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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한류의 주역'이라는 연예인을 보는 안쓰러움

'한류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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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자격이 아니라, 재능 있는 아시아계 아티스트 개인의 자격으로 북미 시장에 진출했고, 개인 자격으로 고충을 겪는 겁니다.

0. 이번 칼럼은 특정 인물을 다루는 게 아니라, ‘한류’라는 현상이 국내 언론과 대중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소비되는지 보면서 제가 투덜대는 형식이 될 겁니다.

1. 이 칼럼이 채널예스에 게재될 즈음이면 다들 한 번쯤은 가수 비에 대해 ‘악성루머’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미국 회사 Rain Corporation이 제기한, ‘Rain’이라는 이름의 서비스권 침해 소송 때문에 시작됐어요. 법원 판결은 14일에 나온다고 하는데, 혹시라도 불리한 판결이 나왔을 때 생길 손해를 고려해서 미국 투어를 무기한 연기했다고 하지요. 설상가상으로 비는 7월부터 워쇼스키 형제의 신작 <스피드 레이서>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미국 투어는 빨라도 8월 이후에나 가능할 거란 이야기도 들려오더군요. 월드 투어 주관사 스타M 홈페이지에 항의가 빗발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 팬 사이트에선 비를 믿고 지지하는 현지 팬과 실망한 나머지 어느 정도 신뢰를 접은 팬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악성루머’라는 건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비의 월드 투어 주관사 스타M에서 돈을 가로채려고 공연을 고의적으로 취소했다더라’는 거죠. 기사에 대한 반응 중 흥미로운 리플이 보이더군요. ‘극동의 변방에 있는 나라 출신 가수가 미국에서 달러화 벌어가니까 곱게 안 보여서 루머를 퍼뜨리나 보다’ 하는 리플이에요. 거칠게 요약한 게 아니에요. 진짜로 이건 ‘텃세다’라고 믿는 분이 생각 외로 많더군요. 미국 비 팬클럽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 팬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영문 번역 게시물은 더 거대한 음모를 제시합니다. ‘미국 기업들이 아시아에 진출할 때, 아시아 업체가 먼저 등록해 놓은 상호 때문에 상호를 새로 작명하느라 돈을 엄청 날린 것에 대한 앙심이 오늘날의 결과를 낳았다’라는 놀라운 음모더군요. 아무리 의심 가는 구석이 있다 하더라도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극단적인 음모론으로 달려가는 상상력은 참 신기해요. 그런 결론으로 달려갈 수 있는 건 그 기반에 ‘비의 북미 시장 진출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라는 전제가 깔렸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정말 그런 세력이 있는 걸까요? 글쎄요. 루머가 퍼지게 된 건 티켓 환불 과정이 원만하지 못한 탓에 현지 팬들과 현지 기획사들의 원성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제일 정확할 겁니다. 특별히 어떤 특정 세력에 의한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해서 좋을 일은 없어요. 생산적인 일도 아니고요. 북미 시장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아시아계 인구를 공략할 아시아계 스타가 푸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아시아계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신규 시장이 생겼다는 소리거든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환호할 만한 스타를 육성하는 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에요. 판은 키우면 키울수록 좋으니까요. 이미 성룡 같은 홍콩 스타들이 성공적으로 현지에 진출했고, 점차 영화나 드라마에 아시아인의 배역이 늘어나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요. 루시 리우, 데븐 아오키, 릭 윤, 그레이스 박, 김윤진, 샌드라 오…. 음악 쪽도 그래요. 최근 한국계 혼혈 팝스타 에이머리가 보여주는 활약은 주목할 만합니다. 어느 정도 시장 창출의 가능성이 보이는 현지 상황과, 아시아 시장에서 일차적인 검증을 끝낸 비가 만나면 나쁘지 않은 반응을 기대할 만하지요. 그러니 비가 북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해서 아시아계 소비시장이 더 확장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신규 소비 시장이 창출되면 장사하기 더 편해지지요. 관건은 비가 얼마나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얼마나 당대 대중의 기호와 호응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느냐지, 뭘 해보기도 전에 텃세를 놓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도 인터넷에 떠도는 음모론 기저에 깔린 ‘텃세론’에 사람들이 쉽게 동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 비가 단순히 ‘비’라는 아티스트 개인의 자격으로 북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를 대표해서 북미 시장에 진출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명백하게 ‘우리 편’처럼 보이는 ‘한류’라는 가상의 진영이 있고, 그 반대편에 ‘진출’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인 ‘북미 시장’을 호명해서 머릿속에 가상의 전선을 만든?는 겁니다. 이런 식의 생각은 아티스트 개인에게 지나친 부담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한 개인이 한 사회의 당대 대중문화를 대표할 수 있다는 식의 위험천만한 사고방식이에요. 비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자격이 아니라, 재능 있는 아시아계 아티스트 개인의 자격으로 북미 시장에 진출했고, 개인 자격으로 고충을 겪는 겁니다. 현 상황에서 비의 팬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비가 처한 어려움을 잘 극복하길 바라는 것 정도일 겁니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비가 겪는 고충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순간 사태 판단은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가 버려요. ‘비의 승승장구를 배 아파하고 훼방 놓으려는 악의 어린 세력이 있고, 아무 잘못 없는 비는 마냥 당하고만 있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반응이 과연 비에게 도움이 될까요? 아닐 겁니다.

