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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렉>의 원작을 만든 그림책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

사실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세상으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녹색 괴물인 ‘슈렉’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슈렉>의 원작 동화를 쓴 사람이 ‘그‘라는 사실은 모르는 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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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봄날엔 아이를 요리해보세요

요즈음처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심란해지지요. 이 마녀만 해도, 꽃놀이를 가고 싶건만 추운 날씨 때문에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지내게 되니 뭔가 재미난 일이 없을까 싶어 좀이 쑤신답니다. 그런데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노래가 있지요? 바로 그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 바로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입니다. 우리나라의 빈대떡이 책 속에서는 피자에 해당하는 것인데, 우리가 비 오는 날에는 빈대떡을 부쳐 먹는 것처럼 서양 사람들은 피자를 만들어 먹는가 보네요.

이 책 속의 주인공 아이인 피트는 잔뜩 심통이 나 있어요. 비가 와서 밖에 나가 공놀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그 원인인데요, 피트의 아빠는 바로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란 노래를 떠올린 거예요. 그런데 피자를 만들려면 우선 밀가루를 반죽해야 하는데 아빠가 무얼 갖고 반죽을 하는지 보게 되면 기가 막힙니다. 그건 바로 피트! 아이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굴리고 밀고 잡아당겨 늘리고 공중제비를 놀리기도 하는데요, 반죽이 된 피트는 ‘까르륵’ 웃으며 신이 나기만 합니다.

솔직히 이 마녀도 어렸을 때 동생을 얇은 여름 이불에 돌돌 감아 김밥을 마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면 가뜩이나 신이 나서 온몸이 근질근질한 동생의 허리에 제 손이 닿기만 해도 김밥 속이 키득거리며 웃어 결국 옆구리 터진 김밥을 만들게 되었지요. 그런 경험이 개인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윌리엄 스타이그의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을 보면서 이 마녀는 “맞다, 맞다. 우리도 저렇게 하고 놀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반죽이 다 된 피트의 몸에 기름 대신 물을 바르고, 밀가루 대신 파우더를 살살 뿌려주고, 토마토 페이스트 대신에 장기의 말을 얹고 마지막으로 치즈 대신 종이를 얹었습니다. 자 이제 뜨끈해진 오븐에 넣을 차례만 남았나요? 하하! 피트가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는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놓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에 나온 요리법대로 여러분도 아이들을 요리해보시면 어떻겠어요? 네? 마녀다운 제안이라고요?

바위가 된 당나귀 이야기

특별한 취미를 가진 꼬마 당나귀 실베스터, 그의 취미는 바로 특이한 모양과 색깔을 가진 예쁜 조약돌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글은 제목과 맞물려서 조약돌로 인해 어떤 이야기가 벌어질지를 예고하고 독자의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어느 날, 실베스터는 특이한 조약돌을 줍게 되는데, 그건 발굽에 놓고 소원을 빌면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지게 한다는 마술 조약돌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게 해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고, 해님이 쨍쨍 빛나게 해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는데…. 조약돌의 매력에 흠뻑 빠진 당나귀 실베스터는 엄마 아빠에게 자랑하기 위해 조약돌을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오다 사자를 만납니다. 그런데 위험의 순간 엉뚱하게도 실베스터는 자신을 돌로 변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외게 되고, 바위로 변해버린 실베스터는 다시는 조약돌을 발굽에 놓고 소원을 빌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실베스터의 부모님은 실베스터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찾을 길이 없자 슬픔에 휩싸인 채 슬프게 살아갑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엄마 아빠가 피크닉을 가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다름 아닌 바위로 변한 실베스터가 놓여 있는 곳입니다. 우연하게도 엄마 아빠는 바위 앞에 놓인 조약돌을 바위 밑에 놓고, 실베스터가 그 조약돌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실베스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실베스터는 주문에서 풀려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은 예순이 넘어 시작한 그림책 작가로서 윌리엄 스타이그의 세 번째 책이지만, 이 책으로 그는 칼데콧 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21세기 미국의 모든 어린이들의 기초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해 시작된 캠페인 “No child Left Behind”의 주창자인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거나 아이와 함께 읽어야 하는 필독서 목록’에도 들어있습니다.

