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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오마주』와 DVD

그런 점에서 『박찬욱의 오마주』는 흥미롭다. 국내의 저자들에 의해 출판되는 대부분의 책들은 '감상문 수준'이거나 문학 비평의 차원에서 거론되는 수준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책의 분석틀은 영화의 시각적 요소에 대한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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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DVD 찾기 ?

 '영화 책'을 본다는 것은 그냥 책을 읽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의 서적들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독자 스스로 내용을 이해하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는데 비해서 '영화 책'을 본다는 것은 1차적 대상물인 '영화'에 대한 '주석'을 읽는 것과 별반 다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것은 '주석을 읽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특히 그 글의 종류가 단순한 영화 소개를 목적으로 한 광고 문구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박찬욱의 책 『박찬욱의 오마주』 역시 마찬가지다. 『박찬욱의 오마주』는  한 잡지에 연재되었던 박찬욱 감독(당시는 평론가에 더 가까웠던...)의 글을 모아 94년에 출판되었다가 상당 기간 절판되었던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 드롬』의 개정증보판이다. 이 책 속에는 약 120여 편의 영화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으며 저자는 영화에 대해 평을 하기 보다 '분석' 하기에 힘을 쓰고 있다. 그건 저자가 서문에 밝히고 있듯이 '누구나 알 만한 나쁜 면을 말하기보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좋은 면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찬욱의 오마주』는 흥미롭다. 국내의 저자들에 의해 출판되는 대부분의  책들은 '감상문 수준'이거나  문학 비평의 차원에서 거론되는 수준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책의 분석틀은 영화의 시각적 요소에 대한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아쉬운 점은 책 외에 다른 부분에 있다. '비디오'가 영화를 보는 일반적인 방식이던 90년대에 출판된 책답게 이 책 속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시중의 비디오 가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른바 '숨은 비디오'들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이 책 속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을 일반적인 경로로 만나기는 오히려 요원해졌다. 그건 당연하게도 한 때 3만 개를 넘어서던 '비디오 가게'가 3분의 1인 9천여개 정도로 줄어들고 협소한 국내의 DVD 시장이 최신작과 흥행작 위주로만 출시되는 '부가판권 시장의 전멸' 현실에서 기인한다. 결국 이 책 속에 언급된 상당수의 영화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열화된 화질'의 낡은 비디오를 찾아내거나 해외의 DVD 사이트를 뒤지거나(난 영어를 못한다 !!) 어둠의 경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이 글에서는 『박찬욱의 오마주』에 언급된 영화들 중에서, 그래도 국내판으로 만날 수 있는 세 편의 DVD를 소개하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책을 읽었거나 읽을 예정이라면 해당 페이지를 찾아 읽어보면서 영화를 이해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굳이 책이 없더라도 '숨겨진 DVD'를 찾아보는 마음으로 DVD를 골라 보아도 좋을 듯. 선정 기준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DVD 중에서 서로 이질적인 영화들인 동시에 볼 만한 서플먼트들이 들어있는 작품들로 필자 마음대로(!) 선정했다.

