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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넘치는 상상력을 약 20 여 편의 그림책에서 풀어나가고 있는 존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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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근래 『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이병용 저, 살림출판사 폄)를 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유치원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붙어 있지만, 건태란 아이는 장난감과 놉니다. 그런 건태는 공격성을 드러내며 장난감 중독에 빠졌지요. 상담을 통해 건태의 생각을 알아 낼 수 있었는데요, 건태는 사실 엄마와 하루 종일 있었다고 해도, “아빠는 매일매일 바쁘고, 엄마는 텔레비전 보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알도』를 보면 외톨이 소녀의 우울한 독백이 적힌 처음 몇 장이 바로 건태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그런데 그림책에서 소녀는 건태가 장난감에 빠져들었듯이 아주 특별한 친구와 단짝 친구입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알도라는 이름의 장난감 토끼 인형이지요. 알도는 소녀가 소녀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도 위안을 주는 친구이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비밀 이야기도 들어주는 믿음직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소녀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인 장난감 토끼 인형 알도가 행여라도 사라질까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 그림책의 작가 존 버닝햄도 그랬다고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대안 학교인 섬머힐을 다녔던 그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공상에 빠져 있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소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쩐지 안쓰러운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다섯 살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존 버닝햄이 『알도』를 통해서 표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아니였을까요? 알도를 사랑한 소녀처럼 엄마를 대신할 또 다른 애착 대상을 찾는 아이들의 심정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알도』에서 소녀는 토끼 인형이 엄마의 대리물이었다고 한다면, 『마법 침대』에서는 삐걱거리는 낡고 초라한 침대가 조지란 주인공 소년의 애착 대상이 되어줍니다. 조지는 아빠와 함께 쇼핑센터에서 사온 낡은 침대에서 머리맡에 적혀있는 ‘이 침대에 누우면 먼 곳으로 여행하게 된다.’라는 신비한 문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고물 침대를 집안에 들여놓았다고 성화이지만 침대에 적혀 있던 문구의 주문을 해독한 조지는 침대를 타고 먼먼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죠. 밀림에서 길을 잃은 아기 호랑이를 돌보기도 하고, 동국 속에서 보물로 가득 찬 상자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조지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들처럼 침대를 타고 마음껏 상상의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남겨두고 간 휴가 여행을 다녀와 보니 조지의 헌 침대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할머니가 새 침대를 사놓으신 거죠. 어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덮었던 작은 담요를 성장을 해서도 지니고 다니듯, 불안해진 조지는 쓰레기 운반통 꼭대기에서 낡아 빠진 침대를 찾아냅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착 대상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고, 현실 속에서 이루지 못할 상상을 통해 아이에서 벗어나야 하는 현실을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점점 키가 자라나서 어린 시절 침대를 쓸 수 없었던 조지가 새 침대를 구해야 했던 것이 현실이라면, 아이들은 동심의 세계 속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피터팬 신드롬은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까요? 비록 이런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기 세계를 지키고자 집착하는 아이의 고집불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아이의 작은 키로 보기에 어른들의 세계는 자신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큰 세상일테니까요.

전 버닝햄이예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넘치는 상상력을 약 20 여 편의 그림책에서 풀어나가고 있는 존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힙니다. 또한 몇 년 전 국내의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은 그림책 작가 1위’로 뽑히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그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따라 억압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이 아이의 창조성을 억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존 버닝햄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어린 시절을 통한 확신에 찬 주장이기도 할 것입니다. 1937년 영국에서 태어난 버닝햄은 어린 시절, 학교만도 10여 차례 옮겨 다니다, 섬머힐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학생이 관습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더라도 크게 다그치거나 문제를 삼지 않는 학교로 유명한데요, 비로, 존 버닝햄은 무표정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공상에 폭 빠져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우울했던 시절의 무표정한 모습은 그림책들에도 투영이 되는데요, 그림 속의 아이들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결코 아닙니다. 웃을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또한 그는 스스로가 다섯 살의 정신 연령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 그림은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서툰 형태로 의도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거친 볼펜 자국과 시커먼 붓질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그림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쉽게 동화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만, 존 버닝햄은 그림책 하나를 구상하면서 아주 긴 시간 동안 어떻게 표현할지 많은 고민을 하는 작가입니다. 글쓰기 또한 500자 쓰는 것보다 100자를 쓰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라 쓴다고 합니다. 『지각 대장 존』에 나오는 선생님의 생김새를 결정하기 위해 무려 스케치를 300번도 넘게 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철저히 그림책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겠죠?

존 버닝햄의 부인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그림책 작가예요. 『곰 사냥을 떠나자』, 『커다란 순무』의 그림을 그린 헬렌 옥슨버리 여사를 기억하실 거예요. 두 분은 버닝햄이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에서 미술 공부를 할 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벌써 결혼 40주년을 맞은 그림책 작가 부부는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가져온 골동품으로 꾸민 빅토리아 시대의 벽돌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서울 성곡 미술관에서는 멋진 잔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존버닝햄의 그림책 속의 삽화 66점을 전시한 것인데요, 이 때 사진으로 찍은 존 버닝햄의 모습을 함께 만나보실까요?


