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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

7,80년대 한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었다. 우선 『삼국지』. 어릴 때에는 아동용으로 각색된 『삼국지』를 읽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완역본 『삼국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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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한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었다. 우선 『삼국지』. 어릴 때에는 아동용으로 각색된 『삼국지』를 읽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완역본 『삼국지』를 읽었다. 조금 색다른 재미를 원한다면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도 끼워서 봤다. 고우영의 『삼국지』는 한∙중∙일 어떤 작가의 『삼국지』 해석에 못지않은 독창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작품이다. 『삼국지』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했던 이유는 『삼국지』가 동양 사상과 인물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단지 드라마틱한 역사적 순간을 보여주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학, 경영학의 교과서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보아야 하는 『삼국지』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 다음 순서는 『대망』이었다. 하지만 『대망』이 공식적으로 권해지는 책은 아니었다. 아마도 일본 책을 공개적으로 칭찬할 수 없었던 분위기 탓일 것이다. 주변에 『대망』을 읽은 어른들이 꽤 많았고 대부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늘어놓았지만, 공식적으로 『대망』을 옹호하는 글을 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패권 장악을 그린 『대망』에 관한 이야기는 수없이 떠돌았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차츰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망』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세 영웅의 성격을 말해주는 에피소드였다. “새장 안의 새를 어떻게 울게 할 것인가?”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를 죽여버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달래고 꼬드겨서 울게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오다 노부나가는 암살을 당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를 쥐었지만 대를 잇는 것은 실패한다. 결국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기다렸던 도쿠가와가 천하를 제패하게 된다. 그 극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대망』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로 『대망』을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도 이미 국내에는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제목으로 각각 번역되어 있지만, 만화로 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독특한 재미가 있다. 우선 만화를 그린 작가가 요코야마 미쯔테루다. 『철인 28호』와 『바벨 2세』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요코야마 미쯔테루는 일찍이 역사물에도 관심을 보여 『삼국지』와 『수호지』는 물론 『항우와 유방』, 『석가모니』, 『칭기즈칸』 등 수많은 역사 만화를 발표했다. 어린 시절 『바벨 2세』를 본 적이 있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그림체와 인물이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실 『대망』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즐기고 싶다면 원작을 읽는 것이 낫다. 오리지널과 각색작품을 비교하자면 일반적으로 오리지널이 낫다. 영화보다는 원작소설이 낫고, 영화나 드라마를 각색한 소설이나 만화보다는 원작이 낫다. 아주 가끔 각색물이 원작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며 독특한 성취를 이루어내는 경우는 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어떤 점에서는 원작보다 못하다. 5만 매에 이르는 방대한 원작소설을 완전히 만화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략하게 뼈대가 되는 줄거리를 전달하면서 요코야마 미쯔테루의 관점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원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에피소드도 듬성듬성하다. 원작의 충실한 묘사와 치밀한 심리의 변화를 보고 싶다면, 만화판은 애초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그러나 역자의 말처럼 간략하게 『대망』의 핵심을 맛보고 싶다면, 당시의 풍물을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직접 보고 싶다면 만화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꽤 훌륭하다. 그림과 연출 스타일이 워낙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만화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나기 전 시점에서 시작한다. 16세기, 일본의 정세는 그야말로 혼란기였다.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진 이마카와 요시모토가 교토에 올라가 정권을 장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오다 노부히데,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켄신 등이 서로 견제하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마쓰다이라 히로타다는 오카자키 성의 성주였지만,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남자로서의 야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지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굴욕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전국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런 마쓰다이라의 자식으로 태어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0살이 되기도 전에 인질로 보내져 오다 가문에서 2년, 이마카와 가문에서 3년을 보낸다. 도쿠가와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자신의 오카자키성마저 빼앗기고, 충직한 가신들을 이마카와 군의 선봉으로 내세워 개죽음을 시키면서도, 언젠가는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은인자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혜안과 카리스마 그리고 단호함으로 주변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오다 노부나가나 평민 출신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달리 도쿠가와에게는 인내와 신중함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로지 힘이 모든 것을 결정했던 전국시대에 단지 살아남는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갔던 인물들의 역사를 만나게 해 준다.

『대망』이 탁월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역사란 것 자체가 언제나 현재적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대망』의 진정한 영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지만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탁월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로지 실리만을 챙기는 교활하고 음흉한 노인으로 묘사된다. 가이온지 초고로의 『기습』『대망』의 도요토미 해석에 반대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일본의 전국시대 역사이지만 결국 사실에 근거한 하나의 픽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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