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X이희주] 우미의 아이
『돈 덴』 주위를 느슨하게 걸으며, 만리포 작가와 이희주 작가가 사랑과 여자에 관한 에세이를 교환합니다.
글 : 만리포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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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2024, 『돈 덴』(문학동네)


옛날에 나는 통풍이 잘되는 가족, 혈연의 가능성이 원천 차단된 가족을 원했다. 혼자 살기는 싫었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누군가 한 사람을 독점하길 바라게 되었다. 



남자가 죽으면 어떡하지? 


작년 여름. 아침에 내린 비가 지하철 플랫폼 안까지 들이쳐 바닥에 사람만 한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위를 지나며 모로 누운 사람을 타넘는 기분을 느끼고, 남자가 어디선가 그렇게 쓰러져 있을까 봐 전화를 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전전긍긍하기 싫다, 남자의 애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심장이 약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죽는다면 나는 막대한 슬픔을 어쩌지 못하고 빈 자궁을 채우려 할 것이고, 죽은 남자를 낳아주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 충동은 시간이 갈수록 구체성을 띠며 진짜 계획으로 변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특정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켰다. 

 


좀 친해지고 나면 머뭇거리다가 어릴 때 누가 만진 적 있어? 물어봤던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위스키, 수상스키, 캠핑과 재즈가 취미인 여자는 전남친들 작품이라는 말을 믿길 좋아하는 데다, 아저씨가 여자애의 인생을 들쑤셔놓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해서 나 또한 인생의 전반기에 만난 누군가에 의해 영구적으로 훼손됐다고 생각했다. 네가 너를 주무른 사람들에 의해 주조되었다고 상정해야 비로소 네 성질이 납득된다는 거였다.  


나에게 성적인 트라우마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심층 심리의 판게아가 쪼개질 만한 대사건은 없었다. 삶의 타임라인 모든 구간에 작은 닻이 내려져 있고, 한두 개 없앤다고 해서 BDSM이 나에게 휴식이 된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섹스할 권리』의 저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팟캐스트 인터뷰1에서 자기 책을 소개하며 말한다. ‘여자들이 정상적인 섹스는 하되 도착적인 섹스는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적인 가치체계가 주장해 온 바와 궤가 같다. 그러나 성해방 독트린이 20세 전후의 여자애들로 하여금 성적으로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기도 하다.’


스리니바산은 일반론을 언급했을 뿐이지만, 이 어린 여자애들 운운은 귀에 익다. 여자들은 성적으로 실수하는 순간 인생이 마감되니까, 자라나는 여자애들이 도착적 섹스에 솔깃하지 않도록 보호하자. 숱하게 들어온 얘기다. 여자들의 인생이 왜 마감되나? 자기가 허락했던 애정 없는 섹스를 모두 실수 혹은 피해로 수렴시키지 않으면 조롱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여자가 겨우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나면 여자의 씻을 수 없는 불명예에 대해 누구나가 떠들고, 비로소 여자를 연민할 수 있게 된 것에 후련해하며 떠나간다.  


또 ‘합의 아래의 섹스라면 어떤 섹스라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칵테일 속의 교묘한 위계를 간과하므로, 여자의 합의는 얼마간 밀어붙여진 것이며 본질적인 합의라고 볼 수 없다-마치 노사 합의에서 노동자가 불리하듯이-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의 비규범적 섹스를 터부시하는 지금, 법정에서 여자가 합의한 섹스라고 우기는 일이 안 일어나기라도 한다는 듯이. 합의된 섹스의 규칙을 촘촘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터부시를 벗겨내야 한다.


터부시 안으로 잠겨 드는 여자들. 이해한다는 듯이, 자기의 섹스도 자해였다고 한 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나와 행실이 비슷하여 경계를 풀게 만들었으나 알고 보면 기제가 달랐다. 자기들을 파괴하고 싶었다고 한다. 난 자기파괴를 하는 게 아니고 나와 화해를 하는 것에 가깝다고 하면 알 수 없는 프로세스를 통해 내가 아무 남자나 환영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 당신들의 표면에 자리한 욕망. 온기에 대한 욕망은? 

 

나는 온기를 위해서 산다. 집에 돌아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살갗에 막 화장을 지운 얼굴을 부비며 잠든다. 어린애를 카트에 태운 채 식재료를 고른다. 과일이든 치즈 세트든 거침없이 담는다. 요가 매트부터 에어 프라이어까지 보기 좋게 수납된 공간이 마침내 갖춰진다. 더 모으면 휴가철에 가장 편한 교통수단을 타고 놀러 가, 3성급, 4성급, 5성급 호텔에 머물 수 있을지도. 나이 든 부모님을 방문해 핵가족 모드를 해제하고. 땀 흘리고, 투자하고, 나들이 가는 삶. 휴대폰 없이는 일을 분배받을 수 없는 지금 일꾼이 되고자 하면 어느새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는 것처럼, 두 명이 꽉 끌어안고 늙길 원하다 보면 어느새 이런 온기 모델 속으로 유인된다. 이런 온기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애를 기른대도 질문받지 않는다. 

 

이희주 작가의 단편 「최애의 아이」의  우미는 최애 아이돌 유리의 아이를 낳아 어떻게 잘 기르고 싶었을까. 아빠의 후광을 두르고 범부들 가운데서 떠오르도록? 