이 때 존 버닝햄 씨는 한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쓴다고 해서 특별히 아이들을 염두해 두고 작업에 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사실 어른이 좋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삶 속에 지혜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실제로 청년 시절 존 버닝햄은 병역을 피해 일종의 공익 근무 요원으로 이스라엘까지 가서 산림 감시원이나 청소부를 한 경험도 있는, 결코 편안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기억들조차 소중히 여기며 심지어 어린 시절의 낙서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는 빡빡한 공부 일정에 쫓겨 어린 시절 동안에도 참다운 동심의 시절을 보낼 수 없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불쌍해 보였는지, 우리나라 엄마들에게 아이가 혼자 놀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검피 아저씨 - 환상과 현실이 직교된 세상

검피 아저씨 시리즈는 버닝햄만의 스타일을 잡기 시작한 초기의 그림책들입니다. 이 중에서 먼저 출간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는 1971년에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첫 장을 펼치면 물뿌리개를 들고 밀짚모자를 쓴 검피 아저씨가 자신의 집 앞에 서 있습니다. 가는 펜 끝으로 직교된 노란 선들이 뜨거운 여름날을 연상시킵니다. 아저씨슴 마치 존 버닝햄 자신이 어른은 이래야 한다고 제시하는 듯 아이들에게 상냥하고 관대한 분입니다. 한적한 시골, 달리 이글거리는 햇살을 피해 할 일이 없는 동네 아이들을 태운 아저씨의 배가 강둑을 따라 조용히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배를 보고 토끼, 고양이, 개, 돼지, 염소, 닭, 송아지 등이 자신들도 태워달라고 검피 아저씨에게 조릅니다. 소란을 피우면 배가 뒤집힐 염려가 되었지만 아저씨는 착하게도 동물들을 모두 태워줍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배가 결국 뒤집히고 모두들 쫄딱 젖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모두에게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하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존 버닝햄의 작품은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한 페이지 안에 공존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왼쪽의 예를 보더라도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색의 목탄화에는 주인공이나 화자가 그림책 속에 존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탄화가 실린 왼쪽의 페이지에 글이 실려 있는 것이죠. 반면 오른쪽의 채색화는 화자 혹은 주인공이 상상하는 또 다른 세상들입니다. 실제로 토끼가 어떻게 검피 아저씨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숨어 있는 화자인 배를 탄 어린이 중 한 명의 상상으로 꾸며가는 가공의 세계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과 상상이 세상은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분리된 듯 통합된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처럼, 장난감을 매개로 놀 때의 모습을 왼쪽, 머릿속에 펼쳐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오른쪽에 배치해 두는 것이라 비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구조는 비단 검피 아저씨 시리즈 이외에도 뒤에 소개할 『지각대장 존』에서도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존 버닝햄씨는 현실의 세계를 단색의 목탄으로 처리하고 상상의 세계를 현란한 색체로 표현을 했을까요? 제 생각인데요, 아이들이라고 반드시 일상의 세계를 긍정하며 즐기는 것은 아니라는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 같아요. 작가가 열 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던 어린 시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세요. 어린 시절의 존 버닝햄의 현실이 칙칙한 빛깔이었듯이, 오늘날의 우리 아이들도 빠듯하게 짜여진 스케줄에 쫓겨 하루하루를 암울한 흑백의 모노톤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한편, 검피 아저씨가 등장하는 다른 책 『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는 배를 타고 나가는 대신 아저씨의 지프차를 타고 아이들과 동물들이 야유회를 가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에서 동일한 사건으로 이야기가 종결됩니다. 그런데 오른쪽의 그림이 자세히 보이시나요? 납작한 얼굴에 점으로 박힌 눈, 꼭 다문 입술의 아저씨는 그저 기분이 조금 좋아지면 살짝 미소만 띠고, 기분이 나빠지면 턱이 좀 길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요. 이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아이의 입장에서 본 어른들의 감정 표현의 없음의 답답함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어쨌거나 이 착한 검피 아저씨 마저 표정이 없다는 것은 좀 아쉽네요.

