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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발견’과 시장의 ‘재발견’ - 이명랑의 『삼오식당』, 『나의 이복형제들』

하지만 완전한 부재 상황은 아니다. ‘시장’을 배경으로 한 『삼오식당』과 『나의 이복형제들』이 있기에 쏠쏠한 재미를 맛보는 즐거움은 현재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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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서 책과 책이 부딪히는 걸 목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소설은 좀 다르다. ‘문학적’으로라는 단어가 관대하기 때문일까? 냉전시대 이데올로기를 형상화한 소설이면 모를까 인간이야기를 앞장세운 문학적인 것들 사이에서는 ‘충돌’이 흔하지 않다. 더욱이 갈수록 인색해지는 추세다. 그런 까닭에 책 읽는 즐거움은 반으로 쏙 줄어들어버렸다.

하지만 완전한 부재 상황은 아니다. ‘시장’을 배경으로 한 『삼오식당』『나의 이복형제들』이 있기에 쏠쏠한 재미를 맛보는 즐거움은 현재형이 된다. 더욱이 놀랍게도, 두 작품은 한 개인의 소설 세계 속에서 충돌하는 것이기에 재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명랑, 자본주의 시대를 비웃는 아름다운 시장을 ‘발견’하다

이명랑이라는 소설가는 영등포 시장작가로 통한다. 데뷔작부터 연달아 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발표했기도 했거니와 젊은 작가임에도 시장언어를 포착하는 남다른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작가 개인의 삶의 이력이 한몫 단단히 하는 것 같은데 덕분에 오늘날의 한국 문학은 캐리어우먼뿐만 아니라 시장판 아주머니들의 속사정까지 들을 수 있게 됐다.

시장판 아주머니들의 속사정이란 무엇인가. 먼저 『삼오식당』을 보자. 『삼오식당』은 이명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른바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덕분에 평론집에도 이명랑의 이름은 등장했으며 내용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독자들의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이유인즉 시장을 환상적으로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시장의 발견이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오늘날’을 되짚어봐야 한다. 오늘날은 과도한 자본주의 열풍으로 인해 돈을 으뜸으로 치는 시대가 됐다. 돈 때문에 인간성 버렸다는 사람 이야기가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다.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돈이 인간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이명랑은 이런 시대에, 돈 놀음이 매순간 벌어지는 시장에서 돈과 인간의 관계를 전복시켜버렸다!

자본주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법한 시장에서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을 이용해 인간성이라는 단어에 불을 지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가? 쉬운 예를 들어보자. 시장판 특유의 왁자지껄함은 소음의 대명사다. 그러나 이명랑이 발견한 시장에서 그것은 인간들이 어울리는 정다움의 마찰이 된다.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시장은 완벽하게 변신한다. 덕분에 시장이라는 곳은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 되고 자본주의를 비웃는 상징성까지 부여받게 한다.

소설 속에서 시장은 가보고 싶은 유혹적인 공간이요, 몸을 섞고 싶은 매혹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향수에 젖어 그리워하는, 고향을 꼭 빼닮은 시장처럼 말이다. 향수를 일으키는 그 시장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백 원을 놓고 아옹다옹하다가도 돈이 부족하면 돈을 안 받기도 하는 정다움이 있다. 물건을 제값 이상으로 얹어서 주는 ‘덤’이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푸근한 인심도 있다. 한마디로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풍경들이 가득한데 이명랑은 아주 적절하게 그것을 포착해낸 것이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에서 감은사를 볼 때 그냥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삼오식당』의 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냥 “시장”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아, 아, 시장”이라고 불러야 제 맛이 난다. 그만큼 『삼오식당』의 시장은 아름답고, 황홀하며,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정다움이 종갓집 잔칫상마냥 한가득 푸짐하게 담겨있다.

이명랑, 세상의 축소판에 불과한 시장을 ‘재발견’하다

『삼오식당』으로 이명랑은 시장언어의 대명사가 된다. 그만큼 『삼오식당』은 훌륭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뒤, 이명랑은 『삼오식당』에 도전하는 작품을 내놓는다. 바로 『나의 이복형제들』이다.

도전이란 무슨 뜻일까? 『삼오식당』에서 발견한 시장은 살만한 곳이다. 푸근하고 따뜻한, 이상적인 곳으로까지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나의 이복형제들』에서 그려진 시장은 냉혹한 세상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질투, 폭력, 모함이 판치는 그런 곳으로 시장을 ‘재발견’한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분위기가 변한 것일까? 시장 자체가 다른 것인가?

『나의 이복형제들』에서도 이명랑은 여전히 시장을 배경으로 설정했고 비슷해 보이는 시장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삼오식당』과 양념이 ‘오십 보 백보’다. 그런데 맛이 왜 이리 다른가? 이유는 무엇을 중심으로 놓는가에 있는데 그것을 쉽게 정리해보자면 『삼오식당』은 주류를, 『나의 이복형제들』은 비주류를 전면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그 까닭을 추측해볼 수 있다.

『나의 이복형제들』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인물부터가 유랑소녀다. 갈 곳이 없이 시장판에서 얹혀사는 처지인 시장의 ‘비주류’다. 유랑소녀가 친하게 지내는 인물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처럼 갈 곳 없어 눌러앉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변했다고는 할 수 없다. 결정적인 것은 다른데 있다. 『삼오식당』에서 한 자리 잡고 살맛 사는 시장을 만들었던 ‘주류’들의 태도, 불쌍한 이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주류는 비주류를 어떻게 대하는가? 싸늘하다. 정 같은 건 없다. 마구잡이로 이용하려고 한다. ‘없어도 그만’이라는 심보까지 보인다. 냉혹한 자본주의 시대의 한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다. 그나마 존재하는 인간애도 자기들끼리만 나눌 뿐이다.

“아, 아, 시장”이라는 말을 해볼 요량으로 책을 폈던 이는 침묵하고 말리라. 신문 사회면의 부정적인 기사를 보는 것 같은 아찔한 충격에 동일 작가가 맞는지 의심하게 될 테니까. 고작해야 “악! 이명랑!”이라는 소리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이 진짜 소설의 ‘1+1=3’ 효과!

이쯤 되면 세 가지 정도를 추측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승부의 승자는 없다는 것! 두 번째! 『삼오식당』은 보기 좋은 소설이라는 것! 세 번째! 『나의 이복형제들』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것!

첫 번째 추측은 사실이다. 소설의 영역에서 어찌 승자를 운운하는 어처구니없음을 행하겠는가. 그럼 두 번째와 세 번째 추측은? 개인취향이니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대신 말하고 싶은 것은 두 소설이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요즘 하나와 하나가 더해져 셋이 된다고 자부하는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재미를 주고 있다. 그러나 시너지효과에 관해서만큼은 이명랑의 이 작품들에 견주지 못하리라. 『삼오식당』『나의 이복형제들』, 작품 각각의 재미도 충분하지만 묘하게도 두 소설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포착했기에 즐거움은 거듭난다. 또한 서로에게 도전하는 부분이 존재하기에 함께하면 멋진 시너지효과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1+1=3’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욱이 소설의 영역에서, 그것도 한 작가의 세계 안에서 이런 충돌은 흔하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이 충돌을 외면할 수 있으랴? 가슴에 품어보자. 책 읽는 독특한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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