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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알고 싶어? 여자를 알고 싶어?- 『언니네 방』 & 『남자들, 쓸쓸하다』

이렇듯 『언니네 방』은 확실히 남자가 ‘여자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물음의 정답은 박범신의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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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를 알고 싶을 때,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알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으로 일단 ‘대화’가 떠오를 테지만 알고 보면 그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솔직한 이야기가 생각처럼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되레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럼 정말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다. 책이다. 다만, 책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마초’나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책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면 책을 펼치나 마나다. 또한 ‘연애’를 목적으로 한 책도 여기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은가? 속내를 엿볼 수 있고,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는 책이어야 한다. 이왕이면 소설보다 수필류가 좋고, 외국의 것보다 국내의 것이 좋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나온 『언니네 방』은 여러모로 반가운 책이다. “일기장에도 차마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라는 광고 문구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여자들이 하고픈 말들을 고이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먼저 책을 살펴보기 전에 ‘언니네’라는 커뮤니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언니네는 몇 가지 규정을 통해서 여성회원들의 글쓰기를 보장하는 인터넷 사이버 공간으로 유명한 곳이다. ‘안전’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곳보다 ‘자매애’가 강한 곳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문에 언니네에는 여자들의 진실한 고백들이 올라온다. 여기서 살펴볼 『언니네 방』은 그곳에 올라온 글 중 ‘보석’ 같은 글을 모아둔 것이다. 그러니 기대를 걸어도 좋다.

그럼 노크를 하고 방을 들어가 보자. 첫 번째 글의 주제는 ‘섹스’에 관한 것이다. 아뿔싸, 여자가 말하는 섹스라니! 너무 자극적인 것 아닌가 싶지만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자극과는 거리가 먼, 남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글임을 알 수 있다. 글의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여자는 모두 타고난 에로배우인가?”, “힘세고 오래가는 ‘로켓트 밧데리’가 좋다?” 등이다. 자, 무슨 내용이 있을지 짐작이 되는가?

글쓴이는 토로한다. 남자를 위해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섹스는 그저 피곤하기만 한 일”이라고 말하게 된 사연을. 이 대목에서 남자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신음소리에 왜 그리 민감했는지, 그리고 힘세고 오래가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그것이 모두 여자를 위한 것이라고 떠들곤 한다. 정말일까? 말로만 여자를 위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남자들의 일방적인, 자신을 뽐내기 위한 척도가 아니었을까? 글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가 남자의 얼굴을 붉게 만든다. 왜? 부끄러우니까.

다른 방에는 아저씨들에게 전하는 뼈아픈 말도 있다.

“사람 많으면 아줌마들 무대뽀로 밀고 들어온다고? 아자씨, 아자씨는 사람 없어도 뒤에 달라붙어 손이 바빠지더라. (…) 할 일 없는 아줌마들 차 끌고 나와서 길이 막힌다고? 아자씨, 아자씨는 옆에 다른 여자 앉히고, 드라이브한다고 나와서 길 막히게 하더라.”

『언니네 방』에 있는 방들을 노크할 때마다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숨 막히게 살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녀들의 답답함이 오롯이 마음으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언니네 방』을 나올 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단지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그 아픔들 앞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고 모를 수 있었던 행운 아닌 행운이 실은 불행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깨닫기에 그러하다.

이렇듯 『언니네 방』은 확실히 남자가 ‘여자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물음의 ?답은 박범신의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남자들이 남자의 고충을 풀어놓은 것을 보면 좀 이기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데 “왜 남자가 이런 걸 해야 하는가?” 하는, 보통 군대 문제로 시작해 군대 문제로 끝나는 소모적인 주장이 다수였다.

하지만 박범신은 그걸 뛰어넘었다. 아니, 뛰어넘었다기보다는 곧바로 핵심으로 걸어들어갔다는 것이 맞을 게다. 핵심이란 무엇인가? 여자들이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때문에 속상하다면 남자도 마찬가지다. 박범신은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주저앉고 싶어도 이를 콱 다물고 버텨야 하는,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문자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책에서는 ‘중년’이 많이 언급된다. 젊은 층이야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성장했기에 덜 할 수 있겠지만 중년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중년의 남성들이 성장할 때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남자가 주방 들어가면 집안망신이라는, 명절 뒤치다꺼리는 모두 여자의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퍼지던 때가 그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고루한 의식을 바꿔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 중년 남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까? 그러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인다. 이럴 때 중년의 남성은 어찌하랴? 타박 소리 듣기 싫어 방안에 들어가 돌아누울 수밖에.

남자를 두고 ‘집안의 대들보’라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그것을 원해서 그랬던가? 박범신은 쓸쓸한 고백을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누나들 사이에서 혼자 절해야 하는 심정이 편치 않았다고, 명절 때 고생하는 아내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말이다. 또한 남자도 약하다고,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남자이기에’, ‘남자니까’라는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쓸쓸한 말도 잊지 않고 있다.

박범신 덕분에 여자들은 돌아누운 남자의 쓸쓸한 등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언니네 방이 열린 까닭에 남자들 또한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리하여 한걸음, 비록 그 걸음이 아주 짧은 한 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해준다.

어떤가? 한번 다가가 보지 않겠는가? ‘당신’을 위해, ‘당신’과 다른 누구를 위해,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결코 어렵지 않다. 책에 담긴 진심만 만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최소한 아주 짧은 한 뼘만큼은 커지리라. 소중한 그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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