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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 존 버거, 장 모르의 『행운아』

『행운아』는 조금 특이한 형식의 에세이다.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이 책에는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것은 자서전도 아니고 위인전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 인물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기록’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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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나 걱정거리를 사샬에게 이야기할 때,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래요’라고 우물거리는 대신, 사샬은 반복해서 ‘압니다’ ‘압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공감하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그는 더 많이 알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행운아』는 조금 특이한 형식의 에세이다.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이 책에는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것은 자서전도 아니고 위인전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 인물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기록’이라고나 할까.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섬세한 기록. 저자가 이끄는 대로 ‘사샬’이라는 시골 의사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가슴 한구석이 짠해진다. 마치 남루한 삶이라도 괜찮다고 조곤조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사샬’은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 의사다. 언덕 한쪽에 자리 잡은 그의 병원은, 계곡의 다른 쪽에서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깨끗하고 시설이 잘 갖춰진 진료실은 마치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듯 아늑해 보인다. 침대 위에는 전기담요가 놓여 있다. 예약한 환자가 있을 때면 사샬은 늘 약속한 시간 15분 전에 전기담요의 스위치를 올렸다. 환자가 도착해서 옷을 벗고 진찰을 받을 때, 갑자기 차가움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는 그런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었다. 책에는 이런 묘사가 나온다.

한 번은 한 남자의 가슴에 주사 바늘을 깊이 찔러 넣었다. 환자는 별 고통이 없는 듯했다. 일단 바늘을 가슴에 깊이 찔러 넣고 나면, 더 이상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매우 불쾌한 모양이었다. 남자가 자신의 거북한 속을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 한다.
 “거기는 제 목숨 같은 뎁니다. 바늘을 찔러 넣은 바로 거기요.”
 “압니다.” 사샬이 말했다.
 “기분이 어떤지 압니다. 나는 지금 눈 주위가 그래요. 거기 뭐가 닿으면 도저히 못 견디겠습니다. 나한테는 거기가 목숨 같은 자리인 셈이죠. 눈 바로 밑에 말입니다.”


몸이 아프면 사람들은 그 병이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몸이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고통이나 불편함을 배가시키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의 심정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가슴 깊은 곳에 주삿바늘을 박아 넣은 남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말은 그대로 삼켜지거나 묵살된다. 의사에게 그들은 매일매일 대하는 수많은 환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이다. 사샬의 특별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부각된다. 그는 환자들을 ‘알아주었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환자의 감정이라든가 환경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또한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지지를 의미한다. 대개 환자가 의사를 찾아와서 자신의 병을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을 예상한다. 단지 몇 가지 증세만 있을 뿐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특별함을 아프게 확인시킨다. 이 순환을 끊어 줄 필요가 있다. 환자와 공통점이 있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의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 자기를 알아줄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치료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와 관련해 존 버거는 “누군가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던 불행감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적고 있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사샬의 말을 발췌한 것이다.

“문이 열리면, 가끔은 죽음의 계곡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괜찮아져요. 저로서는 이 쑥스러움을 극복하려고 애를 많이 쓰는데, 왜냐하면 환자에게 있어서는 첫 만남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죠. 거기서 환자가 불편해 하거나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다시 확신을 얻을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쩌면 영원히 못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완전히 열린 자세로 맞이하려고 노력합니다. 제 쪽에서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그건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죠.”

육체적인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죽음, 상실, 두려움, 외로움, 극도의 흥분, 그리고 무력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괴로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존 버거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비통함’은 그 자체로 시간 단위를 갖는다. ‘돌이킬 수 없음’을 인식하는 순간 시간이 왜곡되는 것이다. 때론 한순간이 몇 년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상황에서 환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이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고 느끼게 된다. 사샬은 왕진을 하면서 비통함에 빠진 사람들을 계속 만난다. 죽어 가는 환자의 가족들, 몸이 아파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사람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사람들, 외로움을 못 견뎌서 자살하려는 사람들, 히스테리 환자 등.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에 대한 주관적 경험은 고통에 의해 종종 왜곡되기 때문에, 설명해 주고 편안하게 해주고 이해해 주고 비통함에 빠진 사람들과 똑같은 밀도로 시간을 느껴 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사샬은 인내심을 가지고 이 일을 수행하고 있다.


