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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미쳤고, 학교교육은 엉터리다

미국의 교육자 존 테일러 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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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교육자 존 테일러 개토(John Taylor Gatto)의 일생을 교사직에 붙들어놓은, 그가 햇병아리 교사 시절 밀라그로스라는 학생에게 받은 카드의 문구는 내게도 해당한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찾을 수가 없어요.” 나는 개토 같은 선생님을 한번도 못 만났다.

걱정이다,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딸애가. 올 1학기 내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무사히 다닌 아이가 2학기 들어서 유치원 가길 꺼려서다. 아이의 유치원 등교 거부증세는 유치원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엄마와 떨어져 있는 걸 못 견디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1일 아빠의 병원 응급실 입원을 겪으면서 엄마 곁에 있으려는 경향이 더 심해졌다.

아빠와 엄마의 순탄치 않았던 학교생활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나는 교실에서 교사의 눈에 잘 안 띄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그런 학생이 되어갔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참으로 끔찍했다.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를 정도다. 학교생활의 참담함은 2년 남짓한 군대생활을 방불하게 한다. 다시 학교에 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어도 끔찍했던 학교생활의 실상은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잘 말해준다. 미국의 교육자 존 테일러 개토(John Taylor Gatto)의 일생을 교사직에 붙들어놓은, 그가 햇병아리 교사 시절 밀라그로스라는 학생에게 받은 카드의 문구는 내게도 해당한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찾을 수가 없어요.” 나는 개토 같은 선생님을 한번도 못 만났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찾을 수가 없어요”

(나를 가르친 분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구 아무개 선생님 - 내 실내화 한 짝을 훔쳐간 것은 경호였다. 경호의 신발주머니에서 내 이름이 쓰인 실내화가 나왔다. 40대 중반의 남자 선생님이 실내화를 치켜들며 네 것이냐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아니라고 했다.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다니,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실내화 한 짝을 잃어버린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한동안 양말발로 지냈다.

2학년 하 아무개 선생님 - 할머니나 다름없어 보이는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시험지용 8절지 찬조를 요구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가정형편을 들어 거절하셨다. 우등상을 탈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 못 탄 것이 그 때문일까? 그 이후 어머니는 운동회 때만 학교에 왔다.

3학년 김 아무개 선생님 - 처음으로 우등상을 받았다. 기뻤다. 키가 작았던 선생님에게 내 또래의 아들이 있어서 나를 배려하신 것 같다. 6학년까지 내리 우등상을 받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것 말고 다른 일은 떠오르지 않는다.

4학년 김 아무개 선생님 -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았다. 선생님 댁에도 가봤다. 겨울방학에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다. 학기 초에 혜준이를 심하게 야단치는 장면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 애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 듯했는데. 혜준이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4학년 담임선생님과 부부라는 소문을 들었다. 굳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5학년 김 아무개 선생님 - 난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혜준이보다 더 나빴다. 첫날, 본보기로 담임선생님에게 뺨 한 대를 맞았다. 몸집이 건장한 선생님의 손바닥 가격은 무척 강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앉은 자세가 불량했나? 어쨌든 이날 이후로 선생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내면 깊숙이 각인되었다. 나는 선생님들을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6학년 백 아무개 선생님 - 나는 제법 똑똑한 학생이었다. 어느 시험에선가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체육도 잘했다. 체육 공개수업에서 뜀틀을 훌쩍 뛰어넘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6학년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냅다 줄행랑을 놓았다. 꽤 오래 죄책감에 시달렸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은 음악선생님이었다. 나 혼자 청소하는 모습이 선생님 눈에 띄어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작곡가 현재명 선생이, 선생님이 나온 국립대 음악대학의 틀을 다졌다는 주장은 당시에도 뭔가 이상했다. 2학년 담임은 샌님형 과학선생님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무사안일하고 지나치게 안정지향적이었다. 그런 분은 교사로 부적격이다. 언젠가 우연히 신문에 난, 정부의 포상을 받는 정년퇴임 교사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다. 3학년 담임은 키가 작은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나는 그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은 ‘교도관’ 같았다. 전국체육대회 매스게임 연습을 하는 도중, 불미스런 사건을 촉발해서 근신 3일의 징계를 받았다. 교실에 남았어도 됐지만, 자청해서 무기정학이나 유기정학을 받은 중징계자들과 도서관에서 지냈다. 그래서 나는 학교도서관이 싫다. 2학년 담임선생님은 다시 뵙고 싶은 분이다. 어디서 뭘 하실지? 서울 중위권 대학의 원서작성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3학년 담임은 같은 지역 대학의 원서를 써주며 이렇게 말했다. “인재가 I대에 가네.”