한 때 <뉴요커The New Yorker>의 동료이자 윌리엄 스타이그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로저 앵겔(Roger Angell)이 말한 대로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은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고전의 반열에 확고히 오른 명작인 것이 이쯤 되면 사실인 듯싶습니다. 또한 마술 조약돌에 의해 바위로 변해버린 실베스터의 분리 불안과 실베스터를 잃은 엄마, 아빠의 절망감을 잘 표현한 수작으로서, 그림은 단순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카툰(cartoon) 전문가로서의 스타이그의 노련미가 잘 드러나며 아이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명작입니다.

95세의 어린이 세상을 떠나다

윌리엄 스타이그에 대해 검색을 하던 중 위의 제목으로 된, 박민희 기자가 쓴 2003년 10월 9일자 한겨레 신문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수많은 어른의 의무를 해냈지만 나를 쥐어짜야 했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없다”라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말로 시작되는 그 기사를 통해, 이 마녀도 그제야 스타이그가 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세상으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녹색 괴물인 ‘슈렉’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슈렉>의 원작 동화를 쓴 사람이 ‘그‘라는 사실은 모르는 채로 말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묻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어린 시절이 즐거웠고 지금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른들과 있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항상 작고 순수한 상태로 있고 싶다.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다”라고 했던 대답이 제 귓가에서 맴돕니다. 거액을 받고 팔 수도 있던 자신의 원화 그림들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태워버릴 정도로 ‘어른답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이 마녀는 단순히 한 그림책 작가로서 그를 동경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 그를 경외하게 되는군요.

<뉴스위크Newsweek>에 의해 ‘카툰의 왕’이라고 불리었던 윌리엄 스타이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존경을 받는 카투니스트로도 유명했지만, 동시에 어린이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려 뉴베리 상, 칼데콧 상, 혼북 어워드 등을 휩쓸며 미국 그림책 역사의 한 장면을 새로 쓴 그림책의 대가로도 말년을 바쁘게 보냈습니다. 1930년 <뉴요커>에 4쪽 만화 카툰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무려 만 육천오백 장의 카툰을 그리고 백칠십여 편의 책표지 그림을 그린 경력으로 인해 편안한 노후가 보장되었음에도, 1968년 예순하나의 나이에 어린이 책 세상에 뛰어들었습니다.

스타이그는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1907년 11월 14일 태어났고 브롱스에서 자랐습니다. 오스트리아 이민자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미장일을 했지만 여가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스타이그는 창의적인 가정 분위기와 부모님의 미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 덕분에 자연스럽게 미술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그에게 첫 미술 수업을 해준 사람도 다름 아닌 그의 형인 어윈(Irwin)이었습니다. 그의 형 어윈도 훗날 직업 화가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는 동생에게 여러 가지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창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이그의 식구들은 『그림 동화』,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 『아서 왕 이야기』, 『원탁의 기사』, 『헨젤과 그레텔』 등을 읽으며 서로의 상상력을 자극했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술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힌 윌리엄 스타이그는 고등학교 때 학교 신문의 4컷 만화를 그렸습니다. 또한 그는 발군의 운동 실력으로 체조팀과 수상 폴로팀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그는 한때 며칠이나마 Yale School of Fine Arts를 다니게 되었지만, 가정 형편상 학교를 포기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그가 스포츠광이고 운동 실력이 탁월했는지는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대로 학교를 다녔다면, 저는 프로 체조선수가 되었거나 조정 선수가 되어 어쨌거나 부자가 되었겠지요. 당시 타히티는 제게 천국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미래에는 그곳에 정착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허먼 멜빌의 소설 속에 나오는 선원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공황이 불어닥쳤고 저는 그대로 학교 수업을 받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카투니스트로 생업에 나서야했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대공황으로 가족 모두를 부양하는 것이 힘에 부쳤고 그의 형들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고 그의 남동생은 십대였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윌리엄 스타이그에게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가 할 줄 아는 일이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뉴요커>에 그림을 그려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아버지는 독립심과 강한 의지를 윌리엄에게 심어주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자신처럼 노동자가 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을 해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은 되지 말라고 말버릇처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 대신 마음에서 나오는 진정한 바람을 따라 예술가가 되거나 그 밖의 무엇이 되라고 권유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윌리엄의 형제들은 재즈 플룻 연주자, 화가, 배우가 되었다고 하네요.

