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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심히 읽으면 좋은 일이 저절로 생겨요.

연말이다. 바쁘다. 연말이어서 바쁜 게 아니라 대책 없이 여러 가지 일을 벌인 탓이다. 독자칼럼도 개중 하나다. 무엇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제대로 못 읽는 게 아쉽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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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바쁘다. 연말이어서 바쁜 게 아니라 대책 없이 여러 가지 일을 벌인 탓이다. 독자칼럼도 개중 하나다. 무엇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제대로 못 읽는 게 아쉽고 답답하다. 하마, 칼럼의 소재잡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하는 수 없이 문단 첫머리의 ‘연말’이라는 말을 물고 늘어지기로 한다. 다소 진부한 듯하지만 이쯤, 지난 1년을 정리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아쉬운 대로 이렇게 한 주 때우는 거다.

‘시라노 이 사람, 글은 별론데 솔직한 구석은 있다니까’하고, 이해해주실 독자 분이 계실 줄로 믿는다. 그러나 실은 그게 아니다. 솔직한 게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매주 신선하고 의미 있는 소재를 발굴해 훌륭한 문장으로 갈고 닦아 독자들께 감동과 재미를 전달할 능력이, 내겐 없는 거다. 그래서 매번 ‘솔직’을 가장해 ‘동정’을 유발할 뿐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게 작년 연말부터였다. 꼭 일년이 된 셈이다. 애초 책을 멀리하진 않았지만 지난 일년처럼 꾸준하게 읽고 쓰지는 못했었다. 애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럴 계기가 있었을 뿐이다.

작년 초, 몇 개월 동안 극단적인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불미스런, 아니 지탄받아 마땅한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기억하실 분들이 있을 듯하다. 사실 굳이 밝히지 않으면 대부분 모르고 지나갈 일이기도 하다. 작년 4·15 총선 직전 경기도에서 기자 13명이 총선 예비후보에게 촌지를 수수하고 식사를 제공받은 사건이 있었다. 난 그 촌지수수 기자 13명 가운데 한명이었다. 당시 모 지방신문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2004년 2월 모 총선예비후보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회견 후 식사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거기까지 따라가진 않았다. 회견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계단에서 후보의 비서와 마주쳤다. 점심 식사나 하라며 그가 내 주머니에 뭔가를 찔러 넣었다. 직감적으로 돈 봉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선뜻 뿌리치지 못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봉투에 10만원이 들어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날 저녁 후배와 소주 한잔하고 봉투 속의 돈으로 술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한달여가 지난 뒤, 누군가 선거관리위원회에 그 날의 일을 제보했다. 그 뒤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훗날 재판을 통해 벌금 100만원과 추징금 10만원을 선고받았다.

다니던 신문사에는 스스로 사표를 냈고, 꾸준히 활동하던 인터넷 언론사에서는 시민기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당시 사건에 연루되었던 13명 중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거나 잘린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한동안 자살충동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노모와 아내,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당시 재판정에서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글쟁이가 명예를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더 이상 잃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방황했다. 엉뚱하게도 세상이 미웠다. 웃기는 얘기지만, 단돈 10만원에 완전히 망가져버린 어이없는 인생이었다. 딱히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마냥 술에 절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게 한 건 딸아이였다. “다른 집은 아빠가 회사가고 엄마는 집에 있는데, 왜 우리 아빠는 맨날 술 마시고 늦게 일어나고, 엄마가 일을 나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에 사다만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꽤 있었다. 도서관에 나가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 신간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왔던 ‘예스24’에서 어느 독자의 리뷰를 읽었다. 그게 동기였다. 그 뒤로 더 열심히 읽었고 서투르나마 나도 이곳 저곳에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곧 2005년이 되었다. 새해 벽두, 난데없이 모 라디오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방송국 피디가 하는 말, “저희 방송에서 책 소개 코너를 진행해볼 생각 없으세요?” 예긴즉슨, 주변에 책 많이 읽은 사람을 수소문해봤더니 내 이름이 나오더라는 것. 난 ‘자신 없다’고 했지만 피디는 다짜고짜 첫 출연날짜를 통보했다. 목소리가 괜찮더라나?

2005년 1월 13일, 드디어 첫 방송. 준비한 책은 김형경의 『사람풍경』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간 방송국 스튜디오, 어찌나 떨리던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른 채 다시 스튜디오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어느덧 11개월째. 어제 정확히 50번째 주 방송 분으로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생각의 나무)을 소개했다. 그 간의 성실성을 인정받아 지금은 또 다른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책을 열심히 읽으면 교양도 쌓을 수 있고 지식도 얻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올 한 해 몸소 경험하며 터득한 바다. 그러고 보면 목소리만이 아니라 글도 좀 됐던가보다. 연이어 각종 매체의 서평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문화예술전문지, 경제전문지, 도서관련 잡지, 일간지, 주간신문 등등... 그리고 마침내 ‘여기’까지.

사람들은 묻는다. 책을 읽는 이유가 뭐냐고.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웃는다. 재차 물어오면 그때서야 한마디 한다. 물론 웃는 낯으로다. “열심히 책 읽으면 좋은 일이 저절로 생겨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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