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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깊은 울림, 임재범 콘서트

임재범이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전국투어 콘서트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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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일이다. 심야에 하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그가 나왔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서서 ‘그대는 어디에’를 불렀는데, 간주가 흐르고 2절이 이어져야 할 때 그는 노래를 잇지 못했다. 그 남자... 울고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음악에 취해버린, 자신의 아픈 기억과 차마 달랠 수 없는 상처에 몰입해 버린 그 남자, 임재범. 그 뒤로 임재범의 노래가 흐를 때는 단 한번도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말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을 테니까.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
임재범이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전국투어 콘서트를 펼치고 있다.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와 ‘Julie’로 무대를 연 그는 뜻밖에 옆 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게 인사를 건넨다. 어깨까지 길러 내린 머리, 예전보다 살이 붙은 몸집, 그리고 보다 편안해진 노래에서 전체적으로 힘이 빠졌음을 알 수 있다. 맥(脈)을 잃었다기보다는 좀더 자연스러워졌다고 할까?

임재범은 ‘시나위’와 ‘외인부대’ 등 그룹시절 불렀던 노래들을 소개했다.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와 Sting의 ‘Moon Over Bourbon Street'를 부를 때는 도입부의 음색이 Sting과 매우 흡사하지만 고음 부분은 임재범 만의 독특함이 묻어난다. 또 Joe Cocker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는 Joe Cocker의 짙은 soul보다는 무겁지 않고, Elton John의 부드러운 ballad보다는 거친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자신의 우상이었기에 공연 때마다 부르는 노래라며 Judas Priest의 ‘Before The Dawn'을 부르자, 한층 그의 음색이 갖는 깊이가 더해진다. 그러나 임재범 자신은 이제 그때만큼 이 노래들을 잘 부르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아마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가난했기에 노래에 담긴 감성들이 그의 세포 하나하나, 뼈 마디마디에 그대로 스며들었으리라. 아무튼 음반으로 들었던 가요보다는 라이브로 듣는 팝이 그의 음색과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연장인 올림픽홀은 사실 사람들이 꽉 들어차지 않은 데다, 다들 임재범의 노래에 빠져 매번 박수칠 생각도 잊는 바람에 다른 공연과 달리 다소 고요하다. 하지만 임재범에게도 히든카드가 있으니, ‘이 밤이 지나면’과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흐르자 삼삼오오 일어나 환호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를 마지막으로 1부가 끝난 뒤, ‘고해’와 ‘최선의 고백’으로 2부가 이어지면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
‘한국 락의 구세주’라는 평을 받았던 임재범의 가창력을 말할 때 흔히 진성과 가성의 자연스러운 넘나듦을 얘기한다. 저음 부분의 진성과 고음의 가성을 얼마나 잘 내는가는 물론이고, 진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갈 때의 느낌이나 호흡 처리. 나아가 어디까지가 진성이고 어디부터가 가성인지조차 알아낼 수 없는 그 넘나듦의 모호함으로, 그의 보컬은 당대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더불어 국내 가수로서는 드문 매우 허스키한 음색은 한없이 거칠면서도, 모순되게도 더없이 부드럽고 나약하다. 그 오묘한 조화가 바로 임재범 만의 매력인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의 음색과 창법을 따르는 많은 가수들이 국내 가요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물론 저마다 뛰어난 가창력과 멋을 자랑하지만, 임재범의 음색이 갖는 고뇌의 깊이를 따를 사람은 없는 듯 하다. 공연 때마다 말하듯 그에게는 많은 방황이 있었고, 깊은 오해도 있었고, 숱한 좌절도 있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이해받거나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그 모든 상처와 아픔들은 그의 음악에 스며들어, 보다 깊은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공연 후반부, 임재범은 이제 여러분을 위한 노래라며 ‘너를 위해’와 ‘비상’, 그리고 ‘그대는 어디에’를 열창했다. 무대 위의 그도 끝내 눈물을 흘렸고, 무대 밖의 팬들도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앵콜 무대에서는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얽의 길을 찾아 걸어가길 바란다며, ‘My Way'를 선사했다. 그렇게 공연은 끝났지만 모두들 한참은 자리를 뜨지 못한다. 특별한 무대장치도, 초대 손님도, 언어의 유희도 없었던 2시간이었지만, 임재범의 노래만으로 충만했던 공연이었다.

영혼을 울리는 임재범의 보컬
살다보면 한 번쯤은 돌부리에 걸려 쉽게 일어서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게 불거진 문제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릴케가 말했듯 ‘시간은 다만 정리와 질서를 줄 뿐’이다. 임재범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의 노래와 함께, 그 노래에 담긴 이 같은 고뇌와 상처에서 위로를 구한다. 분명 예전보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솔과 발라드까지 구사하는 그를 보며, 때로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던 그의 보컬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영혼을 울린다. ‘임재범’이라는 가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 그래서 그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비상 In Seoul)
2006년 9월 16일 ~ 17일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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