2. <버라이어티>지 기자 달시 파켓이 작년 말, 자신이 운영하는 한국영화 사이트 Koreanfilm.org에 조심스레 전도연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전 매우 무모한 예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도연의 연기를 평가절하하는 게 아니라, 아직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수상을 점치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도 ‘보기에 따라선 내가 팬보이적 감상으로 위태로운 예측을 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라고 이야기를 깔아 놓고 시작하더군요. 그가 꼽았던 근거를 보면 ‘<밀양>이 5월에 완성될 예정인데, 딱 칸 영화제 시즌이다. 2006년에 이창동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아서 칸 영화제 집행위에 미칠 영향력이 더 커졌을 것이다. <밀양>에서 전도연이 맡은 배역이 감정적으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일 만한 배역이라더라’ 등등, 그럴싸하긴 해도 여우주연상을 확신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밀양>이 뚜껑을 열자 전 언론이 전도연의 연기를 극찬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였죠. 그러면서 슬그머니 칸 영화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더니, <밀양>이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자 다들 달시의 예측을 따라 칸 여우주연상을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상영 후 현지 반응이 폭발적이자 한국 언론은 무슨 맡겨 놓은 상 찾아가려는 사람처럼, 아예 대놓고 시상식 날만을 기다렸어요. 물론 현지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긴 했어요. 어떤 프랑스 기자는 전도연에게 ‘당신이 상을 못 받으면 내가 시상식장에 난입해서 난동이라도 벌이겠다’라고 공언할 지경이었죠. 영화에 대해 평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도연에 대한 극찬은 국적과 매체를 불문하고 거의 일치했어요. 그리고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전도연은 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아시아계 여배우로는 장만옥에 이은 두 번째 수상이었고, 순수 아시아 제작으로 만든 영화로는 첫 여우주연상 수상이었죠.