어른들은 잊고 있는 동심

스티븐이 집에 가져온 장바구니 속에는 달걀이 다섯 개, 바나나가 네 개, 사과가 세 개, 오렌지가 두 개, 도넛이 한 개. 그리고 과자 한 봉지가 있었어요. “스티븐, 대체 어디 있다 오는 거니?” 엄마는 심부름을 시키고는, 행여 나쁜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한참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어요. 그래도 엄마는 스티븐의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셨는지 “겨우 달걀 여섯 개, 바나나 다섯 개, 사과 네 개, 오렌지 세 개, 도넛 두 개, 과자 한 봉지를 사오는데 이렇게 늦었니?”라고 꾸짖었어요. 후후. 스티븐의 엄마는 어렸을 때 저의 엄마와 똑같아요. 제 이야기 해드릴까요? 어떤 일이냐 하면요, 맏딸인 저는 가끔 두부 심부름이나 달걀 심부름, 혹은 붕어빵 심부름을 갔었어요. 딸랑딸랑 울리는 종소리의 발원지를 쫓아 두부 아저씨를 만나면 아저씨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두부 한 모를 제가 가져간 사발에 넣어주셨지요. 그런데 저의 집 근처에는 자갈밭이 옆에 있는 테니스 코트가 있었는데, 저는 두부를 들고 산악인 아저씨들 흉내를 내다 그만 자갈밭에 엎고 말았답니다. 두부는 사발 밖으로 튀어나와 뭉개져 버렸어요. 빈 그릇을 달랑 들고 풀죽은 모습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너 어디 갔다 왔기에 빈 그릇만 들고 왔어?” 하하, 엄마는 자갈밭에서 미끄러져 무릎이 깨진 저보다는 빈 그릇이 먼저 눈에 보이셨나 봐요. 참 야속했겠죠? 엄마도 한 때는 어린애였고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장에도 갔다 오셨을 턴데, 어린 꼬마가 장에 혼자 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지 다 잊은 듯 하시니까요. 하지만 만일 그 날 엄마가 저에게 “많이 아프니?”라고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셨더라면, 그림책 『장바구니』의 스티븐이 겪었던 사건에 별로 동감을 느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시킨 장보기 목록대로 스티븐이 장을 봐오지 않은 걸까요? 아니죠. 스티븐은 아마도 엄마가 알려주신 것을 외우며 장에 갔을 거예요. 정확하게 샀지만, 돌아오는 길에 곰, 원숭이, 캥거루, 돼지, 염소, 코끼리를 만나 장바구니에 든 것들을 하나씩 던져주고 나서야 간신히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화만 내요. 엄마들은 벌써 아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세상을 배운다는 것을 잊어버린 걸까요?

엄마뿐일까요? 학교 선생님은 어때요? 저도 가끔은 회사에 가기 싫을 때 혹은 지각할 것 같기만 할 때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곤 했었어요. 존 버닝햄의 작품인 『지각대장 존』은 어린 시절의 존 버닝햄이 그랬을 듯 매일 학교에 지각을 합니다. 지각을 했다고 야단치는 선생님은 존에게 이유를 묻지만 존이 대는 이유는 얼토당토 않은 것들뿐 입니다. 실제로 존이 등교길에서 악어와 사자를 만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존이 학교에 가는 길은 존의 상상 속에서 엄청난 고난의 길입니다. 악어가 나타나 존의 장갑을 던져버리질 않나, 사자가 나타나 존의 바지를 물어뜯지 않나... 그러니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선생님도 존의 말을 믿어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어른들은 그래요. 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않는지, 왜 지각을 하면서 거짓말을 둘러대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하기 보다는 펄쩍 펄쩍 뛰면서 지각한 조를 벌을 주기만 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말지요. 저도 『지각대장 존』에서의 존처럼 ‘선생님 잘못했습니다.’라고 반성문에 수도 없이 써봤는데요, 그렇게 한다고 진짜 반성하게 되지는 않더군요. 어른들은 몰라요. 무엇이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고, 어떻게 해야 즐겁게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아요.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얼마 전 본, 킴 푸브 오켄손 글, 에바 에릭손 그림의 그림책 『유령이 된 할아버지』가 떠오르는군요. 주인공 소년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소년과의 작별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자 유령이 되어 소년을 찾게 됩니다. 손자와 함께 옛 추억을 회상하며 뜨거운 포옹을 하고 편안히 작별을 하는 모습을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칠순이 된 존 버닝햄도 할아버지일테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좀 더 따듯한 시각으로 조명해서 『우리 할아버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책 속의 주인공인 어린 손녀는 할아버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느냐며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그 순간, 손녀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굴렁쇠를 돌리고 줄넘기를 하며 시소와 그네를 타는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도 만나고 현실로 돌아온 소녀에게, 밤이 되자 할아버지는 동화책을 읽어주십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소녀는 텅 비어있는 할아버지의 의자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그리워합니다. 이 그림책은 죽음과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한 그리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빼어난 책입니다. 혹자는 아이들에게 죽음과 부재란 문제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세요. 가끔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안방 문을 빼꼼이 열고 부모님이 무사히 주무시는지 확인해야 다시 잠들 수 있던 기억들이 한 번 정도씩은 있으셨을 테니까요. 『우리 할아버지』가 제게는 그토록 가슴 찡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비록 죽음으로 인해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삶을 긍정하며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의 애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좀 우울해 보이지만 따듯한 이야기로 마녀의 그림책 소개를 마치게 되었네요. 겨울밤, 아이들과 함께 나란히 누워서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함께 읽으시면서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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