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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넘어 선 엠마의 사랑 - 『엠마』

계급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TV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갈등은, 계급이다. 재벌 2세가 등장하고, 그를 사랑하는 평범한 여성이 있다. 그 사이에는 역시 상류층 여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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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TV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갈등은, 계급이다. 재벌 2세가 등장하고, 그를 사랑하는 평범한 여성이 있다. 그 사이에는 역시 상류층 여인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TV드라마가 남자 하나에 여성 둘의 공식을 따른다.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은 대체로 여성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장애물과 라이벌을 제치고 마침내 백마 탄 왕자와 결혼에 이르는 판타지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렇다. 드라마에서는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이 많이 이루어진다. 현실에서 가끔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보편적 사실은 아니다. 그건 대중의 판타지일 뿐이고, 환상이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시대는 어땠을까? 그것도 귀족의 나라인 영국에서는. 신흥 부르조아지가 아무리 돈을 벌어 사교계에 진입한다 해도, 여전히 귀족들이 겹겹의 장막을 치고 경멸했던 근대의 영국. 그 완고한 사회 속에서, 상류계급 신사와 메이드의 사랑이 가능할까? 모리 카오루의 『엠마』는 그 불가능한 사랑을 그려낸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순수하고, 더욱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홀로 떠돌던 엠마는 스토너 부인의 눈에 띄어 메이드 일을 하게 된다. 15살이었던 엠마는 단지 자신의 방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고, 헌신적으로 스토너 부인을 섬긴다. 단순한 복종이나 대가를 전제로 한 봉사가 아니다. 스토너 부인에게 엠마는 딸이었고, 엠마에게 스토너 부인은 어머니였다. 가정교사였던 스토너 부인이 가르쳤던 청년 윌리엄이 인사를 왔다가 엠마에게 한눈에 반한다. 엠마도 윌리엄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윌리엄의 아버지 리처드 존스는 반대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지 편견 때문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반대할 만한 근거가 있다. 1872년, 많은 돈을 벌었기에 사교계에 진입한 존스를,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졸부라고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따돌린다. 그런 존스를, 아무런 편견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인 여성이 있었다. 나무나 꽃이나 동물을 키우는 것이 취미인 오렐리아 하트위크. 결혼을 하고, 런던으로 올라온 하트위크는 윌리엄과 동생들을 낳고 사교계에도 나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다. 모든 것이 위선으로 가득한, 제스쳐와 미사여구로만 살아가는 사교계에서 하트위크는 점점 쇠약해진다. 홀로 고향으로 돌아간 하트위크는 사교를 싫어하는 인간혐오주의자 Misanthrope에서 따온 미세스 트로로프라고 불린다. “인간이 싫은 게 아닌데. 그 사람들이 불편했을 뿐이지.”라고 말하는 오렐리아를.

리처드 존스는 알고 있었다. 윌리엄과 엠마의 사랑이 결국은 실패할 것임을. 그들이 대적하기에, 사회의 시스템이란 것은 너무나도 완강한 것임을 존스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렐리아 하트위크조차 ‘잘 될 거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아. 두 사람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상대는 사교계 그 자체인 걸.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해보려 하면, 무리가 따르게 되어있지....서로의 생활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스스로 깨닫게 될 거야. 앞으로 보게 될 거야. 싫더라도.“라고 차분하게 남편 리차드 존스에게 말하는 것이다.

『엠마』를 보고 있으면, 미라 네어의 영화 『베니티 페어』가 떠오른다.( 『베니티 페어』를 보면, 『엠마』의 풍경을 실제로 볼 수가 있다. 그 화려하고 번들거리는, 근대 귀족의 마지막 호사를. 『베니티 페어』의 주인공 베키의 출신은 엠마와 같은 하류층이지만,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정반대의 길을 간다. 인상적인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이용하여, 남자들을 사로잡으며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베키를 귀여워하며 귀족 남자와 평민 여자의 사랑의 도피행을 찬양하던 미스 클로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한다. 소설에서는 가능하지만, 귀족 남성과 평민 여성의 결혼을 현실에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미세스 트로로프의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해. 이쪽 사람들은.’ 이라는 말처럼, 그들은 누구나 똑같다. 『베니티 페어』의 베키처럼 살던, 『엠마』의 엠마처럼 살아가던, 그들의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결코 그들은 사회의 벽을 뛰어넘거나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이미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정도로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는 『엠마』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유유하게 흘려보낸다. 빅토리아 시대의 풍경이 세밀하게 그려진 『엠마』는 차근차근 엠마와 윌리엄의 사랑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결코 말할 수 없고, 들켜서도 안 되는 사랑이 익어가는 1, 2권은 물론 헤어져서 슬픔을 참아내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는 5권까지의 『엠마』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모리 카오루는 빅토리아 시대와 메이드의 오타쿠다. 첫 작품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한 만큼, 모리 카오루는 한없이 공을 들여 『엠마』의 그림을 그려낸다. 일종의 페티시즘이기도 하지만, 모리 카오루의 독특하고 고집스런 취향은 독자에게 한없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엠마가 메이드복을 입는 장면을 몇 페이지에 걸쳐 섬세하게 그려낸다던가. 빅토리아 시대 연회장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살려내는 『엠마』는, 그림만으로도 풍요롭다. ‘다들 울기만 했던 4권’에서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유난히 많다. 혼자 서재에 앉아 ‘따라갔다면, 같이 도망쳤다면’ 하고 되뇌이다가 눈물을 흘리는 윌리엄의 모습, 런던으로 돌아와 스토너 부인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는 엠마의 얼굴, 함께 문 앞에서 부둥켜안고 눈물을 떨구는 엠마와 윌리엄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여운이 남는다.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한 엠마와 윌리엄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5권에 등장한 캠벨 자작은, 완강한 보수주의자다. 심지어 리처드 존스와 악수를 한 후에, 그 장갑을 내버릴 정도로 귀족 이외의 인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캠벨의 딸과 약혼을 한 윌리엄은 어떻게 될까? 아니 방해가 되는 엠마를, 캠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엠마』의 그 느긋함과 여유가 안타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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