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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 - 『지하철』 & 『엄마가 사라졌다』

소설은 현실을 새로운 각도로 비춰줌으로써 문제를 해결케 하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아사다 지로의 『지하철』과 수 코벳의 『엄마가 사라졌다』도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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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의 아빠들은 ‘길’을 떠나고 엄마들은 ‘집’을 지켰다. 아빠들은 돈을 벌거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자아정체성을 탐구한다는 명목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떠났다. 반면에 엄마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을 지켜야 했다. 자식들이 아빠의 부재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무한정한 모성애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으며 알뜰살뜰하게 집안일까지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알게 모르게, 그녀들은 또 하나의 집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으레 그렇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생겼다. 아빠는 나가서 돈을 버느라 정신이 없고, 엄마는 하루 종일 집안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통념이 지나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자식은 아빠를 난봉꾼, 엄마를 부엌데기 따위로 단정 지어버리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소설은 현실을 새로운 각도로 비춰줌으로써 문제를 해결케 하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아사다 지로의 『지하철』과 수 코벳의 『엄마가 사라졌다』도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두 권은 각각 아빠의 ‘길 떠나기’와 엄마의 ‘집 지키기’를 한심하게 여기는 자식들의 생각을 180도 바꿔주는 기능을 한다. 아빠를 난봉꾼으로, 엄마를 부엌데기로 생각하는 자식들의 통념을 ‘리셋’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아빠의 과거를 만나다

『지하철』에 등장하는 아빠는 전형적인 아빠의 모습이다. 자신의 뜻대로 가족을 통제하려 하고, 가정보다 사업을 먼저 생각한다. 주인공 신지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말하는 대로의 남자”이며 “이기적이고 돈에 눈이 먼 사람”인데 아빠는 지하철역에서 첫째 아들이 자살해도 끄덕하지 않는다. 되레 괘씸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런 아빠 밑에서 자란 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결혼까지 한 신지는 병석에 누워 있는 아빠를 돌보지 않는다. 아빠를 거부하는 전형적인 아들의 모습으로, 아빠와 달리 가족을 돌보려고 한다. 아빠를 피해 가출한 엄마를 보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순간에도 절대 아빠처럼 되지 않겠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남자다. 이것만 본다면 화해는커녕 평생 동안 아빠와 신지가 만날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신지는 아빠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오늘날의 아빠가 아니었다. 과거의 아빠를 만난 것이다! 신지는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는데 신지가 나간 그곳은 바로 ‘과거’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신지는 무엇을 보는가? 죽기 직전의 형을 보고 그토록 미워하던 아빠의 어린 시절을 본다.

상상할 수 있는가? 아들이 자신보다 젊은 아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을. 더군다나 볼 수 있는 과거는 한순간이 아니다. 지하철역은 아빠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먹고 살기 위해 PX 물품을 유출하던 시절, 전쟁터에 나가던 시절, 엄마가 아닌 여자를 만나던 시절 등 신지가 모르고 있던 아빠의 젊은 날을 보게 된 것이다.

신지는 무엇을 보는가? 그는 그곳에서 아빠의 삶을 본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던 아빠, 자식들에게만큼은 자신이 느꼈던 서러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아빠,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아빠를 본다. 신지의 가슴은 울컥할 수밖에 없다. 자신처럼 아빠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사람임을 알았으니까. 아빠의 길 떠나기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집에 있던 엄마, 갑자기 사라지다!

『지하철』이 자식이 부재하던 아빠를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엄마가 사라졌다』는 그 반대다. 엄마가 부재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엄마가 사라졌다』의 엄마도 전형적인 엄마다. 기자 일을 하고 있지만 특유의 모성으로 세 아들을 키우고 있으며 가정일도 척척 해내는 엄마다.

하지만 엄마는 지쳐간다. 특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첫째 아들은 도와주기는커녕 놀 궁리만 하고 둘째 아들은 TV 앞에 붙어서 꼼짝 안하고 막내아들은 징징거리기만 할 때면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어진다. 더군다나 남편이 자신의 생일도 몰라줄뿐더러 그날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기막힌 발언까지 하자 엄마는 가출하고 싶어진다.

속상한 마음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집에 간 엄마는 지난날을 떠올린다. 후회스러운 건 아니지만 지금의 삶이 결코 반가운 건 아니다. 그때 일이 터지고 만다. 엄마가 12살이 돼버린 것이다! 12살이 된 엄마는 어떨까? 엄마는 역시 엄마답게 걱정을 하게 된다. 자신이 없는 집에서 과연 세 아들과 아빠가 제대로 살 수 있을지를.

엄마의 걱정대로 집안은 난리가 난다. 엄마와 함께 소설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첫째 아들의 시선을 빌려보자면,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아들은 힘에 부치고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또한 당연히 엄마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알게 되고 엄마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들은 사라진 엄마를 향해 진심으로 외친다. “엄마, 보고 싶어요”라고.

아빠를 만나고 엄마가 사라질 때, 자식은 성장한다!

『지하철』『엄마가 사라졌다』가 말하려고 하는 것들은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뻔할 정도로 계속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아빠와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지하철』이 진지한 데 반해 『엄마가 사라졌다』는 유쾌하고 경쾌하다. 『지하철』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을 가져다준다면 『엄마가 사라졌다』는 웃음 속에서 훈훈한 감동을 피어오르게 만든다. 이렇듯 두 책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른데, 주제의식 때문인지 비슷한 질문이 발견된다. “부모님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해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자, 질문에 답을 해보자.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침묵하는 자식들이여, 지하철을 타고 엄마가 사라진 자리로 떠나보자. 이성이라는 단어를 잠시 옆에 내려두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길에 올라서자. 그러면 가슴이 뜨거워지리라. 그리고 알게 되리라, 그분들의 소중함을. 늦기 전에 새로운 각도에 눈을 돌려 보자.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기회는 줄어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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