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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작가의 새로운 소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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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많이 팔리고 널리 읽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많이 팔렸다고 다 읽히는 건 아니다. 책을 사는 것과 구입한 책을 읽는 일이 별개일 수 있어서다.

어떤 책이 많이 팔리고 널리 읽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많이 팔렸다고 다 읽히는 건 아니다. 책을 사는 것과 구입한 책을 읽는 일이 별개일 수 있어서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2004)는 잘 팔리고 많이 읽히는 책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소리 소문 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어판을 펴낸 출판사는 이 책의 마케팅 포인트로 세 가지를 내세웠다. 제34회 부커상 수상작,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그리고 영화화가 진행 중인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 세 요소는 우리 독자들이 이 책을 구입하여 읽는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도 약발이 안 먹히는 판국에 영어권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으로 우리 독자들을 유인하는 건 무리다. 외국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시사할 따름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영화가 개봉되어야 독자의 관심을 끈다.

『파이 이야기』가 소리 소문 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소설 자체의 매력 덕분이다. 흥미진진한 내용의 『파이 이야기』는 단숨에 읽힌다. 아주 재미있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의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 이 소설의 형식에 먼저 주목하고 싶다.

모두 100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과거와 현재―작중인물인 화자와 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를 하는 작가의 시점―가 교차하고 있으나, 프롤로그라기보다는 작품의 전사(前史, prehistory)라고 할 수 있다. 2부와 3부는 본론과 에필로그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2부와 3부의 몇 장은 독자를 안심시키는 1부의 마지막 구절이 반어적 표현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태평양에서의 기나긴 표류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90~92장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90장은 실어증이 환각상태의 대화로 표현되는 듯하다. 한 페이지에 불과한 91장은 “끔찍한 상태였다.”

거대한 해초 덩어리 섬의 상륙기라고 할 수 있는 92장은 그 내용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모호하고 흐릿하다. 마치 꿈결이 아닌가 싶다. 식충 섬에 서식하는 “독특한 식물”은 소설의 기괴함을 더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그로테스크함의 절정은 아직 남아 있다.

1부에선 주인공의 이름과 종교가 눈길을 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도 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피신 몰리토’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수영장 이름을 딴 것이다. 이름과 관련한 또 하나의 특이사항은 사티시 쿠마르가 매우 흔한 이름이라는 점이다. 파이 파텔이라고도 하는 소년은 세 가지 종교를 한꺼번에 믿는다.

“힌두교도들도 사랑의 용량에 있어서는 대머리 기독교도들과 같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모든 사물에서 신을 보는 방식이 수염 난 힌두교도와 같고, 기독교도들이 신에게 헌신하는 마음은 모자를 쓴 이슬람교도와 같은 것 아니겠느냐고.”

인도의 폰디체리에서 사설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 파텔네 가족은 기르던 동물들을 동반하고 캐나다 이민 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들을 태운 파나마 선적의 일본 화물선 ‘침춤 호’는 필리핀 마닐라를 떠나 태평양으로 접어든지 나흘 째 되던 날, 미드웨이 제도로 가던 중 침몰하고 만다.

“책벌레에 신앙심 깊던 열여섯 살 순진한 소년” 파이 마텔은 태평양에 가라앉은 화물선에 탔던 유일한 생존자다. 소년의 극적인 생환은 소년이 세 종교를 섬긴 덕분일까?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 같진 않다.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고, 깊은 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다.”

아무튼 에필로그에서 화물선 실종사고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소년을 만나러온 일본 운수성 해양부 관리들은 소년의 생환과정을 못 믿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은 227일간이나 버텨 이 분야의 신기록을 세웠다.

“로버트슨 일가는 바다에서 38일간 버텼다. 선상 반란으로 유명한 ‘바운티 호’의 블라이 선장과 선원들은 47일간 버텼다. 스티븐 캘러한은 76일간 살아남았다. 허먼 멜빌에게 영감을 받아 포경선 에섹스 호의 침몰기를 쓴 오웬 체이스는 두 명의 동료와 83일간 버텼다. 중간에 무시무시한 섬에서 일주일간 머물긴 했지만, 베일리 일가는 118일간 버텼다. 1950년대에 ‘분’이라는 한국 상선의 선원이 173일간 태평양에서 버티다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소년이 극한상황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 “바쁘게 지냈다. 그게 생존의 열쇠였다. 구명보트에서, 또 뗏목에서, 언제나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구명보트에서의 삶은 생활이라고 할 게 없다. 그것은 몇 개 되지 않는 말을 가지고 하는 체스 게임의 마지막 판과 같다. 구성 요소는 더할 수 없이 간단하고, 판돈도 크지 않다. 생활은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정신적으로 죽어간다. 살아나고 싶다면 적응해야 한다.”

게다가 조난자가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고, “우울하고 지친, 상반된 것들 속에 붙잡힌 것과 같다.” 그리고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그런데 소년의 “가장 큰 바람은―구조보다도 큰 바람은―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아쉽게도 구명보트에는 성서가 없었다. 나는 크리슈나의 말이라는 은혜 없이 부서진 전차에 탄 서글픈 아르주나 꼴이었다. 처음 캐나다 호텔 방에서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성서를 봤을 때, 난 울음을 터뜨렸다.”

일본 운수성 관리들이 소년을 믿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소년과 함께 표류한 대상 때문이다. 소년은 벵골 산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구명보트로 태평양을 건넜다.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소년은 자신과 함께 한 호랑이에게 진한 애정을 느낀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끝까지 못 믿는 일본 관리들에게 소년이 들려준 “말이 되는 이야기”, 곧 다른 버전의 간추린 생환과정은 엽기적이다. 작가는 왜 이렇듯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며 엽기적인 장치들을 만들어 놨을까? 소설은 동화가 아니라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억제하기 위해?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에? 속도에 대한 성찰을 옮겨 적는 것으로 『파이 이야기』에 대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화물선에서는, 태평양이 지나가는 물고기 떼 외에 다른 생명이 살지 않는 물의 황무지라고 생각했다. 화물선이 물고기 떼를 보지 못할 만큼 빨리 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후 알았다. (중략) 야생동물을 보고 싶으면 걸어야 한다. 조용히 걸어서 숲을 탐사해야 한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태평양에 사는 풍요로운 바다생물을 구경하려면, 걷는 속도로 천천히 노닐어야 한다.”

얀 마텔의 또 다른 장편소설 『셀프』(황보석 옮김, 작가정신, 2006)에도 특이한 형식이 보인다. 두 장으로 구성됐는데 1장은 400쪽이 넘지만 2장은 단 1쪽에 불과하다. 그리고 원문(영어가 아닌 외국어)과 번역문(영어)을 나란히 맞댄 대목이 적잖다. 이 소설에 관한 내용은 ‘역자 후기’의 신세를 지겠다.

번역자는 『셀프』를 “진지한 독자가 아니라면 읽지 말아야 할 소설”로 간주한다. “첫머리에서부터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서술로 놀라우리만큼 재미있게 전개되어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기발한 문체와 구성, 그리고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통찰로 독자들을 휘어잡는 이 작품은, 소설의 주된 목적이 재미와 감동이라면, 그 목적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또 “한마디로, 『셀프』는 사회란 무엇이며 무엇이 누구를 현재의 그로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들을 통해 한 인간의 여정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버리는 그 엄청난 비극의 힘을 다룬 이 소설에서 비극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의 성을 바꾸고, 따라서 세상에 대한 인식과 상호작용까지도 바꾼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더 이상 잘 표현될 수가 없을 만큼 절절히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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