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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땅에서 통속을 그리워하다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5분,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습니다. 그는 그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딛기에 앞서 말했습니다. “여기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저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를 갈라놓고 우리 민족을 고통에 빠트린 금단의 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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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5분,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습니다. 그는 그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딛기에 앞서 말했습니다. “여기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저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를 갈라놓고 우리 민족을 고통에 빠트린 금단의 벽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저는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마침내 금단의 선은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전날이 건군 59주년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국군의 날이 10월 1일인 것은 1950년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까지 몰렸던 우리의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대반격을 개시해 수도 서울을 회복하고 38선을 돌파한 날이 10월 1일이기 때문입니다.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운명을 건져낸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그 역사적인 다음 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여전히 휴전체제를 못 면하고 있는 분단의 땅에 평화의 꽃씨를 뿌리기 위해 북으로 향한 것입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 ⓒ 연합뉴스

뉴스를 보면서, 비록 전후세대로 태어나 전쟁의 비참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저는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굴곡진 현대사의 격랑을 일으킨 것이 바로 분단이란 사실을 저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구석구석에 분단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고 지금까지도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분단이란 괴물의 마수는 우리의 정신과 이성을 반신불수로 만들며 그로 인한 골병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멀리로는 동족상잔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 했고 군부독재를 용인해야 했으며 신성한 ‘개인’을 주장하는 것이 ‘간첩질’이 되는 암흑의 시대를 우리는 경험해야 했습니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호소가 ‘불온’이 되는 이 모순의 땅에서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노예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분단 의식은 언제나 피상적이며 감성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을 빛나는 청춘으로 사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학문에 인간이 없고 이념에 사람이 없으면 이는 모두 가짜입니다. 분단은 바로 그 가짜의 것들이 진짜처럼 행세하도록, 그 가짜를 진짜로 맹신하도록 우리에게 광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무조건의 수용과 무조건의 배척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오랜 세월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굳어버렸고 분단은 그렇게 한 개인의 정신까지도 지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 세대는 너무나 모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알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한 문제가 분단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념은 한 인간의 운명을 희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획책하며 세상을 전쟁의 아비규환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또한 한 체제 내의 구성원 간을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도록 부추깁니다. 분단 이전에는 식민이 있습니다. 외세에 짓밟힌 피식민의 역사가 오늘날의 분단을 잉태한 모태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의 근대는 곧 식민의 근대요(『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 우리의 현대사는 바로 분단의 역사입니다. 억압과 수탈의 피식민에서 살아남은 우리에게 강요된 이데올로기의 분단은 참으로 처참한 개인의 억울함과 희생을 강제한 것이었습니다. 분단은 생존의 문제이자 개인적 삶의 가치가 총체적으로 부정되는 불모의 세상에 우리를 내동댕이치고 말았습니다. 조정래는 『인간연습』에서 말합니다.

“시대는 변해가고, 그 파도는 거칠고 매정했다. 그 거센 시대의 파도 속에서 개개인은 하나씩의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다.”(『인간연습』 10쪽)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려고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그 반대로 비인간적으로 운용해왔으니 그런 체제가 망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인간연습』 100쪽)


사회주의의 몰락을 바라보는 한 사상범의 육성 고백이 아니더라도 이념을 골수에 박은 채로 인간을 저버린 세상을 견디어내야 했던 운명의 경고는 참으로 섬뜩합니다. “환상이 아니라 망상이었던” 긴 영어의 세월 동안 그가 전향서를 쓰지 못한 것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이나 북이나 자신의 기득권과 권력 유지를 위해 이념을 들먹이며 인간을 부정하려는 무리로 넘쳐납니다.

우리의 문학, 해방부터 1980년대까지의 문학은 곧 분단문학이라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 기왕에 인용한 조정래의 근현대사 대하장편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비롯하여 최근의 『오 하느님』까지, 특히 소설 속에는 우리의 식민과 분단이 녹아 있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인물의 삶보다는 굴곡과 광풍의 시대가 개인에게 던진 민초의 운명이 그 안에서 피식민에 통곡하고 분단에 오열하며 각혈과도 같은 한을 토해냅니다.

분단과 식민을 말하는 도중에 소설을 끄집어내는 것은 경직된 의식의 관절에 역사 인식의 유연성을 길러주는 데 소설만 한 것이 없는 까닭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속편 격에 해당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같은 딱딱한 책은 아무리 베스트셀러라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습니다.

