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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방식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공포만화 『피안도』

『피안도』 동양에는 흡혈귀 신화가 많지 않다고 한다. 설화나 민담을 보아도 인육을 통째로 먹는 경우는 있어도 피만 빨아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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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도』 동양에는 흡혈귀 신화가 많지 않다고 한다. 설화나 민담을 보아도 인육을 통째로 먹는 경우는 있어도 피만 빨아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서양에서 ‘피’를 생명의 원천으로 삼는 존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서구에서 흡혈귀 이야기가 들어온 이래, 동양에서도 흡혈귀의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졌다. 소설로는 오노 후유미의 『시귀』와 키쿠치 히데유키의 『뱀파이어 헌터 D』, 만화로는 토우메 케이의 『양의 노래』와 히라노 코우타의 『헬싱』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초인으로서의 흡혈귀도 있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로서 존재하는 흡혈귀도 있다. 이제 흡혈귀라는 존재는 동양에서도 무척이나 익숙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츠모토 코지의 『피안도』 역시 흡혈귀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공간이 약간 특이하다. 흡혈귀 이야기의 대부분은 외부에서 흡혈귀가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평화롭던 도시가 흡혈귀라는 절대 강자에게 어떻게 유린당하는가, 평온한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피안도』는 정반대로 흡혈귀가 들끓는 고립된 섬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분명히 현대의 이야기지만, 『피안도』는 악몽의 판타지처럼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키라는 레이라는 여성을 만난다. 레이는 행방불명된 형 아츠시의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피를 빠는 괴물 같은 남자와 함께 있었다. 남자의 습격을 받은 아키라와 친구들은 계속 살아나는 남자를 겨우 죽이고 나서 레이에게서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레이의 고향 섬에 흡혈귀 일당이 있다는 것이다. 영웅심에 들뜬 아키라의 친구들은 흡혈귀를 물리치러 섬에 가기로 한다. 하지만 가벼운 피크닉 정도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피안도는 지옥 그 자체였다. 이미 섬 전체가 흡혈귀의 소굴이 되어 있고 아키라와 친구들은 섬에 들어가기도 전에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된 아키라와 친구들은 산 채로 의자에 묶여 죽을 때까지 피를 빨려야만 하는 운명이다.

『피안도』는 흡사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진행된다. 아키라와 친구들에게는 끊임없이 미션이 주어진다. 첫 난관은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감옥에서 탈출한 후에는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안 후에는 다시 흡혈귀들과 대적한다. 아키라는 형인 아츠시를 만나고, 다시 아츠시의 숙적인 흡혈귀 두목 미야비를 만난다. 악귀, 망자 등 새로운 괴물도 속속 등장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난관이 등장하고, 난관은 더욱더 힘들어진다. 아키라와 친구들은 자신의 능력치를 높여 새로운 임무를 돌파해야만 한다. 『피안도』는 공포만화면서 동시에 액션만화기도 하다.

『피안도』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피안도』의 전개는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이 살려고 친구를 사지에 몰아넣거나, 형제간의 애증 관계가 교차하는 등은 이미 공포영화를 통해 익숙한 이야기다. 흡혈귀가 피를 빨지 못할 때 돌연변이가 되는 악귀나, 악귀가 될 신체적 능력을 갖추지 못해 도태되어버리는 망자 같은 것도 익숙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섬 전체를 포위하고 있는 바다의 악귀라든가 아츠시와 레이의 비극적인 운명, 새롭게 밝혀지는 미야비의 정체 등은 『피안도』를 예상외의 전개로 휙휙 이끌어간다. 익숙한 상황이 벌어지면서도, 그 상황은 전혀 예상외의 전개로 틀어진다. 전형적인 어드벤처 게임 같으면서도 『피안도』의 본질은 역시 공포다. 우리가 이미 공포영화 등에서 보았던 끔찍한 것이 극단적인 형태로 농축된 기발한 스토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흡혈귀에 대한 독특한 해석 역시 주목할 만하다. 레이는 아키라에게 오래된 사진을 보여준다. 메이지 유신 시절의 사진에는 미야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은 바로 흡혈귀 가족이었고, 미야비는 그들의 장남이었다. 흡혈귀 가족은 피안도에서 일반 주민들과 공존관계를 유지해왔다. 어느 정도의 피만 마시면 생존할 수 있기에, 주민들은 목숨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피를 제공하면서 함께 지낸 것이다. 흡혈귀들은 신사에 사는 일종의 신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흡혈을 해도 전염은 되지 않고, 유전으로만 흡혈귀가 이어졌다. 그런데 흡혈귀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 군부가 최강의 병사를 만들겠다면서 미야비의 가족을 이용하여 생체실험을 하였다. 그 실험과 가장 강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미야비의 개인적인 욕망이 어우러져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흡혈귀가 탄생한 것이다.

하나씩 놓고 보면 새롭지는 않지만, 『피안도』는 익숙한 것을 독창적인 조합으로 배열하며 새로운 공포를 안겨준다. 또한 단지 공포만이 아니라 극한상황에서 드러나는 아키라와 레이 등 다양한 사람들의 깊숙한 감정이 가슴을 울린다. 『피안도』는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섬뜩한 공포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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