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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면 거짓말하라 - 『라이어 게임』

100엔짜리 동전을 주워도 파출소에 신고할 정도로 착하지만, 사람들 말에 늘 속기만 하는 칸자키 나오. 어느 날, 그녀에게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별생각 없이 열어본 나오는 자신이 ‘라이어 게임’에 말려든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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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엔짜리 동전을 주워도 파출소에 신고할 정도로 착하지만, 사람들 말에 늘 속기만 하는 칸자키 나오. 어느 날, 그녀에게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별생각 없이 열어본 나오는 자신이 ‘라이어 게임’에 말려든 것을 알게 된다. 상자를 여는 것으로 게임에 참가하게 되고, 취소는 불가능하다. 동봉된 1억 엔은 게임 머니로 사용하고, 지정된 상대에게서 돈을 뺏어내면 된다. 폭력이든, 거짓말을 쓰든 방법은 상관없다. 30일 후 게임 머니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된다. 승자는 잉여금을 가지고, 패자는 빚을 내서라도 부족한 돈을 반환해야 한다.

카이타미 시노부의 『라이어 게임』은 칸자키 나오에게 기묘한 상자가 배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가 보낸 것인지, 왜 나오가 선택된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취소는 불가능하고, 어쨌거나 돈을 잃으면 나오가 변상해야 한다. 그런데 대전 상대로 지정된 사람은 나오의 중학교 때 선생인 후지사와 카즈오다. 나오가 기억하기에 후지사와는 아주 다정하고 너그러운 선생이었다. 후지사와는 이런 게임 같은 데 말려들지 말자면서 일단 나오의 돈을 맡아서 가지고 있을 테니까, 30일 후 그냥 돈을 돌려주자고 한다. 착하고 순진한 나오는 선생에게 1억 엔을 맡기고 돌아서지만, 그게 바로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소연하는 나오에게, 후지사와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이 사회에서 살아가려고 어떤 거짓말을 해왔는지를 들려준다.

『라이어 게임』을 보면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이 떠오른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빚쟁이가 된 청년이 자신의 인생을 건 ‘도박’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그 도박이라는 것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처럼 화려한 풍경이 아니다. 가위바위보 게임이나 좁은 판자 위를 동시에 수십 명이 달려가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비인간적인 경쟁과 위선적인 게임을 은유하는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 법칙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한 노력과 머리싸움이 필요하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그가 살아남으려고 어떻게 싸워 가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라이어 게임』은 마치 TV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 같다. 리얼리티 쇼의 원조 격이라 할 <서바이버>는 오지에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팀을 갈라 경쟁하게 한다. 경쟁에서 진 팀은 한 명을 탈락시키고, 숫자가 줄어들면 하나의 팀이 되어 내부 경쟁을 하면서 한 명씩 탈락하게 된다. 패자가 탈락하는 단순한 경쟁 같지만, 뜻밖에 복잡한 변수가 있다. 처음에는 팀 간의 경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약자’를 탈락시키지만, 숫자가 줄어들면 개인의 우승에 위협이 되는 강자를 탈락시키려 한다. <서바이버> 시리즈가 거듭하면서, 참가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쓰기 시작한다. 탈락하지 않으려고 내부 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일부가 단결하여 그룹 이외의 사람을 탈락시키고, 수가 줄어들면 다시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이 난무하기도 하고,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편견 또는 단순한 감정이나 질투 같은 변수가 작용하기도 한다. 리얼리티 쇼는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솔직하고 폭력적인 프로그램이고, 그래서 시청자들도 열광한다. ‘리얼리티 쇼’라는 말처럼, 그 안에는 우리의 진짜 본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라이어 게임’이란 제목도 중의적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빼앗으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에 속아 1억 엔을 몽땅 뺏긴 나오는 전직 사기꾼을 찾아간다. 다단계 기업 슈에이 상사에게 역으로 사기를 쳐서 도산하게 한 아키야마 신이치. 아키야마 신이치는 후지사와의 심리를 이용하여 비교적 간단하게 1억 엔을 회수한다. 하지만 라이어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회전이 시작된다. 2회전은 22명의 1회전 통과자가 모인 저택에서 시작된다. 각자 1억 엔을 게임 머니로 갖고, 소수결이 이기는 게임을 벌인다. 누군가 ‘네’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22명이 ‘네’ ‘아니오’ 중 하나를 택한다. 그러면 다수의 답을 택한 사람은 탈락한다. 여기서 이기는 방법은 결국 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철저한 전략으로 그룹 속에서 단결하여 공작을 펼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서바이버>의 참가자들이 택했던 전략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똑같은 배신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 살아남고자 그룹을 만들려 하고, 누군가는 그들 사이에서 자신만 우승하려고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서바이버>에서 라이벌을 탈락시키려고 음해 공작을 펼치는 것처럼, 『라이어 게임』에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대신 엉뚱한 타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거짓말 없이는 결코 라이어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라이어 게임』『도박묵시록 카이지』처럼 이 사회의 모든 법칙이 얼마나 극심한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것인지 알려준다. 공정한 것 같지만, 사실 이 사회에서 이기는 방법은 대부분 ‘거짓말’ 혹은 ‘사기’다. 너무나도 착한 나오는 라이어 게임 1회전에서 진실을 알게 된다. 착하고 순진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한국에서도 정착하고 있는 리얼리티 쇼는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진실과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쟁’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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