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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닥터 진』, 막부시대로 날아가 생명을 구하는 사나이

타임 슬립으로 과거의 세계에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어진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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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으로 과거의 세계에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어진 설정이다. 마크 트웨인이 1889년에 발표한 『아더왕과 양키』는 당시의 미국인이 아더왕의 시대로 타임 슬립하여 동고동락한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것은, 마법사 멀린이 일종의 사기꾼으로 그려진다는 것. 중학교 시절에 본 『엑스칼리버』의 카리스마적인 마법사 멀린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었다. 그러나 과학과 이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근대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마크 트웨인이 『아더왕과 양키』를 쓴 이유는 중세의 무지를 비판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비이성과 광기가 지배하던 근대 이전의 시대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더왕과 양키』 이후에도 수많은 타임 슬립 소설과 영화가 나왔다. 심지어 공포영화인 <이블 데드> 시리즈의 3편도, 중세로 날아간 주인공이 총과 전기톱으로 악마와 싸우는 이야기였다. 현대인이 과거로 돌아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갔는가다. 총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마법사 혹은 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이, 그냥 회사를 다녀오던 상태로 과거에 간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학이나 실용적인 과학, 전투기술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현대인으로서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몸집은 크지만 유약하고, 온갖 병균에도 무기력하지 않을까.

만약 과거로 간 현대인이 어떤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당연히 살아남는 것만이 아니라, 커다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카와구치 카이지의 『지팡구』가 전형적이다. 2차 대전의 막바지로 타임슬립해간 구축함 미라이호는 당대의 군함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의 엄청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미라이호가 적극적으로 전쟁에 뛰어든다면, 모든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미라이호의 승무원들은, 처음에는 바라만 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들을, 부상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죽음을 알고 있는 민간인 희생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개입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지 ‘인명’의 희생을 줄이겠다는 것으로만 시작한다. 역사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고, 개인의 목숨만을 조금씩 다르게 하겠다며. 하지만 연이어 고뇌하게 된다. 그들이 과거의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한 어떤 행동은, 결국 모든 미래의 역사를 바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은 역사에 개입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이 알고 있는 가장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고뇌에 찬 결정도 그러나, 결국은 늪에 빠져든다. 그들이 과연 신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이 바꾼 미래가 희망이라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무라카미 모토카가 그린 『타임 슬립 닥터 진』의 미나가타 진은, 그런 점에서는 행복할 수도 있다. 적어도 미나카타는 사람들을 살리기만 하면 되니까. 의사라는 직업에 맞게, 오로지 살리기만 하면 되니까. 두부열상환자의 수술을 집도한 내과의사 미나가타는 어딘가에서 ‘떨어뜨리지 마’ ‘원래대로 돌려놔’ 라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그 후 실수로 계단에서 구르게 된 미나가타는 1862년의 세계로 타임 슬립을 한다. 과거로 간 미나카타는 하급무사인 다치바나 교타로의 목숨을 구해주고, 함께 살게 된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원인도 알지 못한 채 130여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미나가타이지만, 그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미나가타 역시 미라이호의 승무원들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 내가 사람을 구함으로써, 조금 역사가 바뀌었다, 라고.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하던 미나가타는, 결국 한 가지의 신념을 갖게 된다. “역사를 바꾸겠지만, 쓰러져가는 생명을 못 본척할 순 없어. 난 의사로서 살아가겠다. 그게 날 이 시대로 보낸 신의 의지라고 믿고 싶다.”

‘지금은 가벼운 병이나 상처만으로도 생명을 잃었던 시대를 우리 선조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었을까. 그 현장에 현대 의사가 있었을 때 어떤 치료가 가능할까’라는 작가의 말처럼 『타임 슬립 닥터 진』은 과거로 간 미나가타 진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구하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약간의 응급 도구를 가져가긴 했지만, 미나카타는 대부분을 그 시대의 도구에 의존해야만 한다. 미나카타가 과거에서 행하는 첫 번째 수술은, 급성 경막외 혈종을 치료하는 것이다. 두개골을 열고, 그 안의 혈종을 제거하는 어려운 수술. 미나가타는 소독약이 없어 카테킨의 살균력을 믿고 뜨거운 녹차를 쓰며, 불 젓가락으로 전기메스를 대신해서 지혈을 한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란 의문은 미나가타에게도 있다. 그는 12세기경 잉카에서도 두개골 개두 수술을 했다는 주장을 떠올린다. 전투시의 두부 외상으로 인한 급성 경막 외혈종의 적출을 이미 했고, 뼈의 재생 흔적이 있으니 그는 수술 후 생존했다는 것. 고대인도 했으니, 이것도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미나가타는 수술을 단행한다. 그리고 홍역과 콜레라 등으로 고생하던 에도인을 치료함으로써 미나가타는 믿음을 얻는다. 동시대인의 믿음만이 아니라, 자신이 그 시대에 갔어야만 하는 이유까지도 믿게 된다.

무라카미 모토카는 긍정적인 작가다. 그는 인간의 의지를 믿고, 생명의 소중함을 믿는다. 미나카타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처지를 긍정한다. 미나카타의 친구가 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나카타를, 그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미래에서 왔다는 허튼 소리를 들어도, 그들은 신뢰한다. 그만큼 미나카타의 의술이 놀라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선의와 믿음은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다. 하지만 그 낙관과 긍정이 없다면, 결코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 미나카타가 경악한 것은, 겨우 140여년 전의 세계에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홍역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종이로 만든 부적을 붙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에 미나카타가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어떤 시대이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동일한 법이다. 아무리 믿기 힘든 상황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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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슬립 닥터 진 1 <사카이 시즈> 글/<토미다 야스히코>,<무라카미 모토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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