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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시가테라』

청춘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춘은, 그 찬란한 빛 때문에 더욱 그림자가 깊어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질풍노도’라는 표현은 단지 사춘기의 심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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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춘은, 그 찬란한 빛 때문에 더욱 그림자가 깊어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질풍노도’라는 표현은 단지 사춘기의 심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다. 태풍이 휘몰아치듯, 청춘의 시기에는 모든 것이 떼로 밀려들고, 어쩔 줄 모르면서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허용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쉬운 시절이 청춘이다. 10대에서 20대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청춘물은,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겨울에 개봉했던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최근 개봉한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면 청춘의 극단적인 두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어설프게 나눈다면, <하나와 앨리스>가 희망,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이 절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절망과 희망, 지옥과 천국은 그들 모두에게 있다. 그들은 천국과도 같은 절정에서, 애인의 절교 선언 한 마디에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별 것 아닌 선택과 결정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벌어진다. 오늘은 지옥, 내일은 천국, 다시 모레는 지옥으로 널뛰기를 하듯이 오락가락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10대는 성인보다도 빠르게, 적어도 3배 이상의 속도로 살아간다.

학원 청춘물이 <돌격! 크로마티 고교><상남 2인조>처럼 개그나 액션, <스쿨 럼블> 같은 로맨스물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이 작품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 만화들은 모두 걸작이다.) 그 웃음과 눈물, 사랑과 폭력은 판타지이자 도피처다. 10대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그런 청춘물을 보면서 추억에 젖고 판타지에 빠져든다.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 자신에게 허락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느껴보는 것이다. 그래서 청춘물이나 멜로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단히 극단적이다. 아주 예쁘거나, 아주 못생겼다. 주인공은 잘 생겼고, 조연들은 유머감각이나 싸움 등 하나씩 특기가 있다. 그런 청춘들이 어우러지면서, 화끈한 일상을 보낸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라이프>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주인공은 늘 예쁘고 멋있다. 청춘물은 그런 청춘군상의 작렬하는 한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주목적이다. 혹은 정반대로, 가장 비참하거나 굴욕적인 순간을 그려내거나.

그런데 <시가테라>는 좀 틀리다. 후류야 미노루의 전작 <두더지>는 더 침울하고 어두웠다. <두더지>보다는 훨씬 밝은 톤으로 바뀐 <시가테라>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생 오기노의 학교생활과 사랑을 보여준다. 평범. 그렇다. 오기노를 말할 수 있는 것은 평범이라는 단어 하나다. 타니와키에게 괴롭힘을 당하긴 하지만, 최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잠깐 친구가 된 사이토의 말처럼, 그건 우연이었을 뿐이다. 재수 없게 사이토가 눈에 띄었으면, 사이토가 쫄따구가 되었을 것이다. 후루야 미노루가 워낙 얼굴을 일그러뜨려 놓아서 그렇지, 오기노의 얼굴은 평범한 정도일 것이다. 여자애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남자애. 용기가 좀 없고, 타니와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형편없이 자격지심을 갖게 되어서 그렇지 오기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균치의 소년이다.

후루야 미노루는 <이나중 탁구부>에서 절정의 황당 개그를 선보인 작가다. 하지만 그냥 가벼운 개그 작가가 아니다. <그린 힐><두더지>에서는 끊임없이 청춘의 고통과 즐거움에 천착하며 심오한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시가테라>에서 후류야 미노루의 개그는, 탁월한 스토리와 인물의 치밀한 심리 전개와 어우러져 더욱 즐거움을 준다. 오토바이에 몰두하게 된 오기노는 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다가 나구모 유미란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나구모의 친구가 오기노에게 엄청난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가 바로 오기노를 좋아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자신을 골탕먹이려는 함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제외하고는 암흑뿐이던 오기노의 일상은 차츰 천국으로 바뀌어간다. 1년 연상인 나구모와 연인이 되고, 키스를 하고 마침내 첫경험까지 가는 것이다.

하지만 후루야 미노루는 <시가테라>가 로맨틱 코미디로 만족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시가테라'는 독어(毒魚)에게 들어있는 독성분을 말한다. <시가테라>는 오기노의 주변과 세상, 그리고 그 자신에게 들어있는 독을 보여준다. 다카이는 타니와키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이상한 ’이리‘를 만난다. 오기노의 친구가 된 사이토는, 나구모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의 ’독‘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타니와키는 오기노와 다카이를 괴롭히던 인간이지만, 그를 사악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과연 독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독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물면 독이 퍼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의 독은 언제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청춘의 통과제의는, 우리가 그 독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면역이 생겨나는 과정일 지도 모른다.

후류야 미노루는 결코 낙관적인 세계관의 작가는 아니다. <두더지>보다는 밝아졌지만, <시가테라>의 세계 역시 ‘독’으로 가득하다. 그들이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독에 찔리고 상처를 입는다. 도시락가게의 점장 사건처럼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재수 없게 누군가의 독에 찔려 처참하게 죽어갈 수도 있다. 아직 청춘이기에 기운을 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걸 알면서도 웃어야 하는 우리들은, 블랙 코미디로 일관하는 논픽션의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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