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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한 시네마 천국

우리 나이로 올해 80세인 모리꼬네. 그래서 생애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그의 내한공연은 무대가 열리기 전부터 단 한 번이라는 희소성과 벅차오르는 기대로 수차례 뛰는 가슴을 달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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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기 1시간 30여 분 전 현장에 도착했다. 서둘러 티켓을 받고 근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친구나 연인, 가족 단위 관객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과 연예인의 모습이 보인다. 살아 있는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를 만나다는 설렘에 모두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 나이로 올해 80세인 모리꼬네. 그래서 생애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그의 내한공연은 무대가 열리기 전부터 단 한 번이라는 희소성과 벅차오르는 기대로 수차례 뛰는 가슴을 달래게 만들었다.

평일 저녁, 엄청나게 몰린 관객들의 입장이 늦어지면서 공연은 예정보다 15분이 지연됐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80인조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100인조 한국인 합창단이 오르자 체조경기장은 이내 엄숙해진다. 숨 막히는 엄숙함 속에 단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관객들의 부릅뜬 눈 속으로 드디어 모리꼬네의 모습이 들어온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우렁찬 박수에 다소 왜소한 그의 몸은 ‘거장’이라는 수식어처럼 자꾸만 자꾸만 커져간다.

80인조 오케스트라와 100인조 합창단

모리꼬네의 지휘봉 아래 드디어 영화 <언터처블>의 주제곡을 시작으로 무대가 열린다. 이번 공연은 ‘삶과 전설’ ‘사회 속의 시네마’ ‘조각난 악보들’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의 신화와 모더니티’ ‘비극, 서정 그리고 서사시의 시네마’ 등 모두 5개 테마로 진행됐는데, 테마가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우렁찬 환호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고, 모리꼬네는 메인 연주자들을 격려한 뒤 깊이 머리 숙인 인사로 답례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한 영화만도 4백여 편. 방대한 그의 히트곡 가운데 과연 공연에서는 어떤 음악들이 연주될지 궁금했다. 앞서 공연기획사 측에서는 “유럽이나 미국, 또 우리나라에서 즐겨 듣는 음악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모리꼬네에게 특별히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의 연주를 요청했는데, 이를 프로그램에 흔쾌히 반영해 주셔서, 아마 좋아하는 곡들은 다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열정적인 지휘

당일 무대에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알제리의 전투> <시실리안 패밀리> <석양의 무법자> <미션> 등의 테마곡이 연주됐는데, 영화음악이라는 게 대부분 메인 테마곡에 익숙한 만큼, 일반 배경 음악이 흐를 때는 다소 어렵고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리꼬네가 2백 명에 달하는 단원들을 지휘하며 소리를 아우르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로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80이라는 나이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표정과 심혈을 기울인 지휘, 꼿꼿한 몸가짐과 달리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의 손끝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게다가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등 유독 여자 연주자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깡마른 몸에 수수한 옷차림, 안경 너머로 악보를 보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학구적이었다. 또 곡마다 모리꼬네에게 한껏 집중한 그들의 연주는 자신감에 넘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섬세했다. 중간에 음향 사고도 있었지만, 술렁이는 객석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미동도 없이 완벽한 연주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연주자들을 독려하는 모리꼬네

이렇게 한참을 숨죽여 듣던 관객들,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익숙한 멜로디가 이어지자 한껏 반가움을 표한다. 특히 이 무대에서는 스웨덴 출신 소프라노가 함께했는데, 앞선 무대와 달리 박진감이 넘치는 멜로디에 소프라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가창력까지 더해져, 객석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팔짱을 낀 듯한 자세로 턱을 한껏 쳐들고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대의 무법자’처럼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진 테마 ‘비극, 서정 그리고 서사시의 시네마’에서 드디어 영화 <미션>의 테마곡들이 이어지자, 객석은 거의 넋을 잃은 표정이다.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연주될 때는 급기야 벅찬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친다. 음악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이 얼마나 대단한지. 뭐랄까, 육체와 정신이 분리돼, 잠시 고단한 몸을 뒤로 영혼에 꿈결 같은 휴식을 주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곡은 이런 마음에 딱 들어맞는 ‘지구 안의 천상.’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길고 뜨거운 박수로 답했다.

물론 그 황홀한 환호에 모리꼬네는 다시 무대에 올라 깊게 머리 숙여 인사했고, 영화 <시네마 천국>의 메인 테마곡으로 한국 팬들을 향한 그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연주가 끝나자, 또다시 기립박수와 열띤 환호! 결국 모리꼬네는 세 번의 커튼콜 무대를 통해 ‘엑스터시 오브 골드’와 ‘히어즈 투 유’까지 연주한 뒤, 마지막에는 ‘이제는 정말 안녕’이라는 듯 악보를 챙겨들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관객들은 그 모습에 한참을 웃으며 끝까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객석의 뜨거운 환호에 환하게 웃는 모리꼬네

이번 무대는 영화 <러브 어페어>의 테마곡을 들을 수 없었던 것과, 테마별로 각 영화의 영상이 더해졌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와 말 한 마디 없이 열정적으로 연주하던, 그래서 더 고혹적이던 모리꼬네의 모습을 실컷 봤으니 크게 섭섭하지는 않다.

공연이 끝나고도 며칠째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고 있다. 참 쓸쓸하고 아득한 멜로디. 영화의 멋진 장면들까지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그래, 살아 있으니 됐다, 사랑한 걸로 됐다.’고 되뇌고 있다. 모리꼬네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은 뒤, ‘이 상은 착지가 아닌 출발’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영화에,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환희와 기쁨, 사랑과 행복 그리고 후회와 절망의 감동을 더 깊게 새겨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엔니오 모리꼬네 내한공연
'Ennio Morricone Cinema Concerto in Seoul 2007'

2007년 10월 2일 ~ 3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엔니오 모리꼬네 시네마 콘체르토 Part II

2007년 가을 첫 내한 공연을 연 엔니오 모리꼬네가 오는 5월 다시 한 번 내한공연을 가진다. 이번 내한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소중한 가족, 친지들에게 주옥 같은 영화 음악의 감동을 선사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내한공연은 오는 2009년 5월 26일~27일 양일 저녁 8시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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