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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크베타 파코브스카

그가 독자들에게 『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개성’의 중요성은 그 어떤 그림책 작가보다 또렷한 개성이 있는 크베타 파코브스카의 그림을 통해 표현되었기에, 그의 소중한 경험이 담긴 철학을 더욱 명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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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찾아 방황하는 한 송이 꽃 이야기

이란의 망명 작가 사이드의 글은 동유럽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이며 그림책 작가이기도 한 크베타 파코브스카와의 만남으로 더욱 찬란한 빛깔을 띠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빛깔을 찾아 먼 길을 떠난 한 송이 꽃의 이야기인 『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는 ‘개성’의 중요성과 ‘개성의 발견 과정’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한 편의 철학적 우화로서, 빨강, 파랑, 노랑의 강렬한 원색이 기하학적 형태의 배경 위에서 펼쳐지면서 더욱 심오한 깊이감을 갖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정원에 빛깔이 없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났습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제각각 뽐내고 있는 꽃들 사이에서 이 빛깔 없는 꽃은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지개가 뜰 때면 나타나서 빛깔을 나눠준다는 무지개 나비 이야기를 듣게 된 빛깔 없는 꽃 한 송이는 잠시 기대감에 흥분하게 되지만, 그 이야기가 결코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더는 무지개 나비가 그 정원에 나타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원을 지키는 파수꾼이 무지개 나비를 잡아 괴롭힌 적이 있기 때문에, 무지개 나비는 다시 그곳을 찾지 않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던 중 어느 비 내리는 수요일, 빛깔 없는 꽃 한 송이는 스스로 무지개 나비를 찾아 나설 생각으로 정원을 살금살금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경찰관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나라에서 빛깔 없이 다니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었죠. 빛깔 없는 꽃 한 송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은 지금 빛깔을 찾아 나선 길이라고 설명하고,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빛깔을 찾아 보여주겠다고 경찰관과 약속하고 나서야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나온 여행이었지만, 어디에서도 무지개 나비의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빛깔 없는 꽃은 광장에 서 있는 멋진 빛깔의 플라타너스와 빨간색 풍선을 차례로 만나게 되지만, 그들은 자신의 예쁘고 멋진 색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조차 궁금해 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깔 없는 꽃이 어떻게 빛깔을 얻게 되었느냐고 물어도 코웃음을 치고, 혹시라도 무지개 나비를 보았느냐는 질문에도 무성의하게 답변을 하지요. 무지개 나비를 찾아내어 자신의 빛깔을 갖고 싶었던 꽃은 힘이 빠졌습니다.

어깨가 축 쳐진 채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꽃을 우연히 길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꽃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빛깔 없는 꽃이 지금까지 겪은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는 꽃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그 안에 있는,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꽃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밭 안으로 빛깔 없는 꽃도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자신에게도 예쁜 빛깔이 있음을 모르고 있던 꽃에게 해바라기가 말합니다. “네 빛깔은 기막히게 아름답구나!” 꽃은 아무 말도 못하며 수줍어하지만,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난 내 빛깔이 좋아!”라고 말이죠.


자신만의 빛깔, 즉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란 출신의 작가 사이드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주제라고 합니다. 종교 분쟁을 피해 독일로 망명한 작가는 이 이야기 속에 자신의 경험을 모두 집약해 놓았습니다. 경찰관과 플라타너스를 만났던 마을은 정치적․종교적 압박이 여전한 자신의 조국 이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고, 할아버지가 꽃을 데려간 정원은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모습일 것입니다. 개인이 자신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행복해질 수 있으려면 사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 작가인 사이드의 철학인데, 그가 독자들에게 『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개성’의 중요성은 그 어떤 그림책 작가보다 또렷한 개성이 있는 크베타 파코브스카의 그림을 통해 표현되었기에, 그의 소중한 경험이 담긴 철학을 더욱 명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삽니다.