참 잘된 일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연기의 여왕이었음에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아쉬움을 한 번에 씻어버렸죠. 내수 시장의 파탄과 외국 수출의 위축으로 안팎으로 주눅이 든 한국 영화계에 좋은 소식인 건 분명합니다. 덕분에 <밀양>의 예매율도 상승했으니 상업적으로도 값진 소득이 있었던 셈이에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이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설레발입니다. 칸의 ‘여왕’이란 표현을 입에 달고 다니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제 메릴 스트립, 이자벨 위페르, 장만옥과 동급’이라는 찬사, 심지어 칸 영화제를 ‘굴복’시켰다는, 경악할 만한 표현까지… 기사라는 이름을 달고 웹상에 유통되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탄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라는 둥, ‘한국의 美’를 대표해서 상을 탔다는 둥, ‘명실 공히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라 이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일만 남았’다는 둥… 말이 넘칩니다. 그 와중에 어떤 기자는 전도연이 받은 상의 정확한 명칭을 알려주겠다며 ‘Le Prix d'interpretation feminine’을 ‘프리 드인터프리테이션 페미닌’이라는 전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표기하는,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하더군요.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그해 출품된 작품의 여자 배우 중 가장 동의할 만한 연기력을 선보였다는 얘기지, 모두를 ‘굴복’시키는 ‘여왕’이 되었단 소리는 아닙니다. 한 네티즌이 쓴 ‘칸 집행위가 보면 참 좋아하겠다. 상 주고 굴복하고…’라는 리플은 정곡을 찌르죠. 게다가 연기라는 게 그렇잖아요.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상을 받으려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목표가 ‘우승’인 올림픽과 비교를 하면 어쩌자는 이야기인지 말입니다. ‘동급’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해보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면 <화양연화>로 칸 남우주연상을 받은 양조위와, <제8요일>로 칸 남우주연상을 받은 다운증후군 장애인 배우 파스칼 뒤켄의 연기는 ‘동급’일까요? 두 사람의 연기가 지닌 의미가 각기 다르고 연기의 테크닉이 각기 다른데 그걸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게다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은 매년 바뀌고, 매년 각자 다른 기준으로 심사한단 말입니다. 자, ‘동급’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급’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이렇게 각기 다른 배우의 각양각색 연기를, 어떤 상을 받았느냐를 놓고 등급을 매겨 판단하겠다는 소리예요. 아니, 솔직히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배우에게 그런 식으로 급수를 매긴답니까? 배우가 무슨 1등급 소도 아니고 말입니다.

전도연은 <밀양>이라는 영화의 여자주인공 자격으로 상을 받은 거지, 한국 영화계를 대표로 상을 받았다거나, 한국의 미를 대변하려고 그 자리에 갔다거나 한 게 아니에요. 국가대표가 아니라니까요. 덩달아 기뻐하며 축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거야 자유지만, 경우에 어긋난 비유와 과도한 언사는 오히려 전도연이 이룬 성취의 빛이 바래게 합니다. 한 스포츠 신문이 ‘미국 <캐리비안의 해적>에 빼앗긴 스크린을 되찾아 온 한국 영웅 <밀양>’이라는 식겁할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서는… 더 말 안 하겠습니다.

이 모든 설레발의 근원이요? 위에서 말했잖습니까. ‘한류’라는 진영의 선두에 서서 외국에 ‘한국 대중문화’의 우수성을 선전하고 온 장한 ‘우리 편’이란 생각이 드니까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메릴 스트립, 장만옥’과 같은 ‘월드스타’가 생긴 것이고, ‘한국의 미’를 자랑하고 온 것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여배우가 칸을 ‘굴복’시켰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전도연이 이뤄낸 값진 소득을 우리 모두의 업적으로 은근슬쩍 공유하는 이런 이상한 자부심. 자, 만약에 이렇게 우리 멋대로 머릿속에서 ‘우리 편’이라고 정해놓은 사람들의 외유가 길어지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3. 보아에 대한 일부 네티즌의 반응 중 참 이상하다 싶은 반응이 있어요. 처음에 보아가 일본에 진출해서 오리콘 싱글 차트에 오를 때는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신문이며 방송이며 벌써 일본 음악계 정상에 선 것처럼 보아의 선전을 기원하던 게 엊그제 같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아가 한국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보아의 일본 앨범이 한국에 수입, 판매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한국 쇼 프로그램보다 일본 쇼 프로그램에서 보는 날이 길어지고, 보아의 쇼를 보려면 자막파일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툴툴대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저거 아주 일본인 다 됐지. 엔화가 그렇게 좋냐. 하긴, 나라도 그러겠다’라는 식의 반응 말입니다. 보아의 일본 활약을 다룬 기사에 달린 리플란이 보아를 옹호하는 네티즌과 보아를 비난하는 네티즌의 격전장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보아가 일본 아이돌이냐 한국 아이돌이냐’의 문제가 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반면 신문기사에선 계속 ‘한류의 선두주자, 걸어다니는 중소기업, 아시아의 별, 자랑스러운 한국인’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 정의하지 못해 안달이고요. 정작 보아라는 아티스트 개인을 좋아하고 아끼는 팬들은 이 틈바구니에서 참 괴롭죠. 보아는 그냥 보아인데. 참 열심히 노력하는 아티스트일 뿐인데.