지금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대학에서 ‘자체 휴강’을 많이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내가 만난 대학교수들 역시 초중고 교사들 못지않게 팍팍했다. 1980년대 중반, 말만 번지르르한 어느 교수는 강의시간에 운동권 학생들과 벌인 시국논쟁에서 억지를 부렸다. 또, 납?월북 시인과 당시 교도소에 갇힌 시인의 작품으로 시화전을 연 선배들에게 “나, 니들 책임 못 져”라고 한 교수도 있었다.

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

개토의 『바보 만들기』(김기협 옮김, 민들레, 2005)를 읽는데 밑줄을 긋느라 평소 시간의 두 배를 들였다. 정말 줄을 많이 쳤다. 그만큼 개토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이런 책은 백문이불여일독(百聞而不如一讀)이나, 살짝 맛보기를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이 책은 강연과 연설 문투로 되어 있다.

「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는 1991년 개토가 미 뉴욕 주 ‘올해의 교사’ 상을 받는 자리에서 한 연설을 정리한 것이다. 교사가 저지르는 일곱 가지 죄는 바로 교사가 가르치는 것들이다. 그 첫째는 ‘혼란’이다. 학교라는 곳은 졸업생이 어떤 참된 열정을 갖고 사회에 나서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뜻도 모를 전문용어로 뒤범벅된 공구상자를 들고 나가길 바란다. 학교에선 서로 작업에 연관성을 거의 못 느끼는 너무나 많은 어른이 자격도 없는 전문성을 내세우면서 아이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두 번째는 ‘교실에 갇혀 있기’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실에서 나가지 말라고 가르친다. 세 번째는 ‘무관심’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어떤 것에도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의 시간을 지배하는 감춰진 원리인 종소리는 학생들의 모든 노력을 무관심이 지배하도록 감염시킨다.

또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신감’ 등을 주입한다. 일곱 번째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숨을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너희는 항상 감시받고 있으며, 우리는 너희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다’고 주지시킨다.

그런데 ‘혼란’은 ‘분열’을 밑바탕 삼는 학교교육의 측면과 통한다. “이를테면 하나의 생각을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란 걸로 쪼개고, 또 그 과목들까지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누는가 하면, 수업 시간을 토막 내어 종소리만 울리면 수업을 마치도록 만드니,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방해받아 사그라질 수밖에요.”

개토는 학교에서는 논술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다고 말한다. 교사가 던져 주는 조각난 추상적 지식만을 습득한 결과, 졸업 무렵이면 학생은 고분고분하고 전제적 질서에 젖어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런 ‘소시민’은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대들 수가 없지요. 설혹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한결같이 지닐 줄도 모르고 넓게 생각할 줄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학교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은 비판하는 생각을 할 줄 모르고 올바르게 토론할 줄을 모르는 겁니다.”

개토가 40년 교사 생활을 바탕으로 까발린 미국 학교교육의 문제점은 그대로 우리 학교교육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완전히 빼다 박았다. 그런데 개토가 제시하는 ‘미치광이 학교’교육의 대안 중 일부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학교교육의 자유시장이 “독학까지 포함해 자기에게 맞는다고 생각되는 교육의 종류를 학생들이 선택하는” 거라 해도 “자유시장에 맡깁시다”라는 주장은 우리 현실에선 사교육의 입지를 넓혀주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미 대륙의 식민지 개척 초기 사회를 이상화하고, 옅으나마 미국인 특유의 애국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건 그가 미국인이라서 그럴 수 있다 쳐도 배타성이 결국에는 다양성을 가져온다는 변증법의 역설은 수긍하기 어렵다. 뭐, 이것 역시 이해 못 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개토가 창조론 신봉자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토는 은근히 진화론에 대한 적의를 드러낸다.
“생물의 진화가 하나의 이론이 아닌 사실이라고 가?치라는 지시를 받으면 저는 그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35쪽)
“한참 시를 짓고 있던 젊은이도 종이 울리면 바로 공책을 덮고 다른 교실로 달려가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외울 준비를 하게 하는 그런 제도니까요.”(66쪽)

