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심리 전문가가 추천하는, 그림자 보기
어둠을 통해 우리는 더 밝아질 수 있을지 몰라요. 내 안의 빛과 어둠을 바라볼 수 있는 심리학 책을 추천합니다.
글ㆍ사진 변지영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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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

이부영 저 | 한길사



모두가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칼 융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나쁨, 형편없음, 무능함까지 하나로 통합되어야 자기실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내 안의 빛과 어둠을 다 본다는 것,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일 당신의 친구 중 한 사람이 당신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한 것이다. (89쪽)

 

저자 이부영은 한국의 대표적인 분석심리학자다. 스위스에서 융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귀국하여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신경정신과장 등을 지냈으며 한국융연구원을 설립했다. 이 책은 ‘이부영 분석심리학 3부작’의 제1권으로,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자 ‘나’의 어두운 반려자인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각만 해도 싫은 모습

 

유독 싫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말하거나 통화하는 사람, 자주 약속을 어기는 사람,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만나기만 하면 자랑을 끝없이 늘어놓는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려 들거나 훈수 두기를 좋아하는 사람 등 거슬리는 사람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독 싫은 유형은 저마다 다르다.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그 이유는 그림자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싫은 어둠이 누군가에게서 보일 때,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41쪽)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커진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이건 별로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꼭 타인을 보아야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자주 하는 말과 행동만 보아도 그림자는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러면 내가 게을러지니까 안 돼.”와 같은 말을 자주 하면서 강박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그림자에는 게으름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는 절대 안 돼. 독립적으로 살아야지.”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에는 의존이 들어 있다. 그러면 이들은 각각 게을러 보이는 사람이나 의존하려는 사람을 끔찍하게 싫어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자기 그림자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그림자로부터 멀어지려고 할수록 신경증적 증상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몸이 자꾸 아프다든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비슷한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든지, 불안이 점점 커져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다든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든지, 느닷없이 감정이 폭발해 일과 관계를 그르친다든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그래서 그림자는 의식하고 마주하고 함께해 자기로 통합해 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논한다. 그림자는 비단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림자 의례로서의 따돌림

 

불행히도 얼마 전부터 일본에서 한국 땅으로 수입된 청소년의 이지메 현상은 따돌림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그림자 의례로 정형화해 버릴 정도로 만연되고 있다. 이것은 공격성, 증오감, 적개심 등 부정적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 배출구로 은밀히 한 후보자를 정하여 괴롭힘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발산하고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가학, 자학의 심리적 현상이다.(...) 그림자는 하나의 가치(공부를 잘하는 것 등)가 강조되는 데서 생긴다. (220-222쪽)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 심각해진 따돌림과 괴롭힘 현상도 그림자와 관련된 문제이다. 또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면서도 아직은 서툰 청소년들은 ‘내가 혹시라도 소외되지 않을까’에 대한 공포가 크다. 게다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다양한 활동을 해보면서 가치를 탐색하고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시간도 없이 획일화된 기준 하나, 오직 대학 입시와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환경에서 거의 모두가 과도한 긴장감 속에서 공부 기계가 되어간다. 이런 환경에서 느껴질 법한 공격성과 좌절감은 자신의 무능처럼 여겨져 드러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밖으로 던져버리는 투사가 일어난다. 자기 안의 약한 면, 부정적인 감정, 공포와 불안을 토해낼 대상을 밖에서 찾는 것이다. 이러한 따돌림 현상을 저자는 그림자 의례의 일종으로 본다. “한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그림자를 투사하여 속죄양을 만들고 이를 제물로 삼음으로써 집단성원이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는” 그림자 의례라는 것이다.

 

어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통해 

 

따라서 저자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우리가 각자의 그림자를 알아차리고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과제 하나를 해결한 것이며 최소한 개인적 무의식을 극복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밝음을 강조하는 시대일수록 어둠을 숨기고 미워하고 혐오하게 된다. 하지만 밝은 것을 생각하고 상상한다고 해서 우리 존재가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둠을 알아차리고 관통해 감으로써 밝아지는 것이다. 늘 우리 안에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것을 매순간 그대로 경험하면서 더 큰 자기로 통합해나가는 길에 정신 건강과 인격의 성숙이 있다.  

 

자기의 그림자와 자기의 빛을 동시에 자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두 측면에서 본다. 그리하여 그는 중앙으로 나온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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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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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김낙범

2024.12.09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면서 중앙으로 나온다. 마치 새벽의 여명에서 자신을 조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책으로 읽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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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