사샬이 활동하는 지역은 영국 내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다. 큰 농장은 몇 개 되지 않고 대규모 공장도 없다. 남자들 중 절반은 농업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작은 작업장이나 채석장, 목재가공 공장, 벽돌 공장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지역공동체라고 할 수도 없다. 숲에 속해 있는 이 사람들을 두고, 주변 지역 사람들은 그냥 ‘숲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민들은 의심이 많고, 독립적이고, 거칠며,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고,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 사샬은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 그는 진료가 없을 때에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위한 공공 프로젝트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버려진 공터를 마을 전체를 위한 정원으로 가꾸는 작업 같은 것. 그것은 수만 시간의 노동을 요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마을 사람들과 ‘공통경험에 대한 메타포가 될 수 있을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게 되었다. 사샬과의 대화에서 대부분의 경우 첫 마디는, “그거 기억나십니까…?”로 시작된다. 그는 채석장이나 밭에서 일어나는 사고 등 응급상황을 다루는 한편, 자신의 사생아를 죽이고 싶어 하는 절망한 젊은 여인과 이제는 신앙을 잃어버린 채 천천히 고통스럽게 쇠약해지고 있는 은퇴한 교구목사까지 맡아서 진료한다.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신뢰는 거의 무조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후반부에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아프게 인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그것은 직업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고민이다. 그의 환자들은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될 수 있는 모습의 최대치인가? 그들 중에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삶을 몰래 꿈꾸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혹시 그런 불가능성에 마주했을 때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은 이 책에 나오는 ‘숲 사람들’에 대한 묘사다.

숲 사람들은 삶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작은 불평들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그날그날의 삶을 살아간다. 감정이 온 자아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견딤이 행복보다 훨씬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스물다섯 살 이상의 일반적인 숲 사람들은 삶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별로 없다.


환자를 알아주려고 애쓸 때마다 사샬은 그 환자의 이루어지지 않은 잠재력을 본다. 사실 젊은 환자의 경우, 바로 그 점 때문에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샬의 딜레마기도 하다. 적어도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만큼이나 부당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조건들을 환자들이 받아들이는 데 있어 어디까지 도와주어야 하는가? 사샬에게 그 딜레마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혼자이기 때문이고, 그가 환자와 더 친밀하기 때문이며,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다.

“알아준다”가 이렇게 따뜻한 단어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인간과 인간이 살을 부비면서 느낄 수 있는 체온만큼이나 훈훈한 말. - 온도를 잰다면 36.5도가 아닐까. - 한 사람을 진심으로 ‘알아준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살면서 순간순간 우울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행운아』를 읽으면서 내 우울함의 근원을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느낌이 들었다. ‘숲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그 원인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 하고, 여러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얽힌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 사회가 인간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하나가 특별한 존재다. 그러나 개인의 특별함이 겉으로 두드러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개는 그가 속한 집단과 함께 굴러가며, 대부분의 경우 익명에 기대어 살아가게 된다. 설령 개인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상황에서도 총체적인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일부분만이 부각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 의사 ‘사샬’의 존재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개개인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필연적인 운명, 그 비통함을 ‘알아주는’ 유일한 의사다. 비록 그가 실존적인 비통함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삶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 주려는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그의 치료는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되어 가는 이 책이, 여전히 생생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산비탈을 오르는 사샬의 뒷모습이 실려 있다. 생생하면서도 인간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 모르의 사진들이 감동의 크기를 더해준다.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 매일 누군가 죽어 가죠. -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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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존 버거>,<장 모르> 저/<김현우> 역8,820원(2% + 1%)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이 책은 영국의 작은 시골마을 의사 존 사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육체적인 아픔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그들의‘인간성’을 알아보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점점 더 궁핍해지는 후미진 시골의 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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