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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오솔길을 찾아서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세상에서 말하는 ‘철학의 빈곤’을 탈출하고자 서점을 찾은 사내, 철학 관련서적 코너로 발걸음을 뗀다. 요즘 주목받는 들뢰즈와 가타리 관련 서적을 들춰보다가도 어렵다 싶은 마음에 철학입문서로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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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말하는 ‘철학의 빈곤’을 탈출하고자 서점을 찾은 사내, 철학 관련서적 코너로 발걸음을 뗀다. 요즘 주목받는 들뢰즈와 가타리 관련 서적을 들춰보다가도 어렵다 싶은 마음에 철학입문서로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쉽고 재밌다’라고 자화자찬하는 철학입문서를 하나 꺼내든다. 정말 쉽고 재밌는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갔는데 막상 읽고 나니 마음이 허전해진다. ‘그래서 철학이 어쨌다는 건데?’ 하는 마음에.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 해보지 않았을까? 그동안 철학은 그 난해함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그나마 요즘은 쉽고 재밌게 알려준다는 책들이 있어서 그 견고함이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너무 쉽게 풀어쓰려고 한 나머지 철학자들의 신변잡기적 에피소드에 가까운 글을 모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철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 철학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가? 아쉽게도 요즘 나온 관련서적들은 이 질문에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래밭 사이에서도 진주는 빛을 내는 법, 여기 철학입문서로 철학의 흥미를 돋워주는 것은 물론 철학의 쓰임새를 쉽고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다. 알랭 드 보통은 누구인가?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불안』 등의 작품으로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유쾌하고 경쾌한 글을 쓰는 이로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

그러니 작가의 이름만 놓고 본다면 일단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 기대를 걸 만하다. 그럼 이 책은 철학의 쓰임새를 어떻게 알려주고 있을까? 먼저 책의 구성을 보자. 책은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등 여섯 명의 철학자를 다루고 있는데 그 다루는 방식이 평범치 않다. 보통 철학 입문서라고 하면 철학의 역사를 고찰하며 순차적으로 철학자들을 등장시킨다. 뒤이어 개별적으로 그들의 연대기를 언급한 뒤에 철학자들의 활동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그런 평범한 길을 걸을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책은 자신만의 방식을 구축한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를 보자. 보통 ‘소크라테스’ 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기억되는데 알랭 드 보통은 그것과 별도로 소크라테스가 ‘비인기남’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렇기에 읽다 보면 의문이 든다. 소크라테스가 비인기남인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알랭 드 보통은 의아심이 들 정도로 소크라테스가 인기가 없었다고 강조하는데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인기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랬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기가 없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토대로 알랭 드 보통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인기가 없는 사람에게 인기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묻는다. ‘여론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이성을 쫓았던 소크라테스가 인기에 집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그랬다면 소크라테스는 역사와 달리 장수했을지도 모르고 살아있는 동안 칭송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역사는 지금처럼 그를 위대하다고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알랭 드 보통은 소크라테스의 삶에 비추어 ‘인기’가 곧 ‘정의’가 아님을 알려준다. 동시에 소크라테스의 삶을 보고 위안을 삼으라고 말한다. 그렇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을 통해 인기 없는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부른 것도 그런 이유다.

이는 소크라테스뿐 아니라 다른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다섯 명의 철학자도 각각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것, 좌절, 부적절, 상심한 마음, 곤경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어떤가? 철학자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철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을 원한다면 이왕주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이왕주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으로 영화 속에서 철학 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 또한 철학입문서로는 제격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책에서 언급한 것들을 엿보도록 하자.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영화들을 낯익으면서도 낯설게 여겨지는 철학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가령 <디 아더스>는 푸코의 것으로, <친절한 금자씨>는 들뢰즈의 것으로, <슈렉>이나 <존 말코비치 되기>는 칸트의 것으로, <피아노>는 에리히 프롬의 것으로, <북경 자전거>는 하이데거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동안 감동적이라고, 재미있다고 여겼던 영화들이 사실은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짐 캐리가 열연했던 <트루먼 쇼>에서 들뢰즈가 언급되는 것은 어떤가? 이왕주는 트루먼의 모습에서 ‘안주를 넘어서 떠나려는 열망을 표출하는 유목민’의 갈 길을 다룬다는 점에서 들뢰즈를 언급하고 있다. <디 아더스>에서 푸코를 만나는 건 어떨까? 그동안 어느 영화에서나 ‘나’와 ‘타자’의 관계가 등장했는데 대부분이 나를 통해 타자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디 아더스>는 나를 중심으로 타자를 보는 가치관에서 벗어나 ‘타자로 전락해 버린 나’를 다룸으로써 기막힌 반전과 묘한 여운을 남겼는데 이왕주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푸코의 사상과 연결하고 있다. 책 제목 그대로, 영화를 캐스팅한 철학의 모습을 아주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철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철학책도 이것만큼은 명료하게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왕주는 아주 쉽게, 영화라는 친숙한 도구를 통해 철학에 대한 접근법을 알려준다. 나아가 영화에 대한 즐거운 감상법까지 알려주니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철학 입문서로 제격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

난해했던 철학은 그 어려움의 망토를 벗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철학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과 이왕주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가 저 앞에 펼쳐진 철학의 오솔길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즐거움에 빠져보자. 철학이라는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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