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멈추고 바라보는 연습
불교의 관점에서 심리 치유 방법을 탐구해 봅니다. 불교와 명상, 심리 상담을 오가며 연구해온 서광스님의 책 『단단한 마음공부』 읽기.
글 : 변지영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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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마음공부』

서광 저 | 학지사


 명상을 하거나 심리상담을 받고 나서 ‘아, 이제 알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삶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사람들은 좌절한다.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하거나 생각하면 그 흔적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든지, 무엇을 보았든지, 들었든지, 느꼈든지, 행했든지 그것은 다 우리 안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 흔적이 쌓여서 하나의 습관이 됩니다. (19쪽)

 

『유식 30송』의 핵심을 현대적, 치유적 용어로 풀어낸 이 책은 불교와 명상, 심리상담의 영역을 오가며 종횡무진해 온 서광스님이 썼다. 저자는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서양의 심리학 이론이나 상담이론이 개개인의 치유방법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불교심리학이라 할 수 있는 유식의 원리를 심리치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을 쓰게 되었다. 

    

마음의 구조

 

유식에 따르면 우리 마음은 8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으로 이루어진 전5식, 감각자료들을 종합하고 정리해 지각하고 판단하는 제6의식(대상의식), 제7말나식(자아식), 제8아뢰야식(저장식)이 그것이다. 유식 사상에서는 제8아뢰야식이 마음의 가장 깊은 층으로, 나머지 모든 의식 구조의 근본이 된다.

 

서양 철학과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제6의식을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현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주로 의식과 무의식을 분리된 개념으로 다루지만, 유식은 마음의 모든 층위가 제8아뢰야식을 근본으로 상호작용하며 연결된 하나의 체계로 설명한다. 아뢰야식은 우리가 경험한 모든 감각, 감정, 생각, 행위 등이 저장되는 일종의 저장고이다. 하지만 단순한 저장고가 아니라 다른 7식의 활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저장식은 무몰식, 절대 없어지지 않는 식, 또는 종자식, 모든 행위의 씨앗이 되는 식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기억하는 것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접촉되고 경험되는 것은 모두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또 저장된 경험은 뒤에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57쪽)

 

저장식에 들어 있는 씨앗 

 

사람들은 ‘인연’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 의미는 심오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因’은 종자, ‘연緣’은 조건에 해당한다. 모든 현상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종자가 특정한 조건을 만나면 발현되는 것이다. 종자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조건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둘의 연결이 선과 악, 좋고 나쁨, 행복이나 불행을 낳게 된다.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조건이 무르익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왜 나에게 이 일이 일어났느냐고 원망하고 따지는 방법으로 고통을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왜라고 묻거나 원망의 대상을 찾는 대신 고통의 존재 자체를 자각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61-62쪽)

 

저장식은 늘 자아식과 다섯 가지 감각식에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가 직접 그 존재를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정서와 감정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특히 뭔가 마음에 걸리고 신경이 쓰일 때,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저장식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감정과 자아식

 

동창회에 간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의 차는 중형차입니다. 동창 한 명이 소형차를 타고 온 것을 보고 약간 우쭐해하고 있는데, 뒤이어 다른 동창이 고급 세단에서 내리는 것을 봅니다. 그 순간 우쭐해하던 맘이 사라지고 자기 차를 초라하다고 느낍니다. 그런 상대적 심리 상태를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경험합니다. 진짜로 잘나거나 못났다면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잘나고 못난 것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발생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비교해서 일어나는 열등감, 우월감은 다 아만입니다. 나의 자아식이 언제 발동하나 보려면 비교하는 마음을 보면 됩니다. 그것은 2차, 3차로 일어납니다. 비교해서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심해지면 이간질까지 합니다. 그 밑바탕에 들어가 보면 내가 더 인정받고 싶은 것, 상대가 인정받는 것이 싫은 것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2차 3차 5 10 무수한 번뇌와 망상을 유발합니다. 그럴 때 바로 거기에 자아식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83쪽)

 

감정의 밑바닥에는 늘 자아식이 버티고 있다.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경험하면서 직면하다 보면 자아식을 보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아식을 보면 그 순간 자신의 감정들이 마치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기 때문에 서서히 풀어지면서 조절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법

 

우리가 기억을 하든, 하지 못하든 우리의 과거 경험은 그림자처럼 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조건만 맞으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떠오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저장식, 즉 과거 경험의 기억과 흔적이 현재, 지금 여기서 어떤 모양이나 소리, 냄새, 맛, 촉감, 현상과 만나게 되면서 심리적인 파도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그 파도에 휩쓸리면 화, 우울, 분노, 미움 등 갖가지 불건강한 심리적 상태로 인해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251쪽)

 

자신도 모르게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단계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우선 1단계, 멈추기다. 몸, 말, 생각을 모두 멈춘다. 습관적 반응을 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2단계, 호흡에 주의 두기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만 주의를 두고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마음도 고요해지기 마련이다. 마지막 3단계는 가슴에게 묻기다. 이미 우리에게는 본래의 지혜가 있으니 가슴에 손을 얹고 어느 것이 과연 행복으로 가는 길인지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명상도 좋지만, 매순간 일어나는 감정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멈추고 바라보는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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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마음공부

<서광스님>

출판사 |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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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