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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와 원더걸스, 그 대중의 사회학

모처럼 영화 두 편을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에서 세계의 뮤즈로 짧은 생을 살다간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를 다룬 <라 몸La Mome>(<라비앙 로즈>란 제목으로 개봉 예정)과 우리 영화 <경의선>이란 영화 두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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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영화 두 편을 보았습니다. 물론 내 영화 보기의 메커니즘에 따라 작은 모니터로 본 것입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에서 세계의 뮤즈로 짧은 생을 살다간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를 다룬 <라 몸La Mome>(<라비앙 로즈>란 제목으로 개봉 예정)과 우리 영화 <경의선>이란 영화 두 편입니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영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대한 영화평을 쓰면서 필자는 영화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꿈이다. 희망이며 전망이다. 홍콩의 뒷골목을 비추는 조잡한 느와르(noir)도, 뉴욕 할렘가의 갱스터 무비도, 심지어 파괴된 지구의 암담한 미래를 투사하는 SF도 영화는 본질적으로 밝은 빛으로 만들어진다.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 같은 거장들의 필름이 아니더라도, 3류 재개봉관에 동시상영으로 걸리는 영화일지라도 모든 영화는 눈부신 빛으로 태어나는 꿈이며 동경이며 희망과 사랑이다.

불문학자인 김화영 교수의 영화이야기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오직 그 제목에 매료되어 사들고 온 책이다. 너무 그럴싸한 제목만으로 나는 감명을 받았다. 내가 있는 어두운 방안, 밝은 세상을 내다볼 스크린이란 창마저 없다면, 우리는 그 고독과 어둠을 견디기 힘들리라.”

에디트 피아프 - 과거의 상처에 핀 구원의 꽃

영화의 제목 ‘라 몸La Mome’을 우리말로 옮기면 ‘꼬마계집애’쯤이 됩니다. 에디트의 젊은 시절 애칭인 ‘라 몸 피아프La Mome Piaf’에서 따온 것이지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에디트를 발견하여 가수로 데뷔시킨 루이 르프레는 에디트에게 ‘피아프(참새)’라는 예명을 지어줍니다. 1m 50cm도 안 되는 작은 체구에 가녀린 몸매가 마치 노래하는 작은 새 같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 에디트의 생애를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가며 보여줍니다.

서커스단의 곡예사였던 아버지가 군대 간 사이 거리의 무명가수였던 어머니는 에디트를 외가에 맡기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제대한 아버지 역시 에디트를 노르망디 지방에서 유곽(매음촌)을 경영하는 할머니에게 맡겨버립니다. 영양실조로 인한 실명의 위험에까지 처했던 에디트의 유년 시절을 비추던 스크린이 돌연 모르핀과 알코올에 찌들어 죽어가는 에디트의 말년을 비추는 식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구걸을 하는 장면을 쫓던 카메라는 이제 친구와 함께 노래를 해서 번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그중의 일부는 뒷골목의 잡배들에게 빼앗기는, 소위 앵벌이 시절의 에디트를 보여줍니다. 이미 알코올 중독의 지경까지 이른 십대의 에디트에게 미래는 없는 듯이 보이다가도, 장면이 바뀌면 ‘카바레’ 무대의 신데렐라가 되어 노래를 하는 에디트가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 <물랭 루즈> 등으로 대표되는 ‘카바레’는 당시의 예술 공간이었습니다. 촉수 낮은 조명 밑에서 은밀한 욕망이 춤추는 우리식의 공간은 아니지요.

아무튼 다소 복잡하기까지 한 이런 장면의 전환과 시간의 넘나듦을 고집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에디트의 노래와 삶이 과거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정을 설명하기 위함 같습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에디트의 그 절대적인 외로움, 열병 같은 사랑과 집착, 노래 속에서 배어나오는 그 진한 슬픔이 바로 그녀의 과거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영화를 통해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5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생애와 세계인의 가슴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는 바로 그 처절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 수태되어 죽음만큼 힘든 난산을 겪으며 태어난 시간의 자식인 것이지요. 영화의 서사는 영화관에서 확인해야 할 독자들의 몫입니다. 다만 그녀가 노래한 ‘사랑의 찬가’는 지독한 세월 속에서 딱 한 번 행복했던 사랑을 떠나보낸, 그칠 수 없는 울음이란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결코 ‘장밋빛 인생’을 살지 못한 그녀의 육성이 어찌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노래할 수 있었는지, 우린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에디트 피아프』)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상처, 혹은 아픔의 병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노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함께 찾아드는 무서운 절망감, 대중의 열광과 환호가 넘치면 넘칠수록 같이 깊어지는 무저갱 같은 고독감, 사랑에 미쳐갈수록 세차게 밀려드는 상실의 불안 등 그런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망가지고 분열된 영혼의 상처에서 배어나오는 고름 같은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고 자신의 병증을 인정하고 나서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자신이 겪은 고통의 흔적 위에서 여전히 딱지 앉지 못하고 더욱 곪아가는 상흔을 보았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노래들을 부를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과거의 지옥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병든 영혼을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 그녀는 더욱더 긍정과 전망과 희원을 담아 노래하였습니다. 노랫말대로 “운명의 신이 당신을 빼앗아간다 해도 영원에라도 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대중문화 - 개인과 시대가 공존하는 양식