크베타 파코브스카는 빛깔 없는 꽃이 갈망하던 무지개 나비를 두 팔을 활짝 펼쳐 마음껏 날 수 있는 모습에서 기다랗고 날씬한 다리를 쭉 펼치고 있는 유혹적인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주인공 꽃이 얼마나 이 나비를 만나고 싶어하는지를 근사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를 억압하는 경찰관의 모습을 불분명한 형태의 도형으로 흐릿하게 표현함으로써, 전제적 사회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였습니다.

게다가 주목해서 봐야하는 주인공인 빛깔 없는 꽃은 투명한 트레이싱지로 표현되었습니다. 아무런 빛깔도 가지지 못한 꽃의 모습은, 후반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할아버지의 정원 속에서도 여전히 트레이싱지로 등장하지만, 종이를 앞쪽으로 넘기면 그 존재 자체로서 이미 세상의 모든 빛깔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음을 입증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파코브스카의 그림은 화가로서의 작가적 상상력을 관통해 자신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작품으로 표현되면서도, 어디까지나 글 작가 사이드의 이야기를 침범하지 않고 오히려 튼튼하게 뒷받침함으로써 글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마법사, 크베타 파코브스카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출간된 크베타 파코브스카의 작품은 빨갛고 독특합니다. 심지어 도서관이나 서점에 온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답니다. “빨간색 아줌마 책 주세요!” 붉은색을 주조로 한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선, 도형을 마주하게 될 때 독자가 느끼는 것은 충격입니다. 평면적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그림책의 영역에서 3차원적인 조형미가 신선하면서도 어떻게 접해야 하는지 평소 책과 친분 있다고 자부하는 이 마녀에게도 낯설기만 했으니까요.

간단한 듯하면서도 확실한 개성을 지닌 현란한 원색의 그림은 원색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기하학적 모양으로 단순화된 표현이지만 그러면서도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회화적 묘사는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호기심을 이끌어냅니다. 알루미늄 같은 재료를 책에 삽입하여 아이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게도 하고, 트레이싱지를 삽입하여 다음 장의 그림이 비치게도 하는 재료 활용의 융통성은 크베타 파코브스카가 지닌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과감한 실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 권의 ‘마법 그림책’ 시리즈를 접하다 보면, 과감한 실험 정신 뒤에는 어린이에게 책이 공작 놀이의 대상으로서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자 한 그녀의 노력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돌토돌한 요철 모양을 한 책의 표면을 만지다 보면, 점자책인 듯싶다가도, 아이들의 손가락 끝 감각을 개발시키고자 한 섬세한 배려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팝업북처럼 펼치면 입체적으로 면이 튀어나오게 한다든가 종이에 구멍을 뚫어 다양한 형태를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입체적 구성은 2차원의 그림책을 3차원의 세계로 변형시켜주어 책읽기를 통해서도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응용력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베타 파코브스카(Kvta Pakovsk)는 1928년 체코의 아름다운 도시인 프라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프라하 응용미술대학교(Academy of Applied Arts, Prague)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고 주로 그래픽아트, 회화, 개념 미술과 아티스트 북(artist's book) 분야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더 유명세를 누렸던 그녀는 1961년 이후 약 50번이 넘는 전시회에 참여했는데, 자신의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한 60년대부터는 그림책이라는 소재로 자신만의 독특한 3차원적 작업을 개발하여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림책이라는 인쇄 매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촉각적이고 입체적인 예술 오브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창작 작업의 공을 인정받아 1991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1992년 한스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1997년에는 북 디자이너에게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요한 구텐베르크 상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책을 보여주고 싶은 열의로, 아이들을 책상 밑에 재워가며 그림책 작업에 몰두했던 지난 40여 년의 세월 동안 약 50여 편의 그림책을 제작한 그녀는 유네스코가 주는 ‘국제 뫼비우스 멀티미디어 상’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2000년에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뉴 미디어 상’을, 파리에서는 ‘CD-ROM 알파벳을 위한 뫼비우스 상’에서 그랑프리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상을 받게 된 영광 뒤에는 그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미래에 도움을 주고 싶은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그림책을 유난히 좋아하게 만든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존경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녀만의 독특한 그림책을 접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훌륭한 음악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지요. 훌륭한 음악은 다른 음악이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하모니를 자랑합니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리듬으로 구성된 음악은 어른이나 아이가 듣더라도 즐겁습니다. 그림도 그렇습니다. 동일한 유형을 반복하는 듯한 그림책은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자신만의 그림책 만들기 정신을 피력하고 있는 그녀는, 그림책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시험에 임한다는 자세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에 임할 때마다,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라는 원칙과, 아이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느끼는 작업이 수반되지 않는 그림책은 감동이 없는, 죽은 그림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어린이들의 ‘유희정신’을 자신의 과거로부터 되살려 내고자 노력하는 그녀의 작가혼은 넘쳐나는 그림책 홍수 시대인 요즈음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편,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그녀는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베를린 대학교(the Academy in Berlin)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한 바 있으며, 1999년에는 영국 킹스턴 대학교(Kingston University)에서 디자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숫자야, 놀자!

