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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밌게 보기 ① - 여행의 끈 잡기 :『염소를 모는 여자』 & 『달려라, 아비』

흔히들 한국소설은 재미없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소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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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한국소설은 재미없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소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혹시 즐거움의 2%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소설은 ‘소설’만 가지고 감상하면 안 된다. ‘크로스’, 즉 소설끼리 비교해봐야 한다. 그리하여 뚜렷이 대비되는 것들을 찾아야만 즐거움이 톡톡 튄다. 그럼 그 즐거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우선, 여행의 동반자를 정하자. 한국 여성작가의 대표주자인 전경린과 차세대 여성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애란이다. 그 다음, 여행의 끈을 정하자. ‘아버지’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소설은 유독 ‘아버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소설 읽는 맛을 만끽할 수 있다.

먼저 전경린과 여행을 떠나보자. 1990년대 등장한 전경린은 ‘마녀(魔女)’를 불러내는 ‘귀기(鬼氣)의 작가’로 불린다. 별명이 왜 이러냐고? 전경린은 여자들로 하여금 유약하고 순종적인 여성스러움을 벗어버리라고 주문한다. 대신에 인간으로서의 야성적인 본능과 정열에 대한 욕망을 파헤치도록 만든다.

비슷한 시기에 주목받은 다른 여성작가들을 보자. 멋진 로맨스,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 센티멘털한 플롯, 자전적인 서사로 요약되는 규칙들을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전경린은 한결같이 여성, 그 자체로서의 본질을 찾기 위한 글을 쓰는 데 주력했다. 그러니 대표작가로 군림할 수밖에.

그렇다면 여성이 본능적인 욕망을 찾는 데 애를 썼다면 여기서 아버지는 어떻게 그려질까? 예상한 그대로다. 전경린의 소설에서 아버지란 전형적인 가부장제도의 아버지다. 극적인 사례가 담긴 장면을 보자.

“아버지는 처마를 타고 내려오는 구렁이를 본 듯 녹슨 낫을 들고 내 등을 쫓아왔다.”

이것은 『염소를 모는 여자』에 실린 단편소설 「사막의 달」의 일부분으로 묘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는 딸을 죽일 권리까지 지닌 것인 양 행동한다. 게다가 딸을 구렁이로 취급하는 건 어떤가? 또한 ‘녹슨 낫’을 들고 쫓아오는 건 어떤가? 딸이 욕망에 충실하고 싶다면, 쉽게 말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죽을 위기를 넘겨야 한다. 죽을 각오를 하고, 신에게 반란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전경린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가 아버지를 가부장제의 권력자로 묘사했다. 서태지가 등장하고 PC 통신이 시작되는 화려한 변화가 있었지만, 유독 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땅에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시기를 기점으로 소설 속의 아버지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초라해져 갔다. 시대를 반영해서일 게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하던 그때, 아버지들은 더 이상 소설 속에서 권력자가 될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직장에서 언제 정리해고될지 모르는 신세가 됐는데 권력은 무슨 권력인가? 집에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고 이러한 변화는 외환위기가 끝나고도 멈출 줄 몰랐다.

올 초 한국일보문학상 최연소 수상자로 알려지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김애란의 소설은 이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집 제목부터 보자. 『달려라, 아비』다. 아니! 아비에게 달리라니!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이다. 소설 속을 보자.

“아버지가 비록 세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초라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달려야, 아비」에서 아버지는 초라하다. 외국에서도 이혼당하더니만 전 부인의 집에서 잔디를 깎는다. 전 부인이 ‘운동장만 한 잔디밭이 있는 남자’와 결혼한 집을 주말마다 방문해서 “헬로우” 인사를 한 뒤에 잔디를 깎으러 간다. 전 부인이 새 남편과 거실에서 다정하게 맥주를 마실 때 아버지는 바깥에 쭈그리고 앉아 기계를 손보고, 그들이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서로 껴안을 때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그 앞에서 잔디를 깎는 것이다.

자, 이 장면이 상상이 되는가? 상상이 된다면 다시 전경린 소설의 아버지를 떠올려보자. 아버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비교해보자. 어려울 것 같지만 쉽다. 그리고 은근히 재밌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여행의 끈을 잡아보자. ‘아버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정’이다. 전경린의 작품들에서 가정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아버지의 논리가 곧 가정의 논리로 통하기 때문일까? 가정은 꽤 비판적으로 그려진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서 말하듯 가정이란 어떤 고통을 “가능한 가볍게, 순조롭게, 가능한 행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면 여자는? 집에서 여자는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존재해야 한다. 여자, 그 자체는 없다. 하지만 전경린은 그것만큼은 확고히 변할 것임을 예감했다. 하기야 시대가 그리 빠르게 돌아가는데 어찌 예감하지 않으랴.

그렇다면 전경린의 예감을 후배 작가 김애란은 어떻게 받았을까? 어렵지 않다. 지금 생각하는 ‘가정’을 떠올리면 된다. 「달려라, 아비」처럼 엄마와 둘이 살면서 초라한 아버지를 생각하거나, 「나는 편의점에 간다」처럼 편의점이 가정을 대신했거나, 「노크하지 않는 집」처럼 대학가 근처에서 혼자 살거나 하는 식이다.

이것을 본다면 가정은 완전히 파편화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하여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뭐랄까, 좋은 시절을 회상하며 계속 난파하는 중이라고 할까? 보호막이라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고, 떠나자니 가슴 깊은 곳이 시려오는 그런 존재로서 말이다.

이렇듯 ‘아버지’와 ‘가정’을 거쳤다면 여행의 끈은 계속해서 잡힐 것이다. ‘어머니’가 될 수 있겠고, ‘돈’이 될 수도 있다. 좋다. 묵직한 것이면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여행의 끈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끈을 잡게 된다면, 소설 한 권 읽고 감상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크로스’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국소설은 작품 하나로도 재밌지만, 이렇게 보면 더 재미있다. 그러니 두 권의 책으로 여행의 끈을 팽팽히 늘리는 연습을 해보자. 확실히 대비되는 만큼 어렵지 않게 맛을 익힐 수 있다. 그런 뒤에 계속 연습량을 늘려보자. 손에 힘을 꽉 주고서 책들을 연결해보면 어느 순간 맛보게 되리라. 한국소설의 참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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