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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해버린 와인

2004년 일본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펴내는 주간 《코믹 모닝》에 나와 동생이 함께 『신의 물방울』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당시 주위에선 냉담한 반응들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 만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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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와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딱딱한 설명과 포도 배합 비율만 가득한 기존 와인 가이드 같은 책이 아니라 추리 소설처럼 독자들이 다음에 등장할 와인을 궁금해 하고, 와인 맛을 상상하게 만든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2004년 일본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펴내는 주간 《코믹 모닝》에 나와 동생이 함께 『신의 물방울』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당시 주위에선 냉담한 반응들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 만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딱딱한 설명과 포도 배합 비율만 가득한 기존 와인 가이드 같은 책이 아니라 추리 소설처럼 독자들이 다음에 등장할 와인을 궁금해 하고, 와인 맛을 상상하게 만든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흘러온 상황을 보면 결국은 나와 동생이 옳은 것 같다. 지금 우리 만화는 와인 애호가의 필독서가 된 것은 물론, 이제까지 와인을 마시지 않았던 사람들도 와인의 포로로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신의 물방울』 때문에 새로운 와인 애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는 작품 속에 소개된 와인이 순식간에 매진된다. 지난해 가을 『신의 물방울』의 캐릭터를 병에 붙여 도멘 알베르 비쇼Domaine Albert Bichot의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를 판매했다. 애초 목표한 84만 병이 바로 매진돼 발매원인 메르시앙사社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솔직히 나와 동생도 『신의 물방울』이 이처럼 인기를 끌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인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책임감도 더없이 무거워졌다. 우리는 만화에 잠깐 등장하는 와인이라 할지라도 그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표현을 생각해 내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우리는 단순히 와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을 둘러싼 휴먼 드라마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와인 마니아들이나 좋아할 법한 이 만화가 이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와인이라는 매력적인 테마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신의 물방울』이 이처럼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우리 남매에겐 다양한 언론 매체들로부터 취재 의뢰가 쇄도하고 있다. 비주류 영역에 가까운 만화가 이렇게 주류 무대로 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낀다(참고로 우리가 선글라스에 모자라는 괴상한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함과 동시에 익숙지 않은 주류 무대가 눈부시고 쑥스러운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취재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언제부터 와인을 마셨는가”라는 것이다. 이는 나에게 “언제부터 와인에 미치기 시작했나”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우리 남매는 원래부터 와인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꽤 심각한 와인 애호가로 변해버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와인을 좋아하게 됐다. 우리가 이처럼 와인에 열광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첫눈에 반해버린 와인 때문이다. 첫 사랑 연인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와인, 바로 DRC가 생산하는 ‘에세조Echezeaux 1985년산’이다.

DRC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인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ee-Conti의 약자로서 로마네 콩티로 더 유명하다. DRC는 에세조와 더불어 로마네 콩티, 라 타슈La Tache, 리쉬부르Richebourg, 그랑 에세조Grands Echezeaux, 로마네 생비방Romanee St.-Vivant 등 주옥 같은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로마네 콩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손꼽힌다.

사실 그 이전까지도 와인을 좋아해 곧잘 마셨다. 주간지에서 프리랜서로 일했을 당시에는 맥주와 일본 사케酒 같은 주류 기사들을 기고했을 만큼 술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에겐 와인 역시 맥주나 사케처럼 단순한 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단순한 술’이라는 생각이 회식 자리에서 마신 이 한 병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우선 와인을 글라스에 따르자 화려한 꽃향기가 피어났다. 난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시즈쿠처럼 어느 순간 장미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입안에 넣자 싱싱한 산딸기를 비롯한 과일 맛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어 달콤하고 부드럽게 입안을 조여주는 타닌(떫은맛)과 정교하게 짠 교토京都의 직물처럼 복잡하고 우아하며 섬세한 맛에 혀가 매료됐다. 그리고 어질어질할 정도로 오래 이어지는 여운까지….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마시고 있던 아기 다다시 B인 남동생도 대단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도 다시 곱씹게 되는 한마디가 절로 나왔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DRC 에세조 1985’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와인의 심오함에 놀라 그 세계를 더 잘 알고 싶게 만들었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대한 기획은 이때부터 조용히 ‘숙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와인의 기쁨>은 ‘중앙books’와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수요일 2개월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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