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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하게 만드는 당신! 누구냐, 너? - 스티븐 킹의 『스켈레톤 크루(상)』 &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귀신과 같은 초현실적인 것들이 주는 공포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것이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고 두 번째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때인데 단연 무서운 것은 후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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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깜깜한 방, 잠결에 눈을 떠보니 눈앞에 하얀 무언가가 있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인간의 형상을 한 그것은 소복을 입었고 입 주위는 빨갛고, 눈빛은 핏빛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나 이것보다 더 몸서리쳐지는 건 뭔가가 벌어지고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다. 가령 이런 것이다. 사방이 깜깜한 방, 잠결에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무언가가 있다. 여자의 구슬픈 울음소리 같은, 혹은 아기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귓가에서 맴돈다. 돌아보고 싶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기어코 힘을 내보려한다. 그럴 때 귓가에 그 무언가가 말한다. “움직이지 마.”라고.

귀신과 같은 초현실적인 것들이 주는 공포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것이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고 두 번째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때인데 단연 무서운 것은 후자의 것이다. 전자의 경우 어떻게든 해볼 텐데 후자의 경우는 대책이 없다.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공포가 극에 달해 분노가 일 정도니까.

스티븐 킹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너무 잘 알아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몸서리치게 만든다. 이야기는 『스켈레톤 크루(상)』에 담겨 있다. 단편집의 처음을 장식하는 ‘안개’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뗏목’이 그 주인공. 먼저 ‘안개’를 보자. 평화로운 마을에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온다. 안개는 안갠데 뭔가 좀 느낌이 다른 그런 안개다. 그래도 사람들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 삶을 즐기기에도 바쁜데 누가 안개 따위에 신경 쓰겠는가.

주인공도 그렇다. 아들과 함께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문득, 아주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했던 안개가 마을을 지배해버린 것이고 어느새 주인공이 있는 슈퍼마켓도 포위된 상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도 안개가 뭐 어떤가, 싶어서 안개를 헤치고 나간다. 그러자 사람의 모습은 곧바로 사라져버린다. 대신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가 꿀꺽 삼키는 듯한, 뼈를 와드득 씹어 먹는 듯한, 제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는 기이한 소리들이 비명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실종. 안개 속에 들어간 사람은 실종된다. 아니, 죽었다는 말이 맞을 게다, 아니다. 그것보다 더 정확한 것은 안개에 먹혔다는 말이 맞다. 도대체 안개 속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런 것인가! 알 수가 없다. 짙은 안개는 그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두려움을 떨면서. 물론 작가가 스티븐 킹인 만큼 공포는 글자를 타고 자연스럽게 전해온다.

‘뗏목’도 비슷하다. 네 명의 남녀가 혈기를 참지 못하고 호수로 들어가 뗏목에 오른다. 그래서 한껏 낭만에 취하는데 이내 호수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무엇인가? 모른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죽는다는 것.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유도 모른다. 살기 위해서는 한 치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극도의 초조함과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안개’와 ‘뗏목’이 두려움을 주는 요소는 분명하다. 첫째, 상대가 뭔지 모른다는 것. 둘째 뭔지 모르는 것이 날 죽이려고 한다는 것. 셋째, 상대가 뭔지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스티븐 킹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덕분에 이 여름철에 『스켈레톤 크루(상)』는 오싹함을 느끼게 해준다.

스티븐 킹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 사실을 깨달은 작가가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 그 또한 이런 공포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눈먼 자들의 도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일종의 전염병처럼, 하?둘씩 시작된 이 병은 점차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먹을 것은? 직장은? 생활은?

모든 것은 파탄난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 모든 것들을 끔찍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냄새나는 화장실, 부족한 음식,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폭력…… 눈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남을 짓밟고 그 와중에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갖가지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눈 먼 ‘그대’는 어찌해야 하는가? 함부로 상상하지 마시라. 그건 공포라는 단어를 넘어선 지옥의 다른 이름이다.

물론 이 작품은 그 상황에서도 ‘희망’을 그려냈다. 이유는? 단 한 여인이 발병이 늦게 일어난 덕분에 앞을 볼 수 있었다. 그녀 덕분에 작은 평화가 생겨나고, 그것에서 더 큰 평화가 생겨난다. 그러나 희망과 별도로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특히 주제 사라마구는 볼 수 있는 여인보다 눈먼 대중,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선 그들, 공포심에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어야 사람들에 감정이입하도록 하고 있다. 무슨 상황인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고통, 그것이 책장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이 또한 무섭기는 매한가지다.

더위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노크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을 열어야 하는가? 두 권의 책에 손을 뻗자. 더위가 싹 물러간다. 단, 밤에는 보지 말 것! 차라리 더위를 향해 도망치는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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