스타이그가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의 작가로 등단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소설계의 거목이신 박완서 선생님이 소설계에 발을 딛으신 불혹의 나이보다 무려 20년이 지난 예순을 넘어서입니다. <뉴요커>의 동료 카투니스트 밥 클라우스(Bob Kraus)는 1967년 하퍼&로우의 임프린트 출판사인 윈드밀 북스를 창립하는 과정에서, 윌리엄 스타이그에서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책의 글과 그림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클라우스의 제안으로 『C D B!』라는 제목의 단어 퍼즐 책을 출판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는 노래를 부르며 루트를 연주하는 돼지가 등장해서 다른 동물들과 음정을 맞춰가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마녀도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런 계기로 어린이 책에 입문하게 된 윌리엄 스타이그는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을 출판하게 되었고, 이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가 부모로부터 분리될까 두려워하는 불안 심리와 어린이들의 무력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극찬과 함께 칼데콧 상을 받게 됩니다. 한편 『Children's Literature in Education』에서 제임스 히긴스(James E. Higgins)는, 윌리엄 스타이그는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을 경이로움을 갖고 대하는 사건처럼 표현할 줄 아는 어린이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그림책 작가로서, 윌리엄 스타이그는 어린 시절을 잘 회상해서 작품을 쓸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제공해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근본적 감성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스타이그의 그림책을 살펴보면 풍요로운 자연, 가족과 가정의 안정된 분위기, 우정의 중요성, 자신감으로부터 나온 힘 등이 거듭 등장하면서 주제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주제들은 의인화된 동물들의 성격 속에서 나타나는데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사람을 주인공으로 했을 때보다 영웅적인 자질이 지니는 의미가 더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윌리엄 스타이그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자주 내세운다고 합니다.

윌리엄 스타이그는 히긴스에게 “모든 어린이들은 그림책을 단순히 이야기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존재하는 생명에 관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챕니다”라고 말하며 어른들이 무시하는 동심천사주의를 경계하는 자신의 그림책 철학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즉, 스타이그는 그림책을 만들 때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과장된 의견을 주입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자아 발견, 죽음 등을 간접적으로 다루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윌리엄 스타이그는 히긴스에게 자신이 작품을 쓰는 과정에 대해 다음?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우선 이야기를 써야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하게 되면 ‘이번에는 무엇에 관해 쓸까’하고 고민합니다. ‘돼지를 주인공으로? 아님 쥐를 내세울까?’ 그러다 ‘아 지난번에 돼지를 썼지’ 하고 깨닫게 되면 ‘이번에는 쥐를 주인공으로 하자’라고 마음먹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반대로 이야기에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쉽게 그림을 그려 일주일이면 이야기 한 편이 나오고 한 달이면 그림까지 완성한다고 하지만,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카툰을 그리기 위해 세상사를 남다른 시각에서 살펴본 세심한 관찰력과 그것을 표현해내기 위한 오랜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에 조금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 스타일에 대해서 쉽게 구별해 낼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삽화들은 거의 항상 짙은 스케치용 검정선 위에 수채 물감이 가볍게 더해진 듯한 느낌을 전해주며 줄무늬나 폴카 도트 무늬, 꽃무늬 패턴의 옷을 입고 있는 인물들과 그러한 배경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그의 그림책들은 한결같이 상상력, 예술, 언어, 자연의 힘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위트가 넘치고 유머가 있습니다. 또한 그의 그림책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면모와 매력은 시대를 불문하고 어른이나 어린이 독자 모두에게 감동과 재미를 전해주며, 웃음이야말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그의 아흔다섯 해 동안의 삶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콧구멍을 후비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봐

