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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떵 살꼬?

“아무런 희망이 없던 우리가, 이제 벼랑 끝에 서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인문학이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떵 살꼬?’(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일 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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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되네요. 섣불리 책을 내기로 했던 게 후회스럽네요. 경솔한 일이었어요. 시쳇말로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거예요. 굳이 핑계하자면, 피아노 사달라고 보채는 딸아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넘길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에요.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 이하 ‘대학’) 관련 책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던 출판기획자에게 누누이 강조했던 게 있었어요.

“결코 나 개인의 경험으로 전유할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 나의 역할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책을 내게 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노숙인 등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더불어 인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나저나 쓰기로 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 한 줄도 못 쓰고 있네요. 심리적 부담도 그렇거니와 원체 벌여놓은 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해요. 서평 연재를 몇 군데 정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담이 줄지는 않았어요. 오죽했으면 채널예스의 업데이트조차 고무줄처럼 늘어졌겠어요.

근래 유난히 대학과 관련한 일이 많기도 했어요. 지난봄엔 1기생들과 조촐한 졸업여행을 다녀왔고, 5월 초 1기 수료식이 있었어요. 수료식 분위기는 숙연하면서도 감동적이었어요. 근래 보기 드문 눈물의 졸업식이기도 했고요. 아 참, 제가 그날 사회를 봤는데, 엉터리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어요. 5월 말엔 2기 입학식도 있었고요.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은 이제 걸음마를 뗀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글이 안 써지는 건 당연하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마당에 대체 뭘 쓸 수 있겠어요. 출판사에는 정말 미안해요. 그렇기로, 약속을 깨겠다는 건 아니에요. 좀 더 기다려달라는 거죠.

저 개인의 엉뚱한 부담과는 상관없이 반가운 소식도 있어요. 드디어 교육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2기부터는 우리 대학도 교육부의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을 듯해요. 그게 기폭제가 되었던지 여기저기서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이미 많은 사람이 인문학의 힘을 믿고 있었다는 얘기인 거지요.

이번 달만 해도 우리 대학 외에 ‘수원’과 ‘제주도’에서 인문학 과정이 개설되었고, 조만간 서울의 ‘관악일터’에서도 같은 과정이 개설될 예정이라고 해요. 그러나 교육부의 예산이 모든 과정에 지원되는 건 아니에요. 까다로운 규정이 있고 거기에 부합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나 봐요.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정부 돈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타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지역마다 딱히 후원해주는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무자나 교수들이 막상 일을 벌여놓고도 노심초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오늘은 그분들을 위해 우리 나름의 관심과 지원방법을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여기서 그만 읽으셔도 될 거예요. 단, 읽게 되신다면 엉성한 문맥에 짜증만 내지 마시고, 글의 내용과 의미를 좇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스24 회원이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예스24에 <책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클럽이 있어요. 작년 10월, 저와 몇몇 블로거들이 모여서 만든 클럽인데, 취지는 아주 단순해요. 손수 책을 구입할 능력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스24 회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쿠폰이나 예스머니 등을 활용해서 책을 지원해주자는 거죠.

그동안 클럽에서 노숙인 선생님들에게 지원한 책이 200권이 넘어요. 참, 대단하고 대견하죠? 그새 회원 수도 꽤 늘었어요. 저는요, 길을 걷다가도 이따금 혼자 웃곤 해요. 클럽 때문이에요. <책 나누는 사람들> 생각만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니 어쩌겠어요.

회원 대부분이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에요. 그런데도, 운영도우미(운영자는 따로 있어요)인 제가 지원할 책의 제목과 필요한 권수를 공지하면 회원들이 벌떼같이 몰려와서 순식간에 지원행사를 마감시켜버리곤 해요. 거, 뭐라고 해야 하나요? 보이는 것마다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괴물 같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졸지에 괴물이 되어버린 회원님들 황당하시겠네요.

클럽운영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우선 회원이라고 해서 반드시 책을 지원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취지에 동의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는 거예요. 둘째, 특정인이 너무 많은 책을 보내는 건 안 돼요. 회원들이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니까요. 매번 한발 늦어서 지원기회를 놓쳤다고 푸념(?)하는 회원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얼마나 아쉬워하시는지…. 셋째, 누군가에게 도움을 강요하지도 않아요. 특히, 출판사나 예스24 등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요.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작고 소박한 참여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회원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제 클럽의 원칙, 특히 세 번째 원칙을 바꿨으면 하는 거예요. 그럴 만한 현실적 필요가 생겼거든요. 수원과 제주도의 인문학 과정 입학식을 둘러보면서 든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정말 힘차게 출발들은 했는데, 삼성코닝에서 후원을 받았던 성프란시스대학에 비해서 그곳의 여건이 너무 어려워 보였어요.

성프란시스대학의 경우, 수강생 모두가 노숙인이었어요. 그래서 공부 외에 당장 필요한 건 식사와 잠자리 등을 해결하는 것이었어요. 시쳇말로 돈으로 해결할 문제였던 거예요. 반면, 수원과 제주도의 수강생 대부분은 자활근로를 하고 있는 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이고, 특히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인 여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이분들에겐 잠자리나 식사가 아닌 육아 혹은 보육을 위한 도우미가 필요한 거예요. 쉽게 말해 돈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한 거지요. 이분들 역시 책을 사볼 형편이 안 되기는 노숙인들과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대학에서라도 인문학의 향기를 접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한 권 없는 인문학 교실, 참 삭막하지 않겠어요?

더 이상 에둘러 말할 게 뭐 있겠어요. 우리, 수원과 제주도 등에도 책을 보내주자고요. 그리고 클럽회원이 아니더라도 취지에 공감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하자고요. 이제 출판사나 서점(특정 서점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등의 지원도 굳이 마다하지는 말자고요. 지원할 대상이 많아졌고 필요한 책도 늘었으니 기존 회원만으로는 부족할 듯해서 하는 말이에요.

우선은 <책 나누는 사람들>의 회원이 좀 늘었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는 클럽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고, 자연스럽기도 하니까요. 출판사(특히, 인문서적 전문출판사들)나 서점도 좀 나서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예스24에 꼭 당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쿠폰이나 예스머니를 회원 간에 자율적으로 몰아주거나 나눌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될까 하는 거예요.

오늘 글은 대학 혹은 클럽의 홍보성 글이 되고 말았네요. 겸손하게 혹은 친근하게 보이려고 부러 옆집 ‘듀나’씨의 ‘~요’체를 흉내 내보기도 했는데, 영 어색하지요? 아무튼 저는 강의든 허드렛일이든 인문학과정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그런 연후에, 대학이 우리 사회에서 더욱더 튼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그땐 정말이지 알찬 내용이 담긴 책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늘도 글이 많이 늘어졌네요. 끝으로 지난주에 다녀온 제주희망대학 입학식에서 나왔던 말을 인용해 보려고 해요. 수강생 대표가 했던 말인지, 사회를 봤던 서귀포자활후견센터장이 했던 말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아무런 희망이 없던 우리가, 이제 벼랑 끝에 서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인문학이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떵 살꼬?’(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일 거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해 저 자신을 찾겠습니다.”


※ 편집자가 알립니다.
<시라노의 주책잡기> 칼럼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그 동안 <시라노의 주책잡기>에게 관심 가져 주신 독자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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