다른 영화 <경의선>을 보겠습니다. 상처를 간직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연한 계기로 눈 내리는 임진강역에서 마주칩니다. 남자는 지하철의 기관사이고 여자는 대학의 시간강사입니다. 자신이 모는 전차에 한 여자가 뛰어든 그 참혹한 기억 때문에 남자는 임진강역에 있고, 교수인 선배의 정부로 전락한 자신의 사랑이 부끄러워 여자 또한 그 역에 있습니다. 차편 끊긴 역에서 그들은 만났고 하는 수 없이 찾아든 모텔에서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냄으로 그들은 다시 새로운 삶의 의미들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하필이면 경의선이고 임진강역일까요? 엄밀한 의미에서 경의선은 없습니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의 철길을 나타내는 경의선은 비무장지대에서 끝나 있습니다. 경의선이 아닌 것이지요. 임진강역은 바로 우리 민족의 가장 커다란 상처, 즉 분단의 아픔이 서린,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입니다. 이 영화의 연출자는 두 남녀의 상처가 드러나고 치유되는 현장에서 슬그머니 우리 모두의 상흔을 보여주는 의뭉스러움을 발휘합니다. 개인의 상처가 우리 역사의 상처와 조우하는 것이지요.

다시 피아프로 돌아와서, 그녀가 노래와 함께 살다간 50년대의 프랑스는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한국동란 직후 정신적·물질적 공황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불전쟁 이후 앙숙인 독일에게 점령당한 세계대전의 여파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삶 속에서 피아프의 노래는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환각제 같은 것이었지요. 그때에 그녀의 노래는 프랑스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잃어버렸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는 것이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대중의 자부심을 일깨운 것도 그녀였습니다. 프랑스 대중음악과 동일시된 샹송을 전 지구적 언어로 전파한 것도 피아프였으니까요. 그녀의 노래에는 이처럼 당대 프랑스인들의 삶과 절망, 불안과 희망이 한데 뒤섞여 투영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당대의 대중문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자 문화적 기호(아이콘)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대중이란 말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나온 것으로(『대중의 문화사』)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있으면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고 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대중문화란 우리들 삶의 집합적 형식 혹은 그 모습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합적이란 수사는 개개인의 양태가 아니라 다수의 '공통된comon'이란 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경의선의 두 남녀처럼 개인과 당대의 총체적 삶이 만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틀즈와 엘비스와 에디트는 그래서 문화입니다. 그들의 노래, 그들의 음악은 당대의 저항이 숨 쉬고 당시 일상의 보편적인 정서가 저변에서 꿈틀댑니다. 엘비스의 사후 20년 동안 그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4억 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존 레넌은 죽고 비틀즈가 해체된 지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대중의 우상입니다. 남부 프랑스의 휴양도시 칸느 인근에서 에디트가 숨을 거둔 지도 거의 50년이 가까워 오지만 그녀의 노래는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우리네 정신의 상처를 위무하며 사랑의 묘약처럼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스스로 온전히 하나의 문화입니다.


반면에 작금의 신드롬이라고 일컬어지는 원더걸스의 노래 <텔 미>와 그들의 앙증맞은 춤이, 그렇다면 문화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잠시의 유행이 드러날 뿐입니다. 비록 30 40대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층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한 흐름을 뛰어넘는 지속적이고 집합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말해’라고 말하지 못하고 ‘텔 미’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스타는 타이밍Timing과 탤런트Talent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들이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트렌드Trend가 필요하지요. 트렌드란 장시간의 기간을 염두에 둔 낱말입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별빛으로는 밤길을 비출 수도, 인생이란 사막을 걷는 우리들의 이정표 구실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피아프는 오래 전 죽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전설이 되었지만 그녀의 음악은 지금도 저 밤하늘의 별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대중은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는 대중에게 ‘빠담 빠담’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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