『녹슨 못이 된 솔로몬』을 펼치면 심심한 것인지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토끼가 천정을 바라보며 길게 몸을 소파에 눕힌 채 한쪽 손을 자신의 얼굴 밑에 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토끼의 이름은 솔로몬. 이 토끼는 아주 뛰어난 변신의 재주를 갖고 있는데, 그렇다고 멋진 것으로 둔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녹슨 못’으로 변하는 재주를 갖고 있는 겁니다. 멀뚱멀뚱하게 앉아 노는 것을 좋아하는 솔로몬은 우연히 집 안의 벤치에 앉아 코를 후비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자신의 몸이 딱딱해지면서 점점 작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들을 수는 있어도 눈이 없어 볼 수 없는 녹슨 못이 되어버린 솔로몬을 본 엄마는 그것이 자신의 아들인지 알 리 없겠지요. ‘휙!’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습니다. 쓰레기통에 갇힌 솔로몬은 ‘난 이런 쓰레기와는 달라. 난 못이 아니라 토끼야’라고 생각하자 곧바로 다시 토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사라지는(못으로 변신하니까 남들은 현장에서 사라진 것으로 착각하겠죠) 재주를 지니게 된 솔로몬은 신출귀몰한 재주를 뽐내며 다닙니다. 그러나 그런 재주를 자랑하는 재미가 시들해지자 나비를 잡는 새로운 취미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봄날 나비를 잡으러 간 솔로몬은 못된 고양이 강도를 만나게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문득 자신이 잊고 지냈던 변신의 재주가 떠오른 솔로몬은 콧구멍을 후비고 발가락을 꼬물거려 못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안심하고 토끼로 변신하던 솔로몬을 발견한 고양이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녹슨 못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통한 못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간 고양이는 우리에 못을 넣어두었습니다. 마녀가 모든 이야기를 해드리면 여러분은 할 일이 없을 것이므로 이야기 전달은 이 정도로 해두고, 캐릭터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마녀는 ‘솔로문은 왜 하필 녹슨 못으로 변신했을까? 이왕이면 좀 더 근사한 것도 많을 텐데…’라고 의아해하면서도 그 해답을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투명인간이라든가 멋지고 힘이 센 용으로 변한다면 애꾸눈 고양이와 만나는 장면이 아주 싱겁게 되어버렸을 것을 그때야 깨닫게 된 것이죠.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쓸데없는 낡은 못이 되었기에 솔로몬의 변신이 이야기의 반전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도록 한 놀라운 인물 창조 능력에 이 마녀는 윌리엄 스타이그 할아버지에게 큰 박수 세 번을 보냈습니다.


아이들만 변신을 꿈꾼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손을 가슴에 얹고 솔직해지기를 권하고 싶네요. 솔직히 이 마녀도 수시로 변신을 하고 싶어집니다. 멋진 남자를 보게 되면, 예쁘고 젊은 미녀로 변하고 싶고, 휘황찬란한 백화점에 가게 되면 투명인간으로 변하고 싶거든요.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은 모습이야 이미 그리스 신화에서도 수없이 등장했지만, 우리 어른들은 그런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을 헛된 시간 낭비 혹은 좋은 말로 ‘백일몽’이라 간주하고 아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라고 생활에 대한 두려움, 타인과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두려움 때문에 퇴행하게도 되는데 그럴 때면 밤에 이불에 실례를 하기도 하고 심술궂게 동생을 때리기도 하는 못난이가 되는 겁니다.

유아 심리학에 따르면 만 3세까지의 유아에게는 요술 같은 가상의 세계가 그네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세상을 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신기하며 현실 그 자체가 거의 마술의 수준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초능력적인 것을 인식하거나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3세 이전에는 없었고 모든 것을 만능인 엄마가 해결해주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차츰 실생활을 통해 확인되는 자신의 한계를 해방해 주는 방편인 마술 세계에 관심을 두게 된다고 하네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허다한 것을 알게 되면서 가상의 초능력자를 자신과 동일화하고, 머릿속에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 도취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억압적인 상황과 자신의 한계를 잠시나마 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낡은 녹슨 못으로 변한 솔로몬의 은유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상 속에서 변신을 꾀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은 우스운 허구”라는 것을 우스꽝스럽지만 설득력 있게 알려주는 게 아닐까요?

형, 나하고 놀아줘!

마녀에게는 여덟 살 어린 남동생이 있습니다. 어찌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지 가끔은 귀엽기도 했지만 대체로 귀찮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따돌리곤 하던 이 마녀를 곱게만 기억해 주고 있지 않더군요. 친구들과 함께 마녀가 방문을 쾅 닫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 무척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언젠가 어른이 된 동생이 제게 “누나는 언제나 심술 맞게도 날 따돌렸어”라며 뒤늦게 원망을 하지 않겠어요? 바로 이런 형제 자매간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책이 『장난감 형』입니다. 일본 그림책 작가 후쿠다 이와오의 『난 형이니까』가 동생이 생긴 형의 심리를 섬세하게 짚어냈다면, 『장난감 형』은 동생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난감 형』의 찰스는 아버지로부터 연금술을 배우고 있는 형 요릭이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 형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부모님이 다른 동네에 일이 있어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우게 되자, 찰스는 형 요릭이 아버지의 실험실에 들어가 실험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냥 기뻤지만 형 요릭은 아버지가 없는 기회를 틈타 그간에 배운 것들을 직접 해보려고 합니다. 들판에 나가 무당벌레를 잡고 있던 찰스 앞에 나타난 찰스의 손만 한 요릭을 보고 찰스는 “소시지 한 토막만 해지다니!”하며 걱정하면서도 즐거워합니다.


