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바람의 검심

시대를 바꾸는 것은, 검이 아닌 검을 잡고 있는 인간의 손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많은 만화책을 읽었고, 기억에 남는 것들도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바로 『바람의 검심』이다. 거기에는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그야말로 황금의 시절이다. 요즘도 변한 거 하나 없지만 그때도 컴퓨터 게임, 정말 좋아했었다. 뭐, 요즘은 컴퓨터 게임 싫어하는 사람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니…. 친구들 서넛이서 밤새 게임을 하다 해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던 날도 부지기수다. 요즘도 가끔 그때 친구들끼리 모여서 게임을 한다.

그렇게 질리도록 게임을 했지만, 남아도는 시간도 어디 쌓아뒀다가 다시 쓰고 싶을 만큼 많았다. 요즘같이 바쁜 날엔 늘어지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손에 잡기 시작한 게 만화책이었다. 요즘도 만화책을 즐겨 보지만, 그때처럼 지독하게 읽었던 시기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정말 엄청나게 읽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 몇십 권이고 읽었고, 언젠가 대전 외삼촌 댁에 놀러갔을 때는 셋이서 100권을 빌려서 읽기도 했다. 사촌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에도 혼자 졸면서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만화책을 읽었고, 기억에 남는 것들도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바로 『바람의 검심』이다. 인물도 매력적이고 스토리 구성도 역동적이다. 그림체도 깔끔한 편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것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만화는 메이지 유신 전후를 무대로 한다. 도쿠가와 막부 말, 에도에 미국의 흑선이 나타나 개항을 요구했다. 근대화 이전까지 양이, 즉 왕정복고와 함께 외세를 배격하자는 사상이 일본 내에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무사들 사이에서는 타성에 젖어 나라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는 막부를 타도한 뒤, 천황을 정치의 중심에 놓고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이른바 근왕도막을 내세운다. 여기에서 활약했던 무사들을 유신지사라 한다. 떠받칠 유維, 새로울 신新, 뜻 지志, 선비 사士. 새로움을 받들었던 뜻있는 선비들, 혹은 무사들.

주인공은 유신지사의 한 사람이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베었던, 칼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사람. 가장 뛰어난 칼잡이로 생을 살았던 그는 새 시대를 위해 구시대를 베었지만, 단지 그것만 벤 것은 아니었다. 구시대의 멍에를 쓰고 죽어간 사람들에게도 꿈이 있고,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단지 검 한 자루 가지고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그 어떤 입에 발린 미사여구나 대의명분으로 치장하더라도 그것은 진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벤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것이 검술의 진정한 가르침. 나는 너를 살렸을 때와 같이 몇백 명의 악당들을 죽여왔다. 허나 그들도 역시 인간, 험악한 시대에 힘껏 살아온 것뿐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하며 사람을 위해 사람을 베겠다는 주인공을 말렸다. 그러나 어린 제자는 산을 떠나 칼을 휘둘렀고, 그것은 무거운 무게로 그를 짓눌러온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사람을 베었던 그, 그리고 그를 짓눌렀던 죄책감과 허무감.

소중한 사람을 업보에 의해 잃은 후, 그는 검을 놓는다. 단 한 사람도 앞으로는 베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는 원래의 검을 버리고, 역날검을 쓴다. 일본도는 베는 면에만 날이 서 있고, 뒷면에는 날이 없다. 역날검은 베는 면엔 날이 없고, 벨 수 없는 뒷면에만 날이 서 있는 칼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의 미소부터, 그는 역날의 검으로 지켜가기 시작한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역날의 검을 벼려주면서 이런 말을 한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검이 아니다. 그것은 검을 잡은, 인간의 손이다.” 무작정 베고 죽이기만 해서는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을, 그의 스승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역날검을 든 이후, 그는 그날의 맹세를 지킨다. 단 한 명도 베지 않고, 속죄로 여생을 보낸다. 무엇도 베지 않으면서, 자기 주변의 웃음을 지키면서 말이다.

꽤나 유명한 작품이기에,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만화를 많이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꼭 한 번쯤은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만화, 『바람의 검심』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18세, 책에게 꿈을 묻다

<문형범> 저10,800원(10% + 5%)

KBS '도전! 독서골든벨' 우승자 문형범 학생의 18년간 독서편력이 맛깔스럽게 담겼다. 상상력, 감수성, 표현력 모두 만점! 책속의 세상과 사람들, 그 속에서 배운 사랑과 사유와 감성의 힘을 빼어나고 겸손한 문장으로 들려주는 책이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당신의 잠재력을 펼쳐라!

2007년 출간 이후 17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뇌과학 지식, 새로운 사례를 더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몰입』 최신판. 창의성과 사고력을 키우려는 학생부터 집중력을 잃어버린 직장인까지 몰입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에게 맞는 몰입법으로 내 안의 잠재력을 무한히 펼쳐보자.

할머니가 키운 건 다 크고 튼튼해!

『당근 유치원』 안녕달 작가의 열한 번째 그림책. 토끼 할머니와 돼지 손주의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하루를 담았다.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으로 자란 오동통한 동식물과 돼지 손주의 입에 쉴틈없이 맛있는걸 넣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할머니를 보는 것 같이 정겹다. 온 세대가 함께 읽기 좋은 그림책이다.

40년간 집을 지은 장인의 통찰

로빈 윌리엄스,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인들은 마크 엘리슨에게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뉴욕 최고의 목수라서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최고가 된 사람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신념, 재능, 원칙, 실패, 부 등 저자가 집을 지으며 깨달은 통찰에 주목해보자.

150만 구독자가 기다렸던 빨모쌤의 첫 책

유튜브 '라이브 아카데미'를 책으로 만나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빨모쌤. 실제로 영어가 쓰이는 걸 많이 접하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키우길 바란다고 제안한다. 수많은 영어 유목민이 선택한 최고의 유튜브 영어 수업을 책으로 만나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