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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와 범죄의 절묘한 엮음, 장기 만화 - 『시온의 왕』

소녀의 이름은 시온. 7년 전 부모가 살해되고, 옆집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부모가 죽던 날, 시온은 무엇인가를 보았고 그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양아버지의 직업은 프로 장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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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름은 시온. 7년 전 부모가 살해되고, 옆집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부모가 죽던 날, 시온은 무엇인가를 보았고 그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양아버지의 직업은 프로 장기기사. 이미 4살 때부터 장기에 재능을 보였던 시온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프로에 입문하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운명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살해당했을 때, 시온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은 장기의 왕이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꿈속에서는 그 날의 기억이 나타난다.

카토리 마사루가 쓰고, 안도 지로가 그린 『시온의 왕』은 장기 만화다. 하지만 『시온의 왕』을 보기 위해서 굳이 일본 장기의 규칙을 암기할 필요는 없다. 에피소드 중간 중간에 나오는 간단한 설명 정도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두는 장기나 체스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왕을 잡기 위한 게임이라는 것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시온의 왕』은 장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작가가 그린 만화이지만, 장기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간다. 적어도 장기에 대해서는. 도입부가 시온의 부모가 살해된 사건에서 시작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온의 왕』의 스토리 전체에는 뭔가 수수께끼가 주어져 있다. 장기만화이면서 동시에 추리물이기도 한 것이다.

『시온의 왕』은 장기 주위로 더욱 많은 사건을 배치시킨다. 시온의 부모가 살해된 사건을 여전히 추적하는 형사들이 있고, 뭔가 시온의 과거와 엮여 있을 것만 같은 하니 명인 형제가 있다. 스토킹을 하거나 협박편지를 보내는, 끊임없이 시온을 노리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도 있다. 아유미와 시온의 관계도 단지 승부가 아니라 애정이 싹틀 것 같고,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어떤 가족보다도 이상적인 시온과 양부모의 관계도 흥미롭다. 절묘하게 짜인 구성은 성공적이다. 일본 장기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시온의 왕』을 즐겁게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승부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대결’이 주를 이루면서, 의미심장한 수수께끼와 사건들이 종횡으로 엮어지면서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그리고 미소녀 장기기사 3인방의 매력이 무엇보다 압도적이다. 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시온과 같은 나이의 아유미. 하지만 아유미는 소녀가 아니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병에 걸려 입원한 어머니 때문에 아유미는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여장을 하고 여성 기사들끼리 붙는 대회에서 당장의 수익을 올린다. 프로 승급이 걸린 시온과의 첫 대결에서 아유미는 승리하여 프로가 된다. 사오리는 부잣집 딸이다. 사오리는 시온이나 아유미와는 달리 상처가 없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녀에게 재능은 있지만 절박함이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시온은 순수하고 착하지만, 엄청난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시온도 잘 모른다.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 왜 손바닥에 왕을 쥐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시온에게 주어진 것은 장기뿐이다. 그녀는 이기고 싶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운명이기 때문에. 세 소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두 소녀와 하나의 소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증과 질투, 연민의 소용돌이가 독자를 빨아들인다.

카토리 마사루가 만들어낸 캐릭터는 아주 풍성하다. 시온은 순수하다. 그런데 승부에서는 강하다. 시온의 기풍은 상대를 끌어들여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숨통을 끊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약점이지만, 시온은 어느 순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다. 상대를 누르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온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양아버지인 야스오카에게 배웠을 것이다. 야스오카는 천재가 아니었다. 연령제한을 앞두고 4단이 되었고, 누구나 전성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40살이 되어서야 명인전 도전자가 되었다. 야스오카는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답보상태에서도, 지독한 절망에서도 야스오카는 절대로 도망치지 않았다. 아마도 시온의 승부근성은 양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것이다. 피가 아니라, 정신으로.

시온과 사오리는 각각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장기에 승부를 건다. 이미 절박한 상태인 아유미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반대로 아유미가 승부의 즐거움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아유미의 스승은 ‘아무리 강해져도 어떤 기사를 만나도 그래도 돈을 위해 장기를 둬라. 그걸 잊는 순간 불행해지는 건 너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돈을 위해 여장을 하면서까지 장기를 두겠다고 결심한 아유미에게, 즐거움을 깨닫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승부를 즐기는 순간, 아유미는 과거와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아유미는 그렇게 될 것이다. 시온과, 사오리와 승부를 즐기게 되고, 그리고 결국은 불행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시온은 어떻게 될까? 시온은 승부를 즐기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더욱 더 펼쳐나갈 것이다. 하지만 시온에게는 봉인된 과거가 있다. 그 과거는 시온을 어떤 기사, 어떤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그것이 너무나 궁금하다. 『시온의 왕』은 단지 승부의 세계만을 그린 만화가 아니다. 아주 절묘하게 승부와 범죄 이야기를 엮어 놓은, 결이 풍부하고 섬세한 만화다.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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