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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인생이다 - 『와일드 에이스』

스포츠는 인생이다.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종목이건 스포츠에 한번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좋아하는 팀이 늘 하위권에서만 맴돌다가 마침내 우승했을 때의 그 희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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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인생이다.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종목이건 스포츠에 한번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좋아하는 팀이 늘 하위권에서만 맴돌다가 마침내 우승했을 때의 그 희열을. 유망주였지만 부상과 슬럼프에서 헤매다가 끝내 일어섰을 때의 감격, 반대로 잘나가던 스타가 단 한번의 부상이나 사고 때문에 후보 선수로 전락한 모습을 볼 때의 안타까움 같은 것들. 아니 그렇게 길게 보지 않아도, 단 한 경기에서도 희노애락은 수없이 몰아친다. 스포츠는 인생의 한 부분이고, 세상의 아주 작은 영역이지만 가장 전형적이고, 예리하게 전체를 담아낸다. 그 안에는 인생이 있고, 세계가 있고, 우주의 법칙까지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그것도 가장 극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스포츠의 세계는 매순간 낭떠러지와 천국을 오가는 희열과 좌절을 경험한다. 짜릿하게, 인생의 희노애락을 찰나에 만끽하게 해 준다.

『와일드 에이스』(글 타나카 세이이치 그림 치바 키요카즈에)에서 벌어지는 첫 시합은 한때 야구명문이었지만 10여년을 예선 탈락한 코호쿠 쇼난고와 명실상부한 갑자원 우승후보 요코하마 키주쿠고와의 연습 시합이다. 누가 보아도 승부는 명백한 것이다. 쇼난고의 선수들도 자신들이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인 아소우 하루카가 구원 투수로 등판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기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지는 것이 원통하다, 로 바뀐다. 쇼난고가 야구명문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 선수들은 ‘자신감보다 원통함이 더 컸’고, ‘야구를 좀더 잘하고 싶어 필사적’이었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힘으로 바꿔 맞서’ 승리를 따냈다. 오랜 연습과 경험에서도 얻지 못했던 깨달음이 단 하나의 시합에서 이루어진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소우 하루카의 피칭을 보면서, 그 불굴의 의지를 보면서 쇼난고의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운다.

스포츠 경기를 직접 보거나, 스포츠 만화를 보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다. 단순한 즐거움도 있지만,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과 세상이 떠오른다. 스포츠를 지배하는 것은 철저하게 기록과 수치다. 키주쿠고의 승리는 누가 보아도 명백했다. 그러나 세상은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합이나, 인생이나 실제로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이끌어주는 것은 운명이다. 스포츠는 우연과 필연이 극적으로 결합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만나는 탄성의 순간이, 스포츠에서는 거의 날마다 이루어진다. 그 순간 공을 빼앗기지만 않았더라면, 그 순간 실투하지만 않았다면, 바뀌는 것은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역사다. 스포츠는 예측 가능한 영역이지만, 결코 예측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혼돈의 세계다. 똑같은 선수가, 똑같은 팀과 시합을 해도 매번 승부는 달라진다. 승부의 과정도 전혀 다르다.

매년 프로야구를 보는 것처럼, 수많은 야구 만화를 보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똑같은 룰로 진행되고, 전개되는 이야기와 사건들도 비슷하지만 볼 때마다 놀라운 감흥을 안겨준다. 『와일드 에이스』는 전형적인 고등학교 야구만화이지만, 확실한 특징이 있다. 『와일드 에이스』의 주인공은 여성인 아소우 하루카다. 아소우의 아버지 나츠카와 케이코는 한때 뛰어난 프로야구 선수였지만, 경기도박의 누명을 쓰고 제명되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웠던 아소우는 아버지의 꿈을 결코 잊지 않는다. 아버지는 언제나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단다!’고 말해왔다. 제명된 후에도 복귀할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나츠카와는 마침내 복권이 이루어지고, 첫 등판을 앞둔 날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다. 그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아소우는 이루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소우를 외면한다. 일본 고등학교 야구연맹 대회 참가자 규정 제 4조 제 1항에는, 그 학교에 재학 중인 남학생에 해당하며 전국 고등학교 야구연맹에 등록되어 있는 부원들 중 학교장이 신체, 학업 및 인성에 있어 선수로서 적합하다고 인정한 자, 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여고생은 정식 시합에, 갑자원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소우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야구란 영역 안에 들어가면 남녀란 성별과 관계없이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되는 거야. 플레이어로서 싸워 쟁취한다. 그게 바로 야구선수지. 정말로 꿈을 이루고 싶다면 ‘여자니까’라는 변명은 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소우는 남자들과 어깨를 겨루면서, 싸운다. 그리고 감동시킨다. 그 남녀차별조항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를 누구나 느끼게 만들어준다.

여성 야구만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다카하시 츠토무의 『철완소녀』가 있었고, 영화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리그』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야구시합이었다. ‘여성’이 하는 야구시합을 보여준 것이지, 하나의 경기장에서 성의 구별없이 정정당당하게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시합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대는 언제나 변한다. 최근 골프에서는 아니카 소렌스탐이 PGA 대회에 출전했고, 이탈리아의 축구팀 페루자에서는 여성 축구선수를 영입하겠다는 발표도 했었다. 아니카 소렌스탐은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여성 축구선수는 남자선수들의 들러리가 되기 싫다며 거부했다. 그게 현실이다. 아직까지는 여성이 남성들과 동등한 무대에서 힘과 기술을 겨루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골프의 경우를 보면, 지금 14세인 미셸 위가 안정적으로 힘과 기술, 그리고 경력을 쌓아가면 PGA 대회에서도 무리 없이 통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축구나 미식축구, 농구처럼 몸으로 부딪치는 경기에서는 여전히 힘들겠지만 골프처럼 개인의 역량이 중시되는 종목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야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와일드 에이스』는 그런 가정에서 출발하여, 현실적인 투쟁의 과정을 그려낸다. 아소우 하루카는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갑자원에 도전했고, 아직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와일드 에이스』는 야구 만화로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아소우 하루카의 지난한 투쟁에 박수를 보낸다는 기쁨도 못지않다. ‘매일같이 쌓아올리는 게 중요하단 것, 쌓아올린 것들이 자신을 지탱해준다는 걸’ 아소우 하루카는 보여준다. 그렇게 쌓아올린 것들이, 단지 현실의 벽 때문에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차별과 편견, 제도가 너무나도 많다. 『와일드 에이스』는 그런 벽과 정면충돌하는 달걀의 이야기다. 그 달걀이 반드시 벽을 무너뜨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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