■ 소오강호

<FILM> 국내에 출시된 <소오강호> DVD는 '필름 보관'에 무신경한 수준이 국내를 능가한다는 홍콩 영화로서는 비교적 믿음직한 '홍콩 컨템퍼러리 콜렉션'의 한 편으로 출시되었다. 호금전의 연출로 되어 있으나 서극과의 마찰로, 허안화를 거쳐 서극이 완성한 <소오강호>는 국내에서는 <동방불패>의 전편 정도로 인식되지만 홍콩 영화의 '꿈의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다. 원작 자체가 무협 소설의 최고봉인 '신필' 김용의 양대 걸작 중 하나이며, 호금전은 <방랑의 결투><협녀>, <용문객잔> 등으로 무협 영화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 놓은 거장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제작자는 이미 80년대 초반에 <촉산>으로 현대적인 SFX를 홍콩 무협 영화에 도입했던 서극. 무술 안무는 <천녀유혼>의 연출자이자 <영웅본색>의 무술 지도를 맡았던 정소동이었으니 그 기대감은 대단했다. 캐스트도 화려해서 가수이자 홍콩 최대의 흥행작인 <최가박당> 시리즈의 허관걸이 주인공 영호충 역을, 장학우가 임평지역을 맡았으며 엽동, 장민, 원결형 등 원작의 캐릭터 이미지에 맞는 배우들이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오강호>의 흥행 성적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선악의 개념을 넘어서는 도가 사상적인 주제는 숨가쁜 액션씬의 연속 속에서도 영화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었고 이는 화려한 액션과 코미디를 선호했던 대중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 하지만 <소오강호>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SFX 무협 영화의 유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현재의 관점에서는 속편인<동방불패>보다 더욱 많은 여운을 주는 작품인데, 그것은 <소오강호>가 한층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DVD> 국내판 DVD는 홍콩판 DVD와 동일한 소스로 새롭게 리마스터링된 버전으로, 비교적 깔끔한 화면을 보여주지만, '산광(散光) 필터'의 활용으로 인해 뿌옇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환타지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본편 영화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 감도 높은 필름의 사용으로, 필름 입자가 거칠게 드러나는 것도 원본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광동어 DTS와 D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검과 검의 마찰음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지만, 당연히 최신작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한다. 특히 영호충 역을 맡은 허관걸의 목소리는 우리의 '영웅'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가벼운(=촐싹되는 ^^) 느낌인데, 이는 국내판 영화나 비디오가 대부분 '묵직한' 북경어 트랙으로 공개되었기 때문

 

<Supplement> 최신작이 아니고서는 서플먼트에 인색한 다른 홍콩 영화들의 DVD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서플먼트도 풍성한 편인데, <소오강호>, <황비홍> 등의 음악을 맡았던 작곡자 몇 배우인 황점 선생과 임평지 역을 연기한 장학우의 인터뷰들이 수록되어 있다. 두 인터뷰를 합해 봐야 20여분 정도의  짧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제작 당시의 상황을 들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그 외 (매우 짧기는 하지만) 삭제 장면 2개와 예고편, 포토 갤러리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아메리카의 밤 (= 사랑의 묵시록)

 <FILM> 일단 프랑스와 트뤼포의 영화는 재미 있다.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에 충실한 후기작은 말할 것도 없이 <줄과 짐>, <피아니스트를 쏴라>같은 트뤼포의 초창기 작품들도 고다르나 샤브롤 등 그의 누벨 바그 동료들에 비하면 무척 이해하기 쉽다. 그건 프랑스와 트뤼포가 그 누구보다도 선배들의 고전 영화에 대한 경외감을 지녔던 사람이며 '영화'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의 밤>은 그런 트뤼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는 영화다. 트뤼포 자신이 영화 감독 페랑으로 분하고 재클린 비셋, 장 피에르 오몽 그리고 <400번의 구타>부터 트뤼포의 페르소나였던 장 피에르 레오 등이 배우로 등장해 영화 촬영의 과정을 담고 있는 <아메라키의 밤>은 '영화(=예술)가 인생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트뤼포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작품이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이 '누벨 바그'의 것이 아닌 '스튜디오 촬영'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 이는 고전기 영화에 대한 트뤼포의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는 동시에 '누벨 바그'로 변화하는 영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트뤼포는 스태프와 배우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감독 등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 놓고 온통 아이러니와 충동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삶'과 통제가 가능한 '영화'를 대비시킨다. <아메리카의 밤>은 책 속에서 <사랑의 묵시록>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건 국내 비디오 출시 제목이 <사랑의 묵시록>이라는 다소 뜬금 없는 제목이라고 출시되어 있기 때문. 한편 DVD의 제목은 <아메리카의 밤>이면서 서플먼트에서는 <Day for Night>라는 제목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이는 불어 제목 '아메리카의 밤'이 가리키는 어두운 필터를 끼고 밤 장면을 낮에 촬영한 초기 헐리우드의 촬영 방식을 영어로 'Day for Night'라고 하기 때문이다.

