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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음으로써 당신은 위험해진다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길 위의 책』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의 표지에는 도발적인 문구가 있다.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빈자리는 없다!’가 그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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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의 입장에서 보면 책만큼 위험한 녀석도 없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떠올려보자. 광기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책을 위험한 물건으로 취급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의 마오쩌둥은 어떠했는가?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의 주인공들처럼 그 시절엔 책을 읽으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서양도 다를 바 없다. 분서갱유처럼 극단적인 사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도층은 어떻게든지 피지배층이 책을 읽지 못하게 갖은 애를 썼다. 독서를 만병의 근원처럼 다루는가 하면 다독을 일종의 정신병으로까지 다뤘을 정도니 오죽했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책을 읽었는데, 특히 여자들이 그랬다. 가장으로부터 핍박받고 사회로부터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녀들은 책을 읽었다. 왜 그랬을까?

책 읽는 여자는 왜 위험하다고 불렸는가?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의 표지에는 도발적인 문구가 있다.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빈자리는 없다!’가 그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 여자들은 자신만의 것이 없었다. 여자를 소유품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들의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노출돼, 자신만의 ‘생각’은 물론이고 그것을 키워주는 ‘공간’도 없었다. 어느 것으로 보나 ‘여성 해방’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점점 ‘읽기’ 가 대중화됨으로써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여자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하게 되고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점차 자신만의 것을 소유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도발적인 문구가 쉽게 이해가 된다. 가장에게 복종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가정을 가꾸는 데 정신이 없던 여자들은 책을 읽음으로써, 남편이나 사회가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얻게 된다. 그리곤 마침내 남자들처럼 자신들도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남자들, 특히 지도층이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분서갱유라도 한번 일으키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터, 별의별 핑계를 대어 여자들의 ‘읽기’를 방해한다. 이것은 보수적인 극단주의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계몽주의자들까지 나서서, 책을 읽으면 사람이 이상해지며 특히 여자는 여자다움을 잃게 된다고 했을 정도니 여자들의 ‘읽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스운’ 논리로는 여자들의 욕구를 막을 수가 없었다. 여자들은 ‘읽기’를 넘어 ‘쓰기’의 영역까지 침범해 문학 살롱과 같은 여자들의 모임을 만들게 되는 등 마침내 사회 지도층이 염려한 일을 벌이게 된다. 오랫동안 남자들의 말에 고분고분했던 여자들이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한’ 여자,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해방된’ 여자가 되어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만큼이나 중요한 토론 그리고 생각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일종의 개괄서 같은 성격을 지녔다. 더욱이 그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세한 것들, 특히 구체적인 변화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여자들의 변화가 단지 책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여기게 하여 책과 여자의 만남을 단면적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서양문명의 기반』에서 강유원이 지적했듯이 “계몽사상의 상징적 서적을 구독했다는 사실이 곧 구독자의 혁명적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과 여자의 만남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까닭을 구체적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소설 한 권에 눈을 돌려보자. 바로 강미의 『길 위의 책』이다. 『길 위의 책』의 주인공인 여고생 필남은 복잡한 가정사로 다사다난한 집에서 심란한 마음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나마 좋은 친구들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그녀는 학교에서 은근히 왕따를 당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음으로써 속을 풀어야 하는 안쓰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필남이 어렵사리 들어간 학교 도서반 모임에서 1년 동안 성장소설을 다루기로 한 것이다. 『외딴방』, 『호밀밭의 파수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등을 읽고 토론하는 것인데, 그녀는 이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의견을 나누며 수용할 것을 수용할 줄 알고, 비판할 것을 비판할 줄 아는 적극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은 무엇을 짐작하게 하는가? 『길 위의 책』에서 언급된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필남에게도 내면의 성숙함이 쌓이고 마침내 필남이 당당한 여자가 되어가는 것을 알려준다. 즉, 필남은 중세 시대 사회 지도층이 우려하던 ‘위험한’ 여자가 된 것이다. 책뿐만 아니라 책을 갖고 함께 이야기하던 토론자리와 그것에서 얻은 생각들 덕분에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강유원은 『서양문명의 기반』에서, 책이 프랑스혁명에 끼친 영향의 근원은 “철학 서적의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독서행태에 있으며, 새로운 독서 행태는 예전의 표상을 기초하는 복종과 권위의 연계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비판적인 태도를 발전시켰고, 이것이 바로 독서가 가져다준 혁명적인 변화”라고 지적했는데 이 말은 오늘날 사람이 위험해지는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필남의 경우처럼 인간이 책을 읽음으로써 변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것을 갖게 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능력을 얻게 되며, 그것을 토대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깜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잠재력까지 키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감히 함부로 볼 수 없는 ‘위험’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책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지식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상상력을 극대화해주고, 비판적인 시선을 길러주며, 창조적인 행위를 하게 해준다. 나아가 주어진 삶을 뛰어넘을 기회를 얻게 해준다. 그러니 어찌 책 읽기를 외면할 수 있을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 책 읽는 여자들을 만나봄으로써, 『길 위의 책』에서 필남의 마음을 엿봄으로써 의욕을 불태워보자. 위험해지고 싶은 당신의 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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