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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기의 이솝 레오 리오니 - 우화 속에서 그의 철학을 만나다

이천 년 전의 이솝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어쨌든 20세기의 레오 리오니의 작품 속에서는 이솝의 ‘우화’에서 등장했던 여러 동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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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와 노랑이』는 기차에서 태어났습니다.

“1959년이었죠. 저는 그 때 제 손자 녀석들하고 맨하탄에서 코네티컷으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는데….” 레오 리오니의 회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마흔 중반의 뉴요커로서 이미 그래픽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그는 그 즈음에 십 년간 미술 감독으로 일하던 ‘포츈(Fortune)지”에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가한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파슨스 스쿨의 미술 부장으로, 예일 대학교의 강사로서 하루 하루를 뉴요커답게 숨가쁘게 지내야했으니까요.

“그 날 손자 녀석들이 떠들지만 않았더라도 제가 그림책을 서른 권이나 만들게 되지는 않았겠죠. 손자 녀석들의 소란을 잠재울 요량으로 마침 제 가죽 가방 속에 있던 ‘라이프(Life)지’를 꺼냈습니다. 솔직히 저도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정확히 몰랐지요. 그런데 노란색, 파란색, 녹색으로 디자인 된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르더군요.”

“자, 내가 이야기를 들려줄께.” 이렇게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옆 자리에는 손자들이 크고 동그란 눈을 굴리며 침을 꼴깍 삼키면서 그의 손에 들린 잡지 한 장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노란 부분을 동그랗게 손으로 오렸습니다. 파란 부분도, 녹색 부분도 모두 동그랗게 오렸습니다. 그리고 제 가죽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그걸 무대로 노란 원과 파란 원을 두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즉석에서 만들어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파랑이와 노랑이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었단다. 술래가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동안 노랑이가 나무 뒤에 숨었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파랑이의 눈엔 노랑이가 보이질 않는거야. 파랑이는 날이 어두워지자 울어버릴 것만 같았어. ‘노 랑아, 노랑아, 어디 있니?’ 그런데 지쳐버린 노랑이도 나무에 기대 잠을 자다 잔디 위로 넘어지게 되었단다. 그래서 마침내 파랑이는 노랑이를 찾게 되었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파랑이는 노랑이를 얼싸 안고 좋아했단다. 하마터면 노랑이를 영영 못 찾게 되는 줄 알고 불안했던게지.”

“꼬마들만이 아니라 제 자리 주변의 어른들까지 제 손에 쥐여있던 얇은 노란 원과 파란 원이 녹색으로 겹쳐지는 것을 보고 있더군요. 다들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던거죠. 그렇게 제 첫 번째 작품 『파랑이와 노랑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미의 꿈』 과 네델란드 국립 미술관

레오 리오니의 작품 『그리미의 꿈』에서는 어린 시절의 레오 리오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레오 리오니는 191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레오 리오니는 주말이면 물감과 캔버스를 들고 집 근처에 있는 네델란드 국립 미술관에서 램브란트와 베르메르의 작품을 따라 그렸습 니다. 책 속에서 그리미도 미술관에서 본 작품에 매료되어 화가가 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요, 그는 자신의 책 『나의 어린이들의 책(My Children’s Book) 』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맞아요, 저는 친구들이 축구공을 차고 있을 때, 램브란트의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고, 그 때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클레,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의 추상 화가들의 작품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던 어느 순간 문득 내 책 속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개구리, 쥐, 달팽이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반 세기 전의 제 방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저는 어린 시절 제 방에서 그런 동물들을 키웠거든요.”

