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숴버리는 걸작! - 『쿄시로 2030』

마사야 토쿠히로의 『쿄시로 2030』은 성인만화다. 표지에는 '19세 미만 구독불가'라고 붉은 글씨로 적혀 있고, 실제로 내용의 1/10 정도는 남녀의 정사장면과 남자의 성기를 직접 묘사하는 개그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마사야 토쿠히로의 『쿄시로 2030』은 성인만화다. 표지에는 '19세 미만 구독불가'라고 붉은 글씨로 적혀 있고, 실제로 내용의 1/10 정도는 남녀의 정사장면과 남자의 성기를 직접 묘사하는 개그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목이 날아가고, 팔다리가 잘리는 잔혹한 폭력 장면들도 있다. 단순히 성인들의 세계를 다루는 정도가 아니라, 성인들도 함께 돌려보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내용의 만화다. 전작인 『못말리는 타잔』보다도 심하다. 청소년 시절에 성인물을 보아도 크게 해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쿄시로 2030』을 권하기에는 어쩐지 망설여진다. 『쿄시로 2030』의 테마는 섹스다. 섹스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펼쳐지고, 상황의 전환이나 새로운 사건의 전개도 '섹스'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이건 성인들만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쿄시로 2030』은 3차대전의 핵무기 사용으로 폐허가 된 2030년의 일본이 배경이다. 게놈당이 장악한 일본 정부는 식량 자급을 위하여 남녀를 분리된 농장에 강제 수용하고 강제 노동을 시킨다. 인구 통제라는 이유로 남녀간의 섹스는 금지되고, 지배계급과 공무원 그리고 소수에게만 버추얼 섹스(virtual sex)가 허용된다. 농장의 노동자들은 버추얼 섹스 기계를 얻기 위하여 노동에 매진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중요한 전제가 있다. 게놈당은 인간을 유전자에 따라 차별하고, 분리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히틀러를 닮은 얼굴의 니죠 노리마사가 당수인 게놈당은 국가에 반역적인 성향을 가진 M형 유전자 이상자를 격리하면서 공포정치를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을 유전자 성향에 따라 등급을 매겨 전체주의 국가를 건설한다.

이런 설정만 보아도, 『쿄시로 2030』이 단순히 성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그린 만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사야는 다시 한번 군국주의 사회가 된 미래 일본의 모순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게다가 한번 만들어낸 설정 안에서, 그냥 정사 장면만 되풀이하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쿄시로 2030』의 놀라운 점은, 어쩌면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설정 안에서 무애롭게 풀어내는 이야기다. 약간 유치하고 저질스럽게도 보이지만 능히 포복절도할만한 개그와 함께, 기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스토리를 탁월하게 끌어가는 작가의 재능에 탄복하게 된다.

주인공인 쿄시로는 M형 유전자 이상자다. 어린 시절 강제로 격리되어 철저한 군사교육을 받는다. 자신이 살아남는 길은 군인이 되어 전적을 올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쿄시로를 비롯한 M형 유전자 이상자들은 기꺼이 살인병기가 된다. 그러지 못하면 죽어야 하니까. 하지만 엄청난 전적을 올린 쿄시로는 전쟁이 끝난 후, 이탈자들을 처리하는 순찰관으로 전락한다. 유일한 낙은 버추얼 섹스뿐. 하지만 우연히 사막에서 노인에게 쫓기던 개를 구해주면서 운명이 바뀌어버린다. 천재 박사의 뇌가 이식된 개 바벤스키는, 쿄시로가 버추얼 섹스로 사랑을 나누는 여인 시노가 실제 인물인 것을 알아낸다. 홋카이도의 관리센터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유리카가 가상의 캐릭터인 것처럼 가장하여 쿄시로와 버추얼 섹스를 나눠온 것이다. 사랑에 빠진 쿄시로는 유리카를 구해내기 위하여 홋카이도로 향한다.

그러니까 『쿄시로 2030』은 일종의 로드 무비이기도 한 셈인데, 여기에 기발한 변주가 가해진다. 쿄시로의 여행은, 막강한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다. 모든 것이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에서, 쿄시로는 자유의지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키워나가는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관리 센터에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야기 소장이 부임해 오고, 유리카를 사랑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이 치열하게 던져진다. 유약한 인간을 개조하기 위하여 최고의 유전자만으로 만들어진 존재 야기 소장. 게놈당의 목적은 인류 전체를 야기 소장과 같은 존재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야기 소장은 불량한 유전자를 가진 여인 유리카를 사랑하게 된다. 대체 왜일까?

마사야 토쿠히로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연이어 던진다. 니죠의 아들 히카루는 부정부패한 공무원을 척결하는 감찰관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감찰관 일을 하는 히카루는 밤마다 자신이 죽은 원혼들에게 시달린다.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던 히카루는 가짜 유토피아를 만든다. 노동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버추얼 섹스에서 위안을 찾듯이, 히카루는 외딴 섬에 만들어놓은 은거지를 다스리면서 스크레스를 푼다. 아르카디아라는 이름의 가상 유토피아는, 히카루의 불안과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이 게임 속의 캐릭터, 장기의 졸처럼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쿄시로 2030』은 야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산더미처럼 가진 성인만화이지만, 결코 유치하거나 조잡하지 않다.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도 깊은 질문을, 드라마틱하게 던진다. 현란한 개그와 함께. 마사야 토쿠히로는 기존의 철학과 사회이론 등을 숙지하여 『쿄시로 2030』내에 훌륭하게 풀어낸다. 그런 내용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심오한 내용과 현란한 개그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쿄시로 2030』은 질풍처럼 달려간다. 하지만 볼수록 마음은 무거워진다. 쿄시로와 시노의 사랑도 깊어지고, 인간에 대한 희망도 생겨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처절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르카디아 에피소드는 『쿄시로 2030』의 절정이다. 이 에피소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간은 무엇이던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감히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얼굴인 것을. 이렇게 어두우면서도, 끊임없이 웃고 달뜨게 만드는 『쿄시로 2030』은 우리의 답답한 고정관념을 부숴버리는 걸작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쿄시로 2030 (1)

Masaya Tokuhiro 글,그림3,150원(10% + 1%)

때는 서기 2030년. 식량부족을 원인으로 발발한 세계대전에서 곤욕을 치른 일본은 전후, 인구증가로 인한 식량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남녀 격리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그에 따른 욕구불만 해소를 위해 가상 연애 머신을 공급한다. 혈기 왕성하고 건장한 청년 쿄시로는 어느 날 정찰기를 타고 순찰업무를 하던 중 광기어린..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