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볼게요. 아직 한일 양국 간 감정의 골이 깊은 건 사실이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종종 그런 일을 겪곤 하죠. 독도 문제에 대해 확답을 피한 탓에 한일 양쪽에서 곤욕을 치른 배용준, 언어 문제로 말실수를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된 조혜련, ‘그라비아’ 화보를 찍고 왔다고 해서 사진이 공개되기도 전에 비난을 샀던 고아라…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긴 하죠. <게이샤의 추억>에 장쯔이, 공리, 양자경 같은 중국 배우가 우르르 출연했던 것에 대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중국인의 비난이 쏟아졌던 것, 장쯔이가 일본에서 촬영한 지면 광고에서 쇄골이 훤히 드러난 모습을 선보여서 중국 내에서 완전히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는 것 등은 낯선 일이 아니에요. 지난 세기 내내 일본과 관계가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한국과 중국이 비슷하게 겪는 문제겠지요. 하지만, 왜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국적 단위로 정의되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왜 대중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재능과 매력에 국적을 붙여서, 핏줄을 따져서 생각하려는 함정에 쉽게 빠지고 말까요? 보아에겐 배신감에 찬 목소리로 ‘당신은 한국 아이돌이냐 일본 아이돌이냐’를 물어보던 사람들은 왜 Towa Tei에겐 그가 요구한 적도 없고 어디 가서 강조한 적도 없는데 굳이 그가 한국계 일본인임을 강조하면서 ‘정동화’라고 부르고 감동적인 표정으로 ‘역시 한국인의 저력’이라는 말을 운운할까요? 왜 사람들은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할 때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냥 그들에게 ‘한국 문화’를 대변하고 ‘한국’을 세계 속에 알려 달라는 부탁 대신 열심히 자기 재능을 발산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될까요?

글의 끝까지 투덜대면서 마무리를 하게 생겼군요. 그냥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윤석호 PD가 일본 시장을 고려하고 <겨울연가>를 찍은 건 아니었을 겁니다. 이병훈 PD와 김영현 작가가 일본 시장을 공략하려고 <대장금>을 만든 것도 아니었을 거고요.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한국 문화를 대표한다’고 자각하며 작업했을 리도 없고요. 그저 만들고 싶은 작품, 만들어야 하는 개별 작품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개별적인 각각의 작품, 개개 아티스트의 작업에 ‘한류’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한국산’이라고 국적을 달자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이라는 이상한 자의식의 과잉, ‘한국 문화에 세계가 탄복한다’는 섣부르기 그지없는 낙관적인 사태 진단과 그에 이은 ‘한류우드’라는 조악한 작명의 테마파크 조성, 그러나 정작 ‘일본 시장을 공략하려고’ 만들었다는 드라마와 영화의 처참한 실패, 세계 시장에서 한국 영화, 드라마의 가격 급락, 수출 저조… 위에서도 실컷 떠들었잖아요. 이상한 음모론이 웹상을 떠돌아다니고, ‘굴복’이네 ‘동급’이네 하는, 과도한 경쟁의식에 젖은 단어가 광적으로 쏟아지고, 아티스트에 대해 호오를 가리는 기준을 재능이 아니라 어디서 더 오래 활동하느냐 하는 데 놓고 국적을 따져 묻는 바보 같은 의견이 속출하고 말입니다.

전 한류를 전파해야 한다는 강박을 대중문화 종사자들의 어깨에서 내려주자고, 그들의 가슴에서 국기를 떼어내고 그냥 개인으로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아티스트 개개인이 그냥 자유롭게 뛰놀며 재능을 펼치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습니다. ‘한류의 선두주자 비’가 아니라 그냥 가수 비를 응원하고, ‘한국의 미를 선보인 전도연’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도연을 축하하고, 보아가 일어로 노래하든 한국어로 노래하든 보아는 그냥 보아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순 없을까요? 저는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재능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그들의 앞날에 무운을 빌어 봅니다. 그리고 국적이라는 조건을 떠나 재능 있는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 광경은, 정말로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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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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