20세기의 이솝

그의 작품들 속에서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어린이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는 읽고 싶어하지 않고, 또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도 읽지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꺼린다고 합니다.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림책 속에서는 어른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리미와 같은 생쥐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천 년 전의 이솝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어쨌든 20세기의 레오 리오니의 작품 속에서는 이솝의 ‘우화’에서 등장했던 여러 동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레오 리오니는 봄, 여름철에는 햇빛 따사로운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에서 작업을 했는데요, 바로 투스카니 지방에서 그의 많은 작품 들이 창작되었습니다. 해안가를 거닐면서 본 자갈과 산책로의 파릇 파릇한 잔디와 풀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구상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오후 레오 리오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작은 도마뱀이 뒷다리로 서서 작업실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그 도마뱀을 주인공으로 당장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서 걷는 악어 우뚝이 』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 『으뜸 헤엄이』는 어느 무덥던 여름 날 오후에 부두에 앉아 넋을 놓고 잔챙이 물고기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바라보다 착안했다고 합니다.

꼴라쥬와 『꿈틀 꿈틀 자벌레 』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작가 에릭 칼의 작품을 보면 종이를 오려 붙여 형상을 만든 ‘꼴라쥬’ 기법이 많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에릭 칼도 꼴라쥬 기법에 대한 공을 레오 리오니에게 돌리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 한 바 있습니다. “레오 리오니의 작품은 제게 어린이 책을 창작하도록 격려했을 뿐 아니라, 그 분의 섬세하고 창의적인 시각 디자인과 미술적 기법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1961년 레오 리오니는 ‘꼴라쥬’ 기법을 이용해 자벨레와 수풀을 표현한 그림책 『꿈틀 꿈틀 자벌레』로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 방법은 훗날 『눈오는 날』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게 된 에즈라 잭 키이츠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프레드릭 』 너는 시인이 되었구나!

눈을 뿌려주는 것은 누구? 얼음을 녹이는 것은 누구?
날씨를 나쁘게 하는 것은 누구? 좋게 하는 것은 누구?
6월에 네잎 클로버를 싹트게 하는 것은 누구?
햇빛을 끄는 것은 누구? 달빛을 밝히는 것은 누구?


위의 시는 게으름뱅이 쥐돌이 프레드릭이 겨울 햇빛을 쬐며 읊은 시입니다. 이것을 들은 프레드릭의 이웃들은 “프레드릭, 네가 시인이 되었구나!”라고 말하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된 프레드릭은 남들이 뻘뻘 땀을 흘리며 일할 때 베짱이처럼 정작 노래만 부릅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갸우뚱하게 됩니다. 진정 레오 리오니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의 그림책을 통해, 때로는 우정을, 때로는 이웃 사랑을, 때로는 지혜를, 때로는 이상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아를 발견하는 방법은 프레드릭처럼 몽상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자신 속에 숨겨둔 미래를 찾게 해주는 것이 세상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라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의 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의 책들은 몽롱한 봄날의 시가 되어 ‘졸졸’ 살얼음 밑에 흐르는 것만 같은 혹은, 차가운 얼음 절벽 위를 외로이 떠도는 황금 날개의 새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그런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 철학 책이니까요.

마녀, 한 때 레오 리오니와 연애하다.

하하, 제 나이가 몇 살인데 레오 리오니와 연애를 했냐고요? 음, 마녀니까 가능하지요. 그래요. 저는 그러니까 딱 삼 년 전 이 즈음에 레오 리오니와 연애를 했습니다. 그의 책 열 권에 노래 스무 곡을 입히는 작업을 하면서, 잠을 자면서도 그분만을 생각했으니까요. 그 분이 『조금씩 조금씩』, 『으뜸 헤엄이』, 『프레드릭』, 『새앙쥐와 태엽쥐』로 네 번씩이나 칼데콧 상을 수상한 명예가 있어서 제가 사랑했다구요? 천만에요. 저는 그 분의 책 속에서 그 분의 영혼을 보았고, 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그 분이 노랫말에 가락을 붙였지요. 그렇게 해서 탄생된 노래가 아래 소개된 악보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레오 리오니의 『티코와 황금 날개』에서 빌려온 것이고요, 가락은 독일에서 작곡 공부를 하고있는 마녀의 동생이 붙여준 것이랍니다. 마녀가 동생을 꼬셨지요. 여러분도 그리운 사람이 떠오를 때, 피아노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불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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