이런 거부감이 학교교육의 맹목성을 비판하거나 “단 하나의 올바른 길이 있는 건 아니다”라는 개토의 지론이 반영된 거라면 모르지만, 그가 반진화론자라서 그렇다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그의 성향에 비춰 그가 비타협적인 반진화론자일지도 모른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그래도 나는 개토가 “창조에 관한 창세기의 설명을 단순히 종교적 신념이 담긴 문헌으로서 글자 그대로 읽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그가 혹시라도 “창세기에 적힌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데 손을 들어주는 과학적 증거가 있는 척하는 사람, 종교적 교의를 과학적 설명으로 가장하는 사람, 종교적 가르침이 과학교과에 포함되도록 시민들을 설득하려는 사람”(필립 키처, 『과학적 사기: 창조론자들은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주성우 옮김, 이제이북스)이라면, 그의 학교교육 비판과 주장들을 더욱 신중하게 살펴보겠다.

학교에 대한 아홉 가지 억측

『교실의 고백』(이수영 옮김, 민들레, 2006)은 『바보 만들기』의 부연이다. 개토가 말하는 학교교육에 대한 아홉 가지 억측은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단결은 강제적 학교교육이란 수단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학교교육은 사회혼란을 막는 주요한 방어수단이다.

2. 아이들은 먼저 스승에 의해 사회화되어야 서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3.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스승은 국가면허를 취득한 자격 있는 전문가이다. 아이들을 비전문가의 손길에 맡겨서는 안 된다.

4. 아이들에게 가족, 문화, 종교 규범을 위반하도록 강요해도 지성이나 인격 발달에 해가 되지는 않는다.

5.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덕이나 가치 판단의 주권자라는 미신에서 깨어나야 한다.

6. 가정은 모든 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겠지만 자기 자식의 교육에 대해서는 지나친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7. 국가는 교육, 도덕, 신념을 책임지는 주체이다. 국가의 감독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은 부도덕하다.

8. 아이들의 가정은 저마다 신념과 배경, 개성이 다르지만 함께 어울려야만 한다. 서로 신념이 배치되는 가정의 아이들도 어울려야 한다.

9. 자유 대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올바르게 이용한 것이다.

나는 우리 교육당국이 추진하는 학교에서의 독서교육에 회의적이다. 개토의 표현을 빌리면 “책을 읽는 이들에겐 국가가 개입하기 어려운 내밀한 삶이 있”어서다. 도서출판 민들레 편집실이 엮은 『홈스쿨링, 오래된 미래』(민들레, 2000)에 실린 존 테일러 개토의 짧은 글 「우리는 어떻게 믿게 되었나」는 그가 두 권의 저서에서 이미 다룬 내용이다.

개토의 책은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딸애가 초등학교에 무난히 적응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상황에 직면해봐야 알겠지만 홈스쿨링은 쉬운 일이 아니리라. 그나저나 밀라그로스 학생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1988년 개토가 24년 만에 신문에서 접한 그의 이름은, 밀라그로스가 그 스승의 그 제자임을 말해준다.

“‘직업교사상’ - 통합교사연맹 소속의 밀라그로스 말도나도 씨는 그 탁월한 성취와 모범적인 직업정신으로 주 교육부로부터 우수 직업교사상을 받았다. 모교인 뉴욕 시 노먼 토마스 고등학교에 비서학 교사로 있는 말도나도 씨는 1985년 맨해튼 구 올해의 교사로 선출된 바 있으며, 그 이듬해에는 전국여성협의회에서 양심의 여성상에 지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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