단지 숫자를 배우기 위해 그림책을 본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이 책에서 보여 주고 싶은 것은 단지 수의 기호만이 아니기 때문에 숫자를 깨우치지 못한 어린이뿐 아니라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어린이까지 모든 아이들이 즐겨 볼 수 있게 수의 개념을 시각적인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숫자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책 속의 광대는 빨간 광대 모자를 쓰고, 새의 주둥이처럼 뾰족한 입을 가지고 있고, 연필처럼 길쭉한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아저씨입니다.

‘나는 … 하마.’ 하마가 1이라는 숫자의 대표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숫자 1 밑에 있는 단추 같은 것을 만져보면, 볼록하게 느껴집니다. 눈을 감고도 섬세한 손끝 놀림으로 숫자 1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숫자 2에 대한 설명에서는 두 개의 단추로, 숫자 3에 대한 설명에 가서는 세 개의 단추로 되어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끊임없이 변주되는 붉은 톤 속의 그림 속에 새들이 숨어있기도 하고, 쥐돌이가 등장하기도 해서 다음 숫자에는 어떤 것이 튀어나올까 독자들의 궁금함을 유발시킵니다.


또한 숫자 창을 넘기면, 그 숫자만큼의 개체들이 숨어있다 등장하여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게다가 숫자가 커질수록 숫자 광대 아저씨의 키도 커지고 덩치가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7보다 8이 덩치가 크고, 8보다 9가 덩치가 크게 표현되어 있어, 독자인 어린이들은 ‘숫자가 크다‘의 의미를 수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공간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숫자 놀이』 속에 제시된 숫자들은 대단히 유연합니다. 옆으로 눕히고 기울인 글씨와 그림은 이 그림책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책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놀이의 연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각을 키우는 모양 연상 놀이

앞서 소개한 『숫자 놀이』는 그림과 촉감에 이끌려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모양 놀이』에서는 원은 단추가 되어 세상을 여행하고, 사각형은 집과 창문이 되는 식으로 원, 사각형, 삼각형, 직선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가 주변 사물 전체에 대한 특징을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모양으로 나타내는 언어로 다양하게 변용되며 표현되어 있습니다.