아버지가 와서 작게 변한 모습을 보게 될까 걱정인 요릭과는 달리 동생 찰스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요릭의 집을 만들고, 빵 부스러기로 요리를 해 주는 등 온갖 친절을 베풉니다. 그러면서 찰스는 요릭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한 크기로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박에 맞아 쓰러지는 형 요릭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찰스는 요릭과 함께 아버지의 실험실로 가서 이런저런 해독제를 만들어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찰스가 아직 서투른 요릭의 지시만으로 제대로 된 해독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주일이 지나 부모님이 오셨고…. 마녀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여러분이 직접 살펴보시도록 하고, 그럼 마녀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또 다른 책을 책꽂이에서 꺼내올까 합니다.

고래와 생쥐의 우정 이야기

바다 저편의 세상이 궁금했던 생쥐 아모스는 자신이 만든 배에 로우던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거친 바다로 항해를 나갔습니다. 어느 날 밤, 검푸른 바다에서 반짝이는 물을 뿜어내는 고래를 보고 감탄을 하던 아모스는 그만 갑판에서 떨어져 바다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허우적거려보았지만 아모스를 도와줄 것은 망망대해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상어나 참치처럼 큰 물고기가 나타나 꿀꺽 삼켜버리면 어떻게 하지?’ 아모스는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모스는 물에 빠지게 되면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되는지, 하늘나라에는 다른 쥐들도 있을지 등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물속에서 고래가 불쑥 올라와 자신을 보리스라고 소개했습니다. 아모스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보리스는 아모스를 데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상아 해안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아모스는 모험도 귀찮으니 이젠 집에 가고 싶다고 사양했고 보리스는 기꺼이 아모스의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고래와 생쥐는 서로 다른 모습에 감동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모스의 고향 해변에 닿자 두 친구는 이별을 해야 했죠. 보리스는 아모스를 내려주고 다시 깊은 바다를 향해 멀어져 갔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폭풍우 속의 격랑에 떠밀려 해안으로 밀려온 보리스가 진이 빠진 채 모래밭에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모습을 아모스가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모스와 보리스는 한 장소에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기에 보리스는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합니다. “아모스, 도와줘. 빨리 물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야” 그러나 작은 몸집의 아모스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에 아모스는 보리스를 해변에 놓아둔 채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언젠가 아모스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혼자라고 느꼈던 것처럼 지금은 보리스가 해변에 누워 혼자라고 느끼며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때 기진맥진한 보리스의 몸을 바다로 밀어주는 게 있었으니, 바로 아모스가 어딘가에서 데려온 덩치 큰 코끼리들이었습니다. 보리스는 자신이 있어야 하는 바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두 친구는 또다시 긴긴 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를 절대 잊지 않으리란 것을!


윌리엄 스타이그는 숨막히는 세상에서 힘껏 숨 몰아쉬며 씩씩하게 살아가라고 아이들을 격려하는 그림책을 여러 권 내놓았는데 지금 여러분께 소개한 『아모스와 보리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팍팍한 환경, 삶과 죽음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존재나 동물들 이야기를 스릴 있게 그리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윌리엄 스타이그가 아이들 역시 어른과 마찬가지로 거대하고 위험한 자연, 교활한 적, 잠재울 수 없는 호기심과 모험심, 불가해한 운명과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라고 본다는 것을 우리는 눈치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집과 놀이방, 유치원과 학교에서 또는 놀이터와 골목길에서 낯선 사람들과 끊임없이 서로 탐색하고 친구들과 경쟁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윌리엄 스타이그는 그 어린 아이들을 향해 스스로 열심히 강인하게 그러나 여유있게 세상을 경험하라고 충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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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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