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 백재현의 <루나틱>!

과연 개그맨이 만든 (평소 개그맨의 뇌구조는 일반인과 다를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뮤지컬, 그 뮤지컬이 주는 감동은 어떤 것일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개그를 하던 백재현이 뮤지컬 연출을 한다기에 당연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간과 금전이 허락된다면 보고 싶은 공연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봐야할 공연에 백재현의 <루나틱>이 떡하니 자리 잡게 됐다. 필자가 외면하는 사이, 기발한 웃음을 선사하는 <루나틱>은 입소문을 타고 뮤지컬 예매순위 1위까지 당당히 올라섰던 것이다. 과연 개그맨이 만든 (평소 개그맨의 뇌구조는 일반인과 다를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뮤지컬, 그 뮤지컬이 주는 감동은 어떤 것일까?

루나틱(lunatic)??

살짝 미쳐 행복한 <루나틱>
일단 ‘루나틱’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달의 신 ‘Luna'에서 파생된 말인 'lunatic'은 ‘미치광이, 정신이상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무엇에 미쳤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뮤지컬 <루나틱>에서 ‘미쳤다’는 바로 ‘열정’을 의미한다. 즐겁고 열정적인 사람들, 미쳤기에 행복한 사람들.

그래서 뮤지컬 <루나틱>은 무대 자체가 아예 정신병동이다. 다소 과장된 몸짓의 여의사, 그리고 3명의 환자. 무대는 이들이 집단발표를 통해 자신이 ‘루나틱’이 된 사연을 공개하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연기자는 달랑 4명이지만 춤과 노래가 되는 ‘나제비(환자)’, 섹시한 푼수 닥터 등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라 전혀 지루할 새가 없다.

특히 <루나틱>은 전체적으로 코믹함과는 다른 기발한 웃음을 선사한다. 당연히 웃길 줄 알았던 부분에서 반 박자 늦게 터트리는 시간차, 미묘한 애로버전을 황당한 몸짓으로 넘기는 돌려치기, 섹시함을 물씬 풍겨놓고는 안 되는 웨이브와 푼수 같은 표정으로 허를 찌르는 황당함, 전혀 상관없는 scene에 앞선 장면의 연기를 갖다 붙이는 의외성 등 무대 전체에 백재현의 감각이 그대로 묻어난다. <루나틱>의 웃음코드는 일반적인 공연이 주는 재미보다 한 단계 위인 것이다(역시 개그맨의 뇌구조는 일반인과 다르다!).

뛰어난 반전! 아쉬운 반전..

<루나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반전’이다. <루나틱>이 open run(마감이 정해지지 않은)으로 진행되는 만큼 앞으로 공연을 볼 사람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관객들은 100% 속고 만다. 그 같은 설정과 연기력은 정말 뛰어나다.

소극장이라 무대의 열기가 바로 전해진다

그러나 모름지기 ‘반전’이란 치고 재빨리 빠지는 것이 묘미일진데, 호흡이 너무 길게 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덕분에 잘 유지되고 있던 재미와 유쾌함의 맥도 끊긴다. 마무리도 다소 엉성하다. 물론 그것이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용의 개연성이 떨어져 공감 역시 덜하다. 관객을 감쪽같이 속인 설정과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다. 쇼킹한 건 좋지만 억지스러워서야 되겠는가?

그런가하면 기대했던 또 다른 반전이 없어 아쉽기도 했다. 극의 흐름을 이어가는 굿 닥터, 여의사. 처음부터 그녀의 말투나 몸짓이 범상치 않았기에 마지막에 한 방 터트릴 줄 알았는데, 그냥 섹시한 무대가 끝이었다. 그녀 역시 ‘루나틱’으로 드러났다면 ‘모두가 환자’라는 그들의 외침이 훨씬 설득력 있었을 텐데.. 아쉽다.

<루나틱>의 또 다른 재미, 백재현의 무대 인사!

그렇다. 무대가 막을 내리면 반가운 얼굴 백재현이 올라와 인사를 건넨다. 개그맨 아니던가? 말 한 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그대로 웃음, 개그콘서트에 와 있는 기분이다. 그러는 사이 연기자들이 무대 앞으로 빠져나간다. 백재현은 공연 환경이 열악해 무대 뒤에서 바로 나가는 통로도 없다며, 입소문을 더 내달라고 너스레다. 본인도 솔직히 <오페라의 유령>보다 재미없는 것은 알지만, 광고도 없이 30만 관객을 동원했다며 자랑도 한 보따리다.

‘창작뮤지컬’은 세계적인 작품들이 갖는 튼실한 스토리나 화려한 무대, 스타급 배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자본이 모두 결여돼 있다.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기에 어쩌면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그러나 다 알면서도 ?어든 이들, 열악한 무대 위의 이들이 바로 ‘루나틱’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오페라의 유령>보다 재밌으려면 많은 것들을 보충해가야겠지만, 무대 위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을 보니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는 그들의 기획 의도는 제대로 전달된 듯 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일이든 사랑이든 미치도록 몰입해 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인생은 행복하다. 누구보다 당당하기 때문이다.


<루나틱>
2006년 6월 30일 ~ open run
대학로 예술마당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