책 표지에는 커다란 원 중심부에 콧구멍 두 개가 뚫린 것처럼 보이는 은박지 재질의 왕단추가 있고, 왼쪽 콧구멍(사실은 단춧구멍)으로 향하는 빨간 실에 매달린 광대 모양의 바늘이 보입니다. 책장을 넘겨 첫 페이지를 보면, “나는 동그란 원이에요. 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요”라고 커다란 왕단추가 자신을 소개합니다. 또다시 페이지를 넘기면서 독자는 ‘앗’ 하고 놀라고 말지요. 왜냐하면 커다란 빨간 원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한 페이지의 동그란 원은 그냥 뻥 뚫려있는 원형의 구멍이었고, 빨간 원은 그 다음 페이지에 그려져 있음을 알게 되거든요. 그 다음 장에서는 광대 바늘 밑에 있는 왕단추가 말을 이어요. “나는 단추예요. 나는 굴러다닐 수 있어요.” 원의 속성을 설명한 앞 페이지에 이어서, 동그란 원의 속성이 있는 단추가 또 다른 특징을 하나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각형을 설명하는 다음 장으로 넘기면, 무수히 많은 창문이 있는 커다란 붉은 집이 나오고, 창문마다 재미있는 표정의 동물과 사물이 보입니다. “사각의 커다란 집, 그 속의 사각의 창문들”이라고 중얼거리며 또 뒷장으로 넘겨봅니다. 생일을 맞은, 사각의 얼굴을 한 사자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어요. 그리고 사자의 감은 눈 속의 상상의 마을은 다음 페이지에서 펼쳐집니다. 마치 파울 클레가 그린 알록달록한 사각의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동네처럼, 노랑, 초록, 보라, 빨강의 집들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 나타납니다. “나는 마을이에요. 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에요.” 마을이 자신을 소개하는 글귀를 읽고 뒷장을 넘기면, 또다시 뻥 뚫린 사각형이 손끝에 만져집니다.

이런 식으로 삼각형과 직선이 소개되고 나면, 지금까지 등장했던 것들이 단순화된 모양으로 자신의 명찰을 달고 독자들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 페이지를 만져보면, 각각의 모양을 두르고 있는 윤곽선이 손끝에서 느껴집니다. 또한, 어떤 것들은 뚜껑을 열어볼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그림들을 손끝으로 만지면서, ‘나무, 얘는 어떤 도형이지?’, ‘종, 얘는 어떤 도형이란 거지?’ 하고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재미있지요. 그리고 마지막 장으로 넘겨봅니다. “나는 각이 져 있는데”라는 문구 밑으로 정사각형의 거울이 달렸습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요? 그렇지요. 지금껏 주변의 사물을 통해 각각의 형태를 연구해 보았으니, 사물과 관계를 맺는 주체인 독자 자신도 살펴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표출된 셈이지요. 맞습니다. 이제는 어린이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서서, 창의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사고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요일 놀이

작가 파코브스카는 책을 하나의 건축으로 생각하고 책의 공간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종이 원반을 돌리거나, 칼 선을 넣어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올록볼록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요일 놀이』와 같이 그림이 곧 입체 도형이 되어 말 그대로 건축적인 조형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작가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요일 놀이』 책을 보는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우선은 놀잇감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작가는 『요일 놀이』의 첫 장에서 놀이 친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빨강빨강 코뿔소, 삐뚤삐뚤 아이, 뽕뽕 구멍, 콕콕 점, 울퉁불퉁 코뿔소 등등. 그리고 제안을 합니다. “우리 모두 같이 할래요?” 이야기는 주인공 삐뚤삐뚤 아이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일요일, 글씨를 삐뚤삐뚤 쓰는 삐뚤삐뚤 아이가 종이나라 한가운데에 서서 빨강빨강 코뿔소를 그려요.” “월요일, 삐뚤삐뚤 아이가 뽕뽕 구멍을 뚫어요.” 이러면서 진행되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한 주의 요일들 내내, 작가가 첫 장에서 놀이 친구라고 소개한 모두는 “넌 내 친구”라며 한 동아리로 맺어지게 됩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제작하지 않고 독일에서 직접 제작했다고 합니다. 책장을 넘기다 마주치게 되는 구멍이 뽕뽕 뚫린 입체,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알루미늄판, 팝업북 같은 효과를 전해주는 기계적인 장치, 올록볼록 점자책처럼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종이 재질의 느낌을 될 수 있으면 국내 독자들에게도 원본처럼 전달하기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은 출판사 담당자에게 감사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 책 가격이 만만치 않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와 출판사 담당자 모두의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이해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었던 책으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책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예술로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열의가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그림을 통해 접하는 개념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예술적 감성을 갖춰가면서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힘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 21세기의 주역이 되는 어린이, 유희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불쌍한 아스팔트 키드에게 꼭 필요한 마법 그림책이 아닐까 하고 이 마녀는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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