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다른 여자들과 달리 질투가 없다고 칭찬했다. 두 가지 점에서 이 발언은 잘못되었다. 하나, 질투는 여자의 특성이 아니다. 둘, 나는 그의 곁에서 감정을 최소한으로 느껴야 했다. 그때 질투는 잉여 감정이었다. 이제 나는 질투심을 느낀다. 승승장구하는 친구가 부러워서 SNS 게시글을 모조리 찾아 읽으며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이의 마음이 아쉽기도 하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남자들도 많이 보았다. 다른 사람의 성과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토라져 버리는 남자들이 있었다. 이상한 경쟁심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의 원인은 질투였다.
MBTI 유형이 유행이라 여러 사람들이 내게 결과를 물었다. I(내향적 성격)라고 말할 때마다 농담거리가 된다.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는 내 사진들을 보면서 친구들이 웃는다. 나도 깔깔 웃으면서 십년 전에 유료 검사를 했었고 98% I 성향이었다고 대답한다. 친구들과 나는 다시 웃는다. 내향적인 박주연, 이것은 우리들 사이에 하나의 밈으로 정착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관용어구가 된 것이다.
‘단편적인 피해자다움’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말투, 표정, 행동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피해자다움의 형태도 물론 다를 수밖에 없다.
- 『김지은입니다』 중
몇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질은 무수히 세분화되어 있고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성질쌍은 성질의 제곱만큼 많다. 하나의 성질로 사람을 읽어내려 할 때 생기는 오류가 두렵다. 나는 그가 두려웠기 때문에 그 앞에서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가 크고 농담하길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수적이고 편안하다. 노동자로서, 친구로서, 나는 상황과 맥락에 맞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들은 내가 일할 때의 단호함을 모른다. 나와 업무상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내가 동물을 대할 때의 혀 짧음을 모른다. 하지만 모두 나의 속성이다.
MBTI 결과를 두고 놀리는 친구들도 나도 사실은 알고 있다.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지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말이 많은 성질과 내향적인 성질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둘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엔 내가 내향적이라는 것이 농담이 될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맥락과 합의 속에서만 이 농담이 가능하다. 반면 나를 칭찬했던 그는 내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그 앞에서 억눌러왔는지 모른다. 그는 나의 맥락을 모른 채 나를 판단했다. 반쪽짜리 관계였다. 나는 최대한 그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했고 그는 나의 그런 모습밖에 몰랐다.
때로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반박을 보내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내가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나를 일정한 맥락 속에서만 알고 있어요. 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도, 세상 모든 사람들도 그래요. 우리는 유형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그물로 나를 잡으려 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물을 잡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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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도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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