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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시각에서 고양이의 생활을 그린 걸작 - 『묘한 고양이 쿠로』

어렸을 때 본 동화에서는, 고양이가 꽤 얄미운 동물로 묘사되어 있었다. 개가 멍멍 짖느라 놓친 귀한 구슬을 냉큼 집어다 사람에게 바치는, 약삭빠른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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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본 동화에서는, 고양이가 꽤 얄미운 동물로 묘사되어 있었다. 개가 멍멍 짖느라 놓친 귀한 구슬을 냉큼 집어다 사람에게 바치는, 약삭빠른 고양이. 믿거나 말거나 그런 이유로 사람의 귀여움을 받아, 고양이는 마루 위로 올라가 주인 곁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한다. 원한 때문에 요괴로 변한 고양이를 백구가 퇴치한다는 내용의 만화도 있었다. 어느 것이든 우리의 옛 이야기에 묘사되는 고양이는 약간 요사스러운 동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런 동화나 만화를 보다 보면, 고양이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이 주입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직접 키워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자신의 동거인으로 고양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면. 고양이는 의외로 은원을 정확하게 지키는 동물이다. 고양이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스기사쿠의 『묘한 고양이 쿠로』에도 나오듯이, 명목상 그들의 주인인 ‘수염’이 병에 걸려 앓아눕자 쿠로와 칭코는 최선을 다해 수염을 돌본다. 평소에는 주인이 아니라 그저 밥과 잠자리를 주는 동거인 내지 하인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의리는 분명하게 지킨다. 물론 개의 의리와는 조금 다르다. 개는 충성을 전제로 한 의리이지만, 고양이는 일종의 계약이다. 당신이 준다면, 나도 주겠다. 너무 냉정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계약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어느 새 고양이는 스스로를 무장해제해 버린다.

세상에는 흔히 개파와 고양이파가 있다고 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의 냉정함과 약삭빠름이 싫다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개의 무조건적인 충성이 비굴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모든 생각이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도 고양이도 좋다. 굳이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고양이겠지만, 그래도 개를 버리는 건 너무나도 안타깝다. 개의 순수한 눈망울을 응시해본 적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개는 순수하고, 강직하다. 그것도 너무 좋다. 다만 나는 고양이의 애티튜드를 더 좋아할 뿐이다.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받아들인다. 개는 주인의 애완동물이 되지만, 고양이는 공동의 영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거인이 된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 싶다면, 『묘한 고양이 쿠로』라는 만화를 꼭 봐야 한다.

『묘한 고양이 쿠로』는 고양이의 시각에서 고양이의 생활을 그린 만화다. 걸작 만화인 『What's Michael?』은 사람이 본 고양이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되는지 등등을 『What's Michael?』은 절묘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고양이를 의인화시키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그것 역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고양이들이다. 반면 『묘한 고양이 쿠로』는 쿠로라는 고양이의 1인칭으로 진행된다. 엄마 젖을 떼기도 전에 버려지고, 여동생 칭코와 함께 수염의 집에서 살게 된 쿠로는 고양이 세계의 모든 것을 하나씩 배워간다. 고양이 세계의 법칙과 함께 인간 세계의 이상한 법칙까지도.

쿠로는 평범한 고양이다. 강하지도 않고, 머리가 좋지도 않다. 동네의 고양이 보스인 마사루 형님이 지나가면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심지어 동생인 칭코에게도 쩔쩔 맨다. 암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딱히 구애할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쿠로에게는 그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다. 어떤 고양이보다도 뛰어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면서 살아가는 쿠로는 한 마리의 고양이로서 훌륭하게 성장한다. 사람의 눈으로 발견하는 고양이의 귀여움이 아니라 고양이 세계의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통해 고양이의 개성적인 애티튜드를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묘한 고양이 쿠로』에는 존재한다.

『묘한 고양이 쿠로』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집이 있으면서도 밖에 나가 생활하는 일이 잦은 고양이들은 흔히 야생 고양이들과 어울린다. 야생 고양이들도 원래는 집고양이였던 경우가 많다. 집 밖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철저한 위계질서가 있고, 자연의 법칙이 그대로 관철된다. 집고양이들은 주인의 안락한 보호를 받으면서도 야생 고양이들의 자유로운 세계를 동경한다. 철저한 약육강식, 생존의 규율이 존재하는 야생의 세계를 동경한다. 애초에 고양이라는 동물 자체가 인간과 함께 살면서도 결코 야생의 성질을 포기하지 않은 기이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오래 전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중에서 마지막을 함께 한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는 몇 시간, 나중에는 며칠씩 집을 비우다가는 마침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마 어딘가에서 야생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은 잊었지만, 박흥용의 단편만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호기심 강한 고양이라는 녀석은 안락한 일상 따위에 매몰되는 존재가 아니다. 안락함을 누리면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동경하며 바라보다가 결국 대부분은 떠나간다. 그런 고양이들을 잡아야 할 이유는, 명분은 없다. 언젠가 돌아오면 따뜻하게 받아주기는 하겠지만.

『묘한 고양이 쿠로』에는 야생 고양이였다가 사람의 손에 키워지면서 거세수술을 당한 고양이 이야기가 나온다. 주변을 보면 성대 수술을 받게 해 짖어도 소리가 나지 않게 만든 개들도 있다. 어느 것이든 인간의 관점에서 ‘편리함’을 추구한 결과일 것이다. 새끼를 도저히 키울 형편이 안 된다, 발정기 때 울부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고양이에게 거세수술을 시키는 것은 도의가 아닌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고양이라는 동물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고양이의 무엇은 좋은데 무엇은 싫어, 라고 생각한다면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 낫다. 그건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어떤 부분만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불편한 것은 모조리 제거해버린 동물 로봇까지 나오는 세상이지만, 그건 단지 인간의 편의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어리광을 받아줄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는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위한 동물이 아니라 동물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묘한 고양이 쿠로』의 고양이들처럼 그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사람과는 조금 다르지만, 하나의 생명체로서 동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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