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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삼국시대’를 열자! - 『삼한지』 & 『오국사기』

김정산의 「삼한지」나 이덕일의 「오국사기」는 충분히 수적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을 깜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깜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영웅들을 만나기 위해 그 시대의 문을 두드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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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삼국시대가 있다
삼국시대하면 누구를 떠올리시는지? 도원결의로 맺어진 유비 삼형제? 외로이 북벌을 감행한 제갈량? 오나라 명장 주유와 태사자? 조조와 하후씨 형제? 맞다. 이들은 일명 삼국시대의 주인공들로 손색이 없는, 중국 역사의 화려한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역사에도 당당한 용장들이 있었다.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천하를 겨뤘던 그 시기에 이 땅에는 수많이 영웅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정사 삼국지」나 「삼국지연의」를 소개하거나 의역한 작품은 많았지만 우리의 것은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방대하게 다룬 것은 김정산의 「삼한지」 정도이며 그 외에는 이덕일의 이름이 눈에 띌 따름이다. 아쉽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잠시, 그 자리는 곧 만족감으로 채워질 수 있다. 김정산의 「삼한지」나 이덕일의 「오국사기」는 충분히 수적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을 깜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깜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영웅들을 만나기 위해 그 시대의 문을 두드려보자.

마지막 백년, 영웅들이 대거 출몰하다
「삼한지」「오국사기」는 다루는 시대가 비슷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하던 그때까지의 약 100년을 다룬 것이다. 여기서 의문 하나가 생길 수 있다. 왜 100년일까? 의문은 계속된다. 마지막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고구려와 백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지 않겠는가?

암기 교육 때문인지 흔히 삼국시대의 영웅들 하면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시절, 백제는 근초고왕 시절, 신라는 진흥왕이나 태종무열왕(김춘추)시절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삼국의 영웅들이 각각 다른 시기에 나왔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령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는 백제는 ‘촉한의 유선’처럼 바보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의자왕이 있었으며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 100년, 그때는 각각의 나라들이 삼국시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혈안이 된 때였다. 그런 탓에 이 때만큼 난세인 때도 없었다. 옛말에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모를 뿐이지, 「삼한지」「오국사기」가 다룬 마지막 100년은 단순히 ‘마지막’이기 때문에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삼국에서 영웅으로 우르르 몰려나온 시대이기 때문이다.

보물섬을 탐험하는 것 같은 재미가 가득한 「삼한지」
「삼한지」「오국사기」는 그 시대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먼저 분량의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삼한지」는 열 권이다. 그렇기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영웅들까지 등장한다. 물론 영웅들의 등장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삼국의 정세까지 소상하게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삼한지」를 보고 있노라면 익히 알고 있던 그 시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루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김정산이 왜곡된 것들까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몇 가지 경우를 보자. 의자왕은 정말 무능했을까? 또한 당시 백제에는 계백 말고는 영웅이 없었을까? 「삼한지」에 따르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의자왕은 총명한 태자로 소문났다. 그럼에도 역사가 그를 무능하게 보게 된 까닭은 더 훌륭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의자왕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서동이라고 불렸던 무왕이다. 무왕은 의자왕이 삼국을 통일할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그 중 하나가 비밀리에 천하의 인재들을 모으고 또한 그들을 의자왕이 왕이 될 때까지 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히 제갈량 뺨치는 인재들을 아껴서 아들에게 물려준 셈이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법! 의자왕은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으로 결국 좌절하고 만다. 알려졌듯이 삼천궁녀의 치마폭에 쌓여서 술만 먹고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불효의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 삼천궁녀는 어떨까? 진실이었을까? 「삼한지」는 그것을 신라의 계략이라고 알려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치졸하다. 왜 이런 치졸한 계략을 썼을까? 무왕 때문이다. 무왕의 아내는 알려졌듯이 선화공주, 즉 신라 출신의 공주다. 그러니 무왕은 신라 황실의 사위인 셈인데 그것을 핑계로 성을 빼앗은 뒤에 “장인어른! 어쩔 수 없었어요!”하는 식으로 읍소를 하고 다시 성을 빼앗곤 하는 치졸한 계략을 자주 사용했다. 그럼 그는 왜 이런 치졸한 계략을 썼을까? 「삼한지」를 보라. 이런 것들과 비할 데 없는 놀라운 사실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덕일, 짧고 굵게 그 시대를 보여주다
그런데 열 권짜리 분량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삼국지가 그러하듯 1, 2권은 영웅들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는지라 흥미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곧바로 클라이맥스의 문을, 즉 3권짜리인 이덕일의 「오국사기」를 펼치면 된다.

제목이 ‘삼국사기’라는 이름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중국(당), 그리고 일본(왜)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왜 이럴까?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알기 위해서는 타 국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덕일의 「오국사기」는 그런 주장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물론 땅덩어리로 보자면 고구려, 신라, 백제, 일본이 중국에 비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덕일은 그 시대를 땅덩어리의 크기로 보지 않았다. 역학적인 관계를 고찰했다고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덕일은 다섯 국가 모두를 그 시대 동북아시아의 핵심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렇기에 「오국사기」「삼한지」와 달리 한반도 안에서 동북아시아를 본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관찰한 것처럼 시야가 광활하다. 더불어 각 나라들의 이해관계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며 무엇보다도 ‘긴박한 순간’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도 매력적이다. 화끈하다고 해야 할까? 굳이 분량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용 전개하는 것을 보면 「삼한지」를 장거리 경주라고 할 때 「오국사기」는 단거리 경주라고 할 수 있다. 눈 돌릴 틈이 없다.

‘삼국지’를 벗어나 우리의 삼국시대를 보자
「오국사기」를 볼 때는 몇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삼한지」가 ‘삼국시대’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면 ‘이덕일의 역사해석’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국사기」는 ‘해석’하는데 치중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라는 것이 낯익은 역사가 아니라면 꽤나 위험하게 작용할 수가 있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보다는 일종의 결정된 생각을 그대로 ‘다운로드’받게 될 우려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넉넉하다면, 또한 본격적으로 우리 영웅들이 활약하던 백 년을 알고 싶다면 김정산의 「삼한지」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풍부한 것을 볼 수 있으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오국사기」는 그 다음에 보는 것이 좋다. 해석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삼국시대를 알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곧바로 정면승부를 하고 싶다면 「오국사기」가 제격이다. 물론 보는 순간 내내, 이것은 하나의 생각일 뿐, 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삼국시대에 충분한, 또한 긍정적인 흥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자,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삼국시대하면 누구를 떠올리시는지? 유비, 조조, 손권? 「삼한지」「오국사기」를 만난 ‘당신’이라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것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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