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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만화라구요? 천만의 말씀! - 『헤븐?』

노리코의 만화는 중독성이 있다. 한번 보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용이 뻔히 기억나면서도 다시 집어들게 된다. 집어들고는 똑같은 장면에서 웃고, 아니 기발한 사건의 전조가 되는 곳부터 웃음을 참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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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노리코의 만화는 중독성이 있다. 한번 보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용이 뻔히 기억나면서도 다시 집어들게 된다. 집어들고는 똑같은 장면에서 웃고, 아니 기발한 사건의 전조가 되는 곳부터 웃음을 참지 못하게 된다. 세이코의 무표정한 얼굴만 보아도, 우루시하라 교수가 나타나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당연하다. 사사키 노리코의 힘은, 일상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황당무계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캐릭터에게 있다. 그들은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들도 전혀 엉뚱한 결말로 끌어가는, 정말 희한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실제로 내 곁에 존재한다면 정말 피곤하겠지만, 만화로 그 소동을 보는 것만은 정말 즐겁다.

『못말리는 간호사』에서 재미의 순도가 약간 떨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목숨이 걸려 있는, 고통과 한숨이 상존하는 병원은 결코 무해한 웃음의 공간이 될 수 없다. 간호사가 저지르는 장난과 실수는, 환자의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자칫하면 장난이니 실수로 사람의 생명을 앗을 수가 있다. 그래서 병원이라는 공간에 유머를 집어넣기 위해서는 『헬로우 블랙잭』이나 『Dr. 고토 진료소』처럼 감동적인 드라마에 웃음이 배어 있는 형식이 되거나, 미국의 인기 TV 드라마이며 영화로도 각색되어 아카데미상을 받은 『매쉬』처럼 블랙 코미디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는 결코 블랙 코미디가 될 수 없다. 사사키 노리코의 코미디는, 한없이 순수하고 무해한 농담의 결정체다. 우루시하라나 세이코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생활의 활력소 같은 것이다. 가벼운 농담과 장난은 우리의 삶을, 일상을 유쾌하게 끌어간다.

『헤븐?』에 가면,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헤븐?』은 프랑스 요리 전문인 한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참 유행했던 ‘음식 만화’의 부류에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천만에! 『헤븐?』의 레스토랑은 ‘열혈’ 음식만화의 세계와는 전혀 동떨어진 별천지다. 레스토랑의 위치부터가 그렇다. 역에서 한참 걸어 15분을 가야 하고, 길도 어둡고 가로등도 없고, 번화가도 빌딩가도 주택가도 아닌, 게다가 공동묘지가 창 밖으로 보이는 레스토랑이라니. 이름조차 ‘로윈 디시’(세상의 끝)이다. 레스토랑의 주인인 쿠로스는 단지 모란꽃이 한껏 피어있다는 이유로 레스토랑의 위치를 정했다. 하지만 모란이 피는 것은 단 한 달뿐. 이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쿠로스는 완벽하게 제멋대로 형의 인간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의 우루시하라 교수와 세이코를 합쳐놓았다고나 할까. 한없이 무신경하면서도, 모든 일에 끼어들어 엉망을 만들어놓고, 그런 후 태연하게 자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즐겁게 살아가는 인간. 한없이 얄미운데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친근감이 가는 인간. 쿠로스는 사사키 노리코가 창조해낸 최강의 캐릭터다.

그런데 『헤븐?』에는 쿠로스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인물이 하나 더 나온다. 바로 주인공 이가의 어머니다. 이가가 대학을 가지 않고, 웨이터로 인생의 길을 바꾼 이유는 어머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함께 도쿄로 올라왔던 어머니는 입시 당일 디즈니랜드로 놀러간다며 홀로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디즈니랜드 자유이용권과 이가의 수험표를 바꿔가는 바람에, 결국 시험을 보지 못하고 취직을 결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이 ‘끈기가 없다’며 이가를 질책했던 어머니는, 시간이 흘러 집안일을 돌봐주던 이가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가가 없으면 불편해!’라고 외치던 어머니는 마침내 도쿄로 올라온다. 자신의 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이가를 데려가겠다는 어머니는 일심이체(一心二體)인 쿠로스와 대면하고, 이가를 둘러싼 진검승부를 펼친다. 관람차에서 막을 내리는 이 대결은 『헤븐?』에서 가장 불꽃튀는 장면이다.

이가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쿠로스의 ‘만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장이기 때문에? 그건 아니다. 로윈 디시의 종업원들은 누구나 쿠로스의 변덕과 아집을 꺾어보려 하지만, 여지없이 실패한다. 쿠로스와 함께 지내면서 승리하는 방법은 단 하나, 뒤로 미룬다, 뿐이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인생에서 달관과 체념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가능하다.(이가의 아버지는 그런 경지에 이르러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이가는 아직 한참 배워가는 중이다.) 아니면 아무 생각 없는 종업원 카와이군처럼 살아가거나.(카와이는 몇 번이나 같은 주의를 받고도 전혀 기죽지 않는 장점을 가진 청년이다.) 누구도 쿠로스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은, 그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장과 주방장은 대립하기 마련이라는 친구들의 조언을 들은, 주방장은 모반을 시도한다. 가을 메뉴를 놓고 대립하던 쿠로스와 주방장은 우연히 산 속에서 조우하게 되고, 주방장은 쿠로스에게 요리를 해준다. 조난당했던 쿠로스는 지나가던 족제비가 물고가는 꿩을 뺏고, 그걸 주방장에게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로윈 디시의 종업원들은 깨닫는다. ‘사장님은 생태계의 상위에 있는 거야. 산에서건 평지에서건.... 직책상의 사장님대 주방장의 문제가 아니었어.’라고. 쿠로스는 이기적으로 직원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이 움직이고 싶은 길로 갔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은 것이다. 그 결과로 종업원들은 상처도 받고, 말썽을 수습하느라 힘이 들지만 그들은 쿠로스를 욕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라고 ‘체념’하게 된다. 초식동물을 먹는 육식동물을 욕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헤븐?』은 사사키 노리코의 무해한 소동이 어디까지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이나중 탁구부』처럼 초현실의 세계로 진입하지는 않는다. 사사키 노리코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웃음을 말해준다. 잘 돌아보면 쿠로스나 이가와 같은 인물이 우리 주변에는 존재한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헤븐?』을 보면서 그토록 즐거운 이유 하나는, 그 현실감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소동극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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