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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일본 영화계의 성실한 반영 - 『꿈의 공장』

사람들은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원하는 것, 상상하는 것을 모두 현실처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드는 곳.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멋진 연인들의 사랑에 가슴 설레고, 영웅의 호쾌한 액션과 모험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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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원하는 것, 상상하는 것을 모두 현실처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드는 곳.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멋진 연인들의 사랑에 가슴 설레고, 영웅의 호쾌한 액션과 모험에 감동한다. 영화는 카타르시스와 즐거움을 안겨준다. 물론 그건 현실적이지만, 현실은 아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영화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마 복권에서 고액에 당첨되는 확률보다 조금 높은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고단한 현실을 잊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크다.

‘꿈의 공장’이란 말은, 비판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할리우드가 가장 호황이었던 시기는, 대공황으로 엄청난 실업자가 생겨난 1930년대였다. 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란 영화를 보면, 날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주인공이 나온다. 평범한 주부인 그녀는,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영화를 보며 멋진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꾼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자가 말을 건다. 영화 속으로 들어오라고.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우리가 바라보는 영화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영화는 결코 현실이 될 수 없고, 일종의 장식된 현실이다. 멋진 영화 세트장에 가서, 그 뒷면을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영화는 매혹적이다. 인간의 삶에서, 꿈이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영화가 없을 때에도, 인간은 언제나 꿈을 꾸며 상상 속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무리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 해도, 상상력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물질과 돈으로만 평가하는 삭막한 시대에서는. <꿈의 공장>(야마사키 주조 글, 히로카네 켄시 그림)의 주인공 하타케가 존경하는 감독은 페데리코 펠리니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시대에 활동했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비토리오 데 시카나 로베르토 롯셀리니 같은 감독들이 ‘현실’을 영화에 담으려 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길을 갔다.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담은 <무방비 도시>, <자전거 도둑>과는 다른 몽환적인 스타일의 <8과 1/2>을 만든 것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길>을 보더라도,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는 네오 리얼리즘의 영화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페데리코 펠리니를 존경하는 하타케는, 영화에게 자신의 미래를 건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을 나오고, 졸업 후 반 년간 PR 영화와 기록영화 한편을 찍는다. 그리고 소개를 받아 들어간 토토 영화촬영소. 하지만 영화판에는 자리가 없었고, TV영화를 만드는 제작부에 배치되어 조감독을 시작하게 된다. 바야흐로 ‘꿈의 공장’에 들어간 것이지만, 꿈과 현실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다. 하타케가 촬영소에 들어간 시점은 일본 영화가 침체기였던 79년 혹은 1980년이다. 정확한 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하타케가 보러 간 영화가 돌리 파튼이 출연했던 <나인 투 파이브>와 오구리 고헤이의 <진흙강>인 것으로 추산해보면 알 수 있다.

80년대는 이미 일본 영화가 몰락한 시점이다. 일본영화계는 70년대 들어 완전히 몰락했고, 대형 메이저 영화사들은 거의 제작에 뛰어들지 않았다. 70년대에는 니카츠 로망 포르노, 80년대에는 자주(自主) 영화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정도다. 영화촬영소는 영화보다 안정적인 수익이 들어오는 TV영화 만들기에 주력했고, 저예산인 에로영화나 비디오용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하타케의 친구가 에로 영화로 감독을 데뷔한 것도 그런 이유다. 제작자가 원하는 대로 정사 장면을 적당히 넣어주기만 한다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주제 같은 것들은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지금 일본 영화의 거장이 된 <큐어>의 구로사와 기요시나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미츠,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등이 모두 로망 포르노로 데뷔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엄혹한 시기에 하타케는 영화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는 영화로 밥을 먹고 살기가 워낙 힘들어서, 영화를 지망했던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나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등은 애니메이션업계로 들어갔다. 더 빨리 감독이 될 수 있고, 생계에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프리즈 미>를 만든 이시이 다카시 역시, 생계를 위해 만화를 그렸고 그 인기를 발판으로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하타케의 고뇌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한편의 내용이나 장면을 죽이고 살리는 결정권자는 감독이 아니라 스폰서, 광고 대리점, 방송국의 순서다. 오로지 돈과 시청률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영화도, TV도 하는 일은 똑같’다고 말하지만,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하타케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퍼스트 조감독인 무라키, 소품담당인 마보, 기록의 아코 등과 함께 <마이티 걸> <특수 형사> <메갈로폴리스> <신 형사 이야기> 등을 만들면서 하타케는 ‘꿈의 공장’의 파란만장한 현실을 알게 된다. 마음을 뺐긴 여배우가 고참 배우의 유혹에 넘어가 영화 일을 얻는 과정을 목격하고, 원숭이가 자기보다 비싼 일당을 받는 것에 놀라고, 퇴물이 된 배우의 마지막 자존심 혹은 집요함에 혀를 내두른다. 돈 때문에 대본을 바꾸는 것을 보며 허탈해 하고, 자신의 동기가 먼저 감독 데뷔하는 것에 부러움과 씁쓸함을 함께 느낀다. 일과 사랑 어디에서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하타케이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서 끈질기게 걸어간다.

히로카네 켄시의 만화는 충실하다. 그림체도 고답적이고, 한결같은 휴머니즘도 다소 뻔하게 느껴지지만 뭔가 볼만한 꺼리를 안겨주는 것만은 잊지 않는다. <꿈의 공장>은 할리우드는 물론 우리 영화계와도 전혀 상황이 다르지만, 차분하고 성실하게 80년대 일본 영화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성실한 작품은 언제 보아도, 평균 이상의 즐거움은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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