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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상처받은, 갈 곳 없는 영혼을 구원하는 마지막 한 잔 『바텐더』

아라키 조가 원작을 쓰고, 나가토모 켄지가 그린 『바텐더』의 주인공 사사쿠라 류는 파리에서 바텐더로 일할 때 ‘신의 글라스’라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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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조가 원작을 쓰고, 나가토모 켄지가 그린 『바텐더』의 주인공 사사쿠라 류는 파리에서 바텐더로 일할 때 ‘신의 글라스’라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다. 얼핏 ‘신의 물방울’이 떠오르지만, 아류작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신의 물방울』이 와인의 오묘한 세계로 인도하는 길잡이라면, 『바텐더』 역시 위스키 등 세상의 모든 술에 대해 들려준다.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세상의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은 같지만, 제목에서 말해주듯 『바텐더』는 술 이상으로 ‘바텐더’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를 파고든다.

바텐더는 바Bar에서 손님의 주문을 받아 술을 내주고 대화도 나누는 사람을 말한다. 『바텐더』를 보기 전까지는, 바텐더Bartender가 바Bar와 텐더Tender가 합쳐져 ‘딱딱한 바에 상냥함이 생겨난다’라는 의미임을 몰랐다. 『바텐더』에 따르면, 세상에는 절대로 사람을 배신해서는 안 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의사, 약제사와 바텐더. 처리 방법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을 팔기 때문이다. 바텐더는 절대로 손님을 배신해서도 안 되고,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바라고 말할 수 없다.’ 사사쿠라 류는 그렇게 배웠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바텐더다.

바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굴까? 누군가와 같이 오기도 하지만, 홀로 찾아와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거나 조용히 한 잔을 마시고 가는 사람이 더 많다. ‘바는 원래 Hide Out, 갱들의 은신처라는 뜻’이다. ‘은신처이기에 바의 문은 무겁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거부라도 하듯 가게 간판도 작아서 눈에 띄지 않죠. 그 대신 일단 안으로 들어오면 그 무거운 문이 있기에 손님은 안심하고 바깥세상을 잊을 수 있는 겁니다. 직책이니 나이니 여러 가지 것들을 잊고 진짜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다들 저 문을 열 때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요.’ 카운터에 앉으면 마음이 솔직해지고, 그런 시간을 원하기에 바에 들어와 바텐더와 대화를 한다. ‘손님은 저 같은 애송이에게 말을 걸면서 실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과거와 대화를 하죠. 바란 그런 곳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텐더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방황하다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일에 지쳤을 때, 저 문을 열면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은 바를 찾는다. 하지만 그때 털어놓는 이야기가 반드시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때로는 거짓을 말할 수도 있고, 괴로운 자신을 속이려고 위장하기도 한다. 카운터는 일종의 무대다. ‘추한 거짓이 아니라 아름다운 거짓으로 장식하고 싶은’ 자신만의 무대인 셈이다.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때로는 울부짖는 손님을 바텐더는 부드럽게 맞아준다. ‘바텐더가 서비스하는 것은 즐거운 기억, 편안한 시간, 영혼의 치유’인 것이다. 사사쿠라의 스승은 ‘의사는 육체를, 바텐더는 손님의 영혼을 맡는 것. 그러니 절대 배신해선 안 돼’라고 말했다. 세상 모두가 손님의 적이라 해도, 바텐더만은 마지막 한편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바의 모든 술은 일종의 리바이버 칵테일, 기운을 내게 해 주는 술이다. ‘러스티 네일’이란 칵테일의 이름처럼, 바는 녹슬고 지친 손님의 마음을 빛나게 하고자 존재하는 곳이다. 『바텐더』는 술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를 찾아오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진실하게 들려준다.

『바텐더』에는 당연히 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맛의 달인』이나 『신의 물방울』을 보면서도 놀랐지만, 『바텐더』를 보면서 다시 실감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피카소와 스즈라는 술의 만남, 스카치위스키의 유래, 한 병의 샴페인에는 2억 개의 거품이 있어 별을 마신다고도 한다는 것, 샴페인과 맥주를 섞은 블랙 벨벳이란 칵테일, 올드 파가 정치인에게 인기 있는 이유, 헤밍웨이 다이키리의 유래 등등 술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에피소드가 무한정 나온다. 약간 『신의 물방울』을 견제하는 듯한 정보도 있다. 와인은 세계에 10만 종 이상이 있어, 맛도 10만 가지 이상이다. 하지만 칵테일은 무한하게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칵테일을 만드느냐에 따라 ‘손님의 인생을 살짝 바꿀 수 있는 마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의 물방울』보다 『바텐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바텐더』는 그냥 술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사사쿠라 류는 이미 ‘신의 글라스’라는 별명까지 붙은 일류 바텐더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본 최고의 바텐더인 ‘기술의 쿠즈하라’ ‘서비스의 히가시야마’ 등을 만나면서 사사쿠라 류는 끊임없이 배우고 또 성장한다. ‘손님에게 아부하며 맛으로서의 완성도를 지향하지 않게 되었을 때 바텐더로서의 타락이 시작된다. 바텐더는 늘 손님이 굴복할 만한 완벽한 맛을 목표로 해야 한다’ ‘바에 여러 가지 얼굴이 있듯이 손님에게도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그것을 모르면 3류 바텐더다. 손님의 상태가 어떤지, 무엇을 기대하고 바에 왔는지 알아야 한다’ 등등의 가르침을 계속 배우면서 사사쿠라는 전진한다. ‘인간은 바텐더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다. 바텐더라는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서비스업은 형태가 없는 일입니다. 이상을 높이지 않으면 자신이 망가지고 말죠. 일이라면 대충 속여 넘길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은 그럴 수 없으니까요’ 무슨 일을 하든 철학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바텐더』는 보여준다.

‘신의 글라스’라는 별명은 단지 최고의 술을 만들어준다는 뜻만은 아니다. 『바텐더』라는 만화가 그렇듯이, 바텐더에게 중요한 것은 최고의 술이 아니라 ‘고독하고 상처받은, 갈 곳 없는 영혼을 구원하는 마지막 한 잔’이다. ‘원 포 로드’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는 ‘작별을 아쉬워하며 나누는 한 잔’이라고 되어 있다. ‘때로는 자신을 속이고 정당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른의 세계입니다. 그래도 하루가 꼭 좋은 일만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죠. 그래서 ‘원 포 로드’ 돌아가는 길을 위해서 마시는 한 잔. 바의 한 잔으로 정말 작별을 고하는 건 오늘 하루 싫은 자신, 빌어먹을 자신인지도 몰라요. 이 한 잔으로 싫은 자신에게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기분을 갖게 되는 것이죠.’ 사사쿠라가 원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마지막 한 잔, ‘신의 글라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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