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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연재를 시작하며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세 번이나 술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나의 상흔을, 우리들의 상흔을, 우리 시대의 상흔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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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스포트!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세 번이나 술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나의 상흔을, 우리들의 상흔을, 우리 시대의 상흔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올드 스포트! 제가 다섯 살 때쯤, 어스름한 저녁에 마을 나들이를 나갔다가 목격한 일입니다. 어느 가난한 집에 부부 싸움이 있었습니다. 부부가 번갈아 세살 정도 되는 아이를 땅에 던졌습니다. 한쪽이 던지면 상대 쪽도 ‘어 그래?’하면서 또 땅에 패대기쳤습니다. 물론 죽지 않을 정도이었지요. 그 일은 저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었지요. 그 아이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멸시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사람들의 뇌는 5~10%정도 망가진다고 합니다. 그런 뇌로는 충동에 대한 조절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전과자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내나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폭력이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식들은 또 그런 부모가 되고...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이런 일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의 ‘위대한 유산’인 것입니다.

윤수의 가난한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아내나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자식들을 학대하다가 농약을 먹고 자살합니다. 동생은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죽습니다. 윤수는 전과자가 되고 결국은 사형수가 됩니다. 윤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나 신이 있었다면 자기의 삶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부자들을 비난합니다. (중략)

주인공 문유정은 사형수를 만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발견해 가고 그동안 자기가 보지 못했던 ‘사실이 아닌 진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교수인 유정은 사회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중략)

유정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유정도 다시 태어났습니다. 운명의 시간은 오고 윤수는 교수형을 당합니다. 이제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는데 새로운 삶을 살 시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올드 스포트! 사형은 또 하나의 살인, 저는 반대합니다.

올드 스포트! 옛날의 고통은 새로운 고통으로 상쇄가 됩니까? 유정은 윤수에 대한 고통으로 괴로워합니다. 윤수는 그에게 한 가지 큰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그녀가 다시는 스스로 이 지상을 떠날 결심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정은 그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겠지요. (후략)」

--- 어느 노숙인의 감상문 중에서


위의 글은 ‘성 프란시스 대학’의 수강생이 쓴 감상문의 일부입니다. 칼럼의 서두에 이 글을 올려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 자신 리뷰를 직업적으로 쓰다시피 하는 사람입니다만 제가 썼던 것들은 물론 그 어떤 매체의 전문가 리뷰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절절함과 진실함이 바로 이 글 속에 녹아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념으로 꾸민 글은 멋스럽지만 여운이 없습니다. 반면 구체적 삶의 경험과 그것을 통해 터득한 세상사의 이치에 따라 차분하게 풀어낸 글은 읽는 이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킵니다. 모름지기 글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 프란시스 대학은 지난 9월 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설립한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대학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작문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능력이나 자격보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강의는 말이 강의지 주된 내용은 노숙인 수강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그분들의 삶의 역경과 그 속에 담긴 회한과 응어리와 혜안을 접하다보면 저 자신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사정과는 달리 대학은 나름의 설립·운영의 목적이 있고, 또 각각의 강의에 주어진 교육목표가 있으니 저는 어쩔 수 없이 수강생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과연 그분들에게 어떤 글을 쓰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 강의를 마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안 그래도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이분들에게 읽을거리나 글감은 제공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글쓰기만을 주문하는 건 문제다. 과제를 내주기 전에 먼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첫 강의 후 저의 고민을 예스블로그를 통해 알렸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자신의 책 혹은 소정의 지원금을 보내주겠다는 의사를 표해 주셨습니다. 곧 그 분들과 저는 클럽 ‘책 나누는 사람들’을 결성했습니다.

‘책 나누는 사람들’의 1차 지원도서가 바로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클럽 회원들이 갹출한 돈으로 출판사를 통해 22권을 일괄 구매해 수강생 전원에게 나눠드렸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제 손에 놓여진 게 앞서 소개한 글을 포함한 스무 편 정도의 감상문입니다.

첫 읽을거리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선정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만 그것을 여기서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대신 과제를 통해 확인한 것을 소개할까 합니다. 크게 두 가지 형태의 반응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책을 읽는다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간의 불행이라는 건 개인의 불운과 행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편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가난이라는 사회적 질병은 대물림이라는 전염성을 가진 것인만큼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인생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2차 지원도서는 『전태일 평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선정한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역시 섣불리 언급하기보다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인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이번 주부터 ‘책과 삶이 어우러진 칼럼’이라는 다소 모호한 컨셉의 독자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아는 게 부족하고 자신감도 없습니다. 다만 겸손하게 대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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