는 중책을 귀찮게 여기고, 포기한 순간부터 그것은 시작되는 것이다.’ 『일본침몰』은 현대 국가의 위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확대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미국,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국토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이미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침몰』은 단지 일본 침몰이라는 스펙터클과 위기에 처한 인간의 의지에만 집중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의 ‘침몰’을 직시한다.

일본침몰
KOMATSU Sakyou 원작/ISHIKI Tokihiko 그림 | 학산문화사

오노데리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신주쿠 이변’을 알게 된 지질학자 타도코로 유스케. 소리없는 열도의 비명을 일찌감치 감지한 그는 독자적으로 행동을 시작한다. 오노데라, 타도코로 그리고 레이코. 각자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 일본침몰 1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일본침몰 2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일본침몰 3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일본침몰 4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일본침몰 5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일본침몰 6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일본침몰 7 <KOMATSU Sakyou> 원작/<이시키 토키히코> 그림

    3,420원(1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일본침몰

<히구치 신지>,<쿠사나기 츠요시>,<시바사키 코우>8,400원(69% + 2%)

역대 출시 일본영화 DVD 중 최고의 세트 구성 극장에서보다 더욱 뛰어난 사운드. DTS 204분, 3시간 분량의 방대한 서플먼트 특수효과 메이킹, 주연배우 인터뷰, 삭제장면, 지질 전문가의 일본침몰 과학적 분석 등 역대 출시 일본영화 DVD 중 최고의 내용 수록. 에 대한 안내책자-영화 에 대한 소개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