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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 『not simple』

『not simple』은 통속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이란 어차피 통속적인 것이다. 사랑, 가족, 친구, 형제애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도 외면할 수도 없는 가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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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계획적으로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친구를 해하려는 아버지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부랑자 같은 남자를 골라 애인인 척하려는 것이다. 계략은 맞아떨어졌고, 그 남자는 아버지가 보낸 남자에 의해 죽는다. 이안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 이안은 ‘끝끝내 비극적인 녀석’이었고, 그녀는 단지 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한 남자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리고 오노 나츠메의 『not simple』은 차분하게 그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전해준다. 정말 끔찍하게 암울하고, 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이안의 인생 이야기를.

『not simple』이란 제목처럼, 이안의 이야기는 전혀 간단하지가 않다. 모든 것은 얽혀있고, 모든 것은 뒤틀려 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은 거대한 인연의 한 자락일 뿐이다. 누나를 찾아 미국을 떠돌던 남자는, 3년 전 한 여인을 만났고 그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왔다. 여자는 그 여인이 작년에 죽은 자신의 이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인은 이모가 아니라, 바로 그녀의 엄마였다. 아주 사소한 것 같은 우연한 만남조차도 이미 뒤집혀 있다. 그 여자는 이안과 달리,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고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을 가진 채로.

오노 나츠메는 동인지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웹진을 거쳐 메이저로 올라온 작가다. 《망가 에로틱스 F》에 연재한 『리스토란테 파라디조』로 눈길을 끌었고, 이후 『not simple』『LA QUINTA CAMERA~다섯 번째 방』과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납치사 고요』 등으로 일본 만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basso란 필명으로도 활동한 오노 나츠메는 서구를 배경으로 중년의 남녀가 등장하는 만화를 많이 그렸다. 『not simple』 역시 호주와 영국, 미국을 배경으로 기묘한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그림체는 여백을 많이 활용하며 심플하게 인물의 감정을 그려낸다. 담담하게 다가와서는, 한순간에 심장을 흔들어놓는다.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지만, 『not simple』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안의 침울한 가족사를 말해야 한다. 이안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의 운명을 타고났다. 아버지와 누나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이안. 아버지는 이안을 버렸다. 그리고 성장할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이안을 보며, 어머니는 치를 떨었다. 그녀는 이안을 학대해야만 했다. 누나는 이안을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구해냈지만 그의 운명까지 구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운명이란 끊임없이 이안과 그의 누나, 아니 진짜 엄마를 벼랑으로 밀어낸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운명이란, 애초에 없었다.

『not simple』이 서늘하게 읽히는 것은, 단지 이안의 숨 막히는 가족사 때문만은 아니다. 이안이라는 캐릭터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황량하게 만든다. 이안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의 학대와 멸시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맞기도 하고, 매춘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버림받으면서도 이안은 거부하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뛸 뿐이었다. 단 하나를 위해서. ‘그는 많은 친절한 사람을 만나고, 따듯한 대우를 받지만 그가 바란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사랑이었다.’

오노 나츠메는 많은 수수께끼와 충격적 사실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안의 이야기를 세련된 구성으로 엮어낸다. 이안이 죽는 모습을 그린 프롤로그, 이안이 연상의 여인을 만나는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간결하게 그려낸 이안의 인생 역정은 쉽게 읽히면서도 아찔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결코 신파적으로 하소연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쿨한 척 허세를 부리지도 않으면서 오노 나츠메는 묵묵히 이안이 거리를 달리듯 한 걸음씩 이안이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만화로 보여준다. 컷과 컷의 연결, 허술한 듯하면서도 아주 세밀한 내면까지도 잡아내는 그림실력이 『not simple』을 결코 간단하게 넘길 수 없게 만든다. 다 보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되짚어보게 만든다.

『not simple』은 통속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이란 어차피 통속적인 것이다. 사랑, 가족, 친구, 형제애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도 외면할 수도 없는 가치들이다. 아무리 그것이 뒤틀리고 바스러졌어도, 언젠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안처럼 그 당연한 것을 찾으려 애쓰기만 하다가 쓰러질 것이다. 이안보다는 비록 행복하겠지만, 그래도 쓸쓸하고 안타까운 방황을 거듭할 것이다. 『not simple』은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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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mple

<오노 나츠메> 글,그림8,550원(10% + 5%)

그녀의 작품 중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되는『not simple』은 출판사의 부도로 완결을 짓지 못했던 작품이었지만 쇼가쿠칸을 통해 복간되면서 완결을 맺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특히 만화계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유려한 비극’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 인간의 놀라운 인생역정을 그린 이 작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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