<DVD> <아메리카의 밤> DVD는 따뜻한 색채 표현이 잘 살아 있는 편이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북미에서의 흥행 성적도 좋았던 작품답게 메이저 회사에서 출시되었으며, 약간의 필름 스크래치와 지글거림이 있기는 하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의 복원력을 보여준다. 음향은 프랑스어와 영어 모노 트랙만을 지원하는데, 드라마성의 잔잔한 음향을 지닌 작품으로 무리 없는 깔끔한 소리를 들려준다.

<Supplement> 서플먼트는 풍성한 편이다. 당시 주연 배우였던 재클린 비셋(사진 좌)의 인터뷰와 '스크립터' 역을 연기한 나탈리 베이(사진 우)를 비롯한 영화에 참여했던 프랑스 배우들과 스탭들의 인터뷰 그리고 트뤼포에 관한 책을 콜럼비아 대학 아네트 인스도프의 해설로 진행되는 <아메리카의 밤>에 대한 17분 짜리 해설, 브라이언 드 팔마를 비롯한 미국인들의 트뤼포에 대한 회고, 영화 개봉 당시에 만들어진 홍보용 필름인 <A View From the Inside>, 미국에서 상을 받은 후 녹화된 트뤼포의 짧은 인터뷰 등이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다.

■ 사랑은 비를 타고

<FILM> 뮤지컬 영화는 우리 나라에서 그리 환영받는 장르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성 영화의 태동기에 등장해 대공황기인 30년대에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4,50년대의 대규모 스튜디오 시절에 만개한 이 장르의 전성기는 우리에게는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치던 시기였던 것. 그럼에도 <사랑은 비를 타고>는 영화를 다루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면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본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진 켈리가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비오는 거리를 춤추는 장면은 이명세의 <남자는 괴로워>에서도 인용되었으며 수많은 영화 관련 다큐멘터리에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사의 걸작을 정작 본 사람은 매우 드물다. 너무나 낙관적이고 너무나 행복한 이 영화는 그 낙천성 때문에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사의 베스트 10에 꼭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MGM의 전성기를 이끈 작사가 출신의 제작자 아서 프리드의 오래된 뮤지컬 넘버들을 '재활용'한 <사랑은 비를 타고>는 놀랍게도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전환기를 훌륭하게 뮤지컬 장르에 접합한 '영화에 관한 영화'이며 최고 수준의 안무와 음악 그리고 완벽하게 조율된 연출이 수십년의 세월에도 전혀 빛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DVD> 두 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DVD는 완벽한 리마스터링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도저히 51년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잡티 하나 없는 영상은 테크니컬러의 호사스러움이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비디오로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디지털 복원으로 원본의 색감을 제대로 표현한 이 SE 버전의 DVD를 보면서 새로운 작품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원본의 모노 사운드의 요지를 잘 유지하면서 적절한 정도의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있다. 

<Supplement> 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답게, 서플먼트 역시 '필견'의 목록으로 가득하다. 데비 레이놀즈와 도날드 오코너를 비롯한 영화와 관련된 생존 인사들의 음성 해설은 제외하더라도 두 번째 디스크에 담긴 80분 짜리 장편 다큐멘터리 <Musicals Great Musicals>는 꼭 보고 넘어갈 만하다. 이 작품을 비롯해 <파리의 아메리카인>, <지지>, <쇼 보트>, <하비 걸> 등 주옥같은 MGM의 뮤지컬을 대부분 제작했던 아서 프리드의 삶과 영화들을 다루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에 삽입되어 있는 뮤지컬 넘버들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다. 그 외에도 중편 길이의 제작 다큐멘터리, 이 영화 속에 사용된 뮤지컬 넘버들이 본래 사용된 영화들의 클립 등 중요한 서플먼트만으로도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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