소설은 비록 꾸며낸 이야기지만 작가는 작품을 통해 현실보다 더욱 사실적인 세계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 속에는 당대가 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 있으며 긴장과 갈등을 고조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인물과 사건은 곧 역사입니다. 또한 소설은 한 시대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경험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는 당대의 정신과 전형典型을 드러내고 주인공인 ‘문제적 개인’은 시대를 증언합니다.

남과 북을 가르는 노란 금에 선 대통령을 보면서, 필자는 『광장』(최인훈)의 이명훈을 떠올렸습니다.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으로 가는 뱃전에서 멀어지는 조국의 산하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려야했던 그는 지금 타국의 어디에서 저 소식을 듣고는 있는 것일까? 들었다면 반세기 동안 피맺힌 가슴에 그나마 응어리진 어혈은 풀렸을까. 죽어 구천을 떠돌고 있다면 이제는 저승의 문턱에 스스로 다다를 수 있을까?

『장마』(윤흥길) 끝난 평양의 하늘 아래에서 이문열(『영웅시대』)과 임철우(『아버지의 땅』)는 얼굴조차 희미한 아버지를 만날 수는 있을까, 소식이라도 들을 수는 있는 것인지? 분단의 현장을 비추는 화면이면 으레 보이던 판문점이 보이지 않는 오늘의 방북을 보는 이호철(『판문점』)의 주름진 눈가에는 고향 원산을 향한 한스런 그리움이 눈물로 맺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단을 고발하고 통일을 염원했던 많은 작가의 노고가 필자의 가슴에서 파동하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하림과 대치 사이에서 간첩이 되어야 했던 여옥의 그 슬픈 『여명의 눈동자』(김성종)가 제게 많은 하소연을 합니다. 문화방송의 영상으로 만난 그들의 운명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집니다. 하림과 대치와 같은 별을 타고 난 <서울 1945>의 동우와 운혁 그리고 개희의 엇갈린 사랑이 정지된 필름처럼 흐릿함과 또렷함을 반복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치 그들의 격한 울음에 떠는 운명의 어깨인 양 말입니다.

눈시울 붉어진 동공에는 흐릿한 한 여자의 일생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주의자 이강국을 사랑한 것이 죄가 된 김수임의 슬픈 사랑이, 기억나지 않는 흑백 필름으로 스크린에 투영되어 움직입니다. 결국에는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형장의 살덩이로 버려져야 했던 박헌영이 서울의 어느 골목길로 변장한 모습으로 숨어들기도 합니다. 지리산에서 죽어간 이현상의 동지(『남부군』)들이 흘리고 뿌린,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핏방울이 하얀 설원의 침묵을 깨트리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채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흐르는 눈밭에서는 친구의 주검을 안고 실신할 듯 오열하는 하림이 있습니다. 곧 죽을 듯 지치고 멍한 하림은 남은 기력을 다 모아 조용한 절규를 토해냅니다. 갇혀 있던 울분과 미쳐가는 운명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끊어질듯 소리치며 올라옵니다.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나는 남았다. 남은 자에게는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남겨진 자에게는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트남 시인 반레는 죽어간 친구를 추억하며 혁명의 정글을 기록하였습니다(『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방현석이 쓴 「존재의 형식」을 함께 생각할 것이고 「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얀 전쟁』(안정효)의 문제아처럼 분열된 의식과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파괴된 자의식 사이에서 고통스런 현실의 시간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분단이 여옥과 수임의 사랑을 용인하지 못했듯이 『오래된 정원』(황석영) 속의 연인들은 그 분단이 만들어 놓은 이념의 감옥, 불임의 세상에서 끝내 그리워만 하다가 영원한 이별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꿈꾸고 희원했던 정원을 이제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이유로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 다시 보았던 교육방송의 문화사 시리즈 <명동백작>의 두 주인공 박인환과 김수영은 분단을 극복한 미래에는 다시 화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박인환의 시를 읽고 고흐의 그림 <파리의 7월 14일>을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오고 하수상한 정치의 계절에 반동의 바람 거센 사극 열풍이 잦아든 세월에는 시인처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 노래하는 상상을 합니다. 식민과 분단을 깨치기 위해 무던 애를 썼던 그 어느 날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의 방울소리를 듣습니다. 오늘의 세대처럼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생 가운데에서 분단을 잊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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