유리의 아이는 스타가 될 것이니 무리로부터 격리되어도 상관없다. 우미는 유난이다, 학대다 같은 말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지내겠지만 아이의 출처가 우미를 견디게 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정상 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애가 다른 애들과 어울리며 무리 짓기를 배울 수 있도록 주류의견을 흉내 내게 둬야 한다. 삶을 차렷시켜야 한다. 거부한다면 애가 무리로부터 내쫓기는 모습을 볼 각오를 해야 한다. 


 

대안적인 관계를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섹스가 자해라고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내 선택은 선택보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내 생활이 자해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사랑받기 뿐이다. 즉 내게 실은 권한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결혼하고, 남자의 유언장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면 된다. 온기 모델 속으로 초대받는 것이다. 나도 그걸 원한다. 남자로부터 사랑을 증명받을 모델이 그것 말고 안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적인 남자에게서는. 결혼을 안 하고 애만 낳으면, 사람들이 쏴대는 넌 헐값에 팔렸어 라는 신호를 받아내야 한다. 아직 자궁이 썰렁한 지금도 이미 충분히 많은 여자친구들이 기습적으로 나를 업신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에겐 그게 없다는 듯이, ‘난 자존심이 있어서.’ 


나로 말하자면, 아버지 손을 잡고 버진 로드에 등장해 남편에게 넘겨지는 결혼식을 하는 편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사랑하는 상대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것이 사랑, 닿을 수 없어도 뿌듯한 게 사랑, 드잡이하지 않고 희생해야 사랑이라고. 나는 조언을 이끌어내는 체질이기 때문에 그런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든 더 연결되려고 하는 건 자기애라고. 그런 사랑도 있지. 그렇게 운치 있는 사랑보다는 인생을 2인용으로 확장시키는 사랑이 하고 싶을 뿐이다. 


 

우미는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아이돌의 애를 낳는 여자이기 때문에 국가에 의해 막 다뤄도 되는 인생으로 찍힌다. 2인용으로 확장 공사를 마친 우미의 인생은 파일럿판 인생인 걸로 협의가 돼 버렸다. 유리는 자기 이름이 쓰이는 저출산 정책에 얼마만큼 관여했을까? 그냥 사인만 하고 잊어버렸을까. 우미는 태어난 아이가 자기 아이일지라도 사랑할 수 없다. 우미의 사랑은 헐값이라니까, 그까짓 걸로 아이를 기를 순 없다.


 

우미는 유리의 아이만을 원한다. 다른 애는 안 된다. 여자가 애를 낳으면 아빠가 누군지 따지고, 아빠가 누군지 몰라선 안 되는 것이 가부장제의 척추이기 때문에 ’바로 그 정자‘, ‘바로 이 몸의 정자’에 집착하는 것은 언뜻 가부장제를 흠뻑 수용한 태도처럼 보인다. 여자의 섹스를 어디까지 허용하느냐 하는 갑론을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여자를 임신시킨 건 누구냐는 질문에 도착한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려면 아빠를 따져선 안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빠를 찾는 주체다. 가부장제의 폐해는 남들까지 아빠를 찾아다니고 외간 남자의 애가 아닌지 따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아빠를 따져도 되는 건 우미 뿐이다. 아빠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우미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우미의 아이이니까. 


 

내가 오로지 남자의 애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열망으로 외국인 싱글맘이 된다면, 설령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해도 나는 실수한 여자로 낙인찍힌다. 거기에 ‘결혼해 주지 않은’ 남자를 원망하지도 않는다면 위신이 위태로워진다. 만일 애가 나처럼 ‘자해 섹스를 하는’ 애로 자란다면 그건 기질이 아니라 결핍 문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피해밖에 몰라서 피해를 동냥하러 돌아다닌다고. 그러나 당신들이 걔의 합의를 믿지 않으면 걔도 당신들의 합의를 믿지 못한다.



세상에 수긍하기 때문에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남자, 같은 이유로 애국자도 아닌 남자, 물살에 몸을 맡긴 남자를 찾아 그 손에 목을 갖다 댈 때 가슴 속의 공이치기가 뇌관을 때리며 뉴스와 공익광고가 다루지 않는 온기가 온몸에 퍼진다. 


반골 남자가 목을 조르게 둠으로써 그가 여자 목조르기를 통해 구조적 억압을 저주하거나 자기 격 떨어뜨리기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요컨대 역할이 겹치는 게 싫다. 애국자들의 자기 연민도 참을 수 없다. 순응적인 남자의 손아귀에 있을 때 나는 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쓰진 않는다. 


 

『토니오 크뢰거』에 남아 있는 엄마의 메모를 발견했을 때, 나는 엄마가 딸을 그렇게 음침한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토니오 크뢰거의 기질을 보여주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내 이름을 적어둔 것이다.  


딸의 어느 구석에서 토니오 크뢰거를 발견한 건지 돌아가신 엄마한테 물어볼 수는 없다. 작중 예술가 떡잎인 토니오 크뢰거는 둔한 미남 한스 한젠을 동경하며 경멸하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후에도 한스 생각에 뒤척인다. 어쩌면 엄마는 한스 한젠에 대한 내 애증을 알아본 걸지도 모른다. 토니오 크뢰거가 감정하는 한스의 미덕은 지배자의 미덕이 아닌 순응자의 미덕이다. 


그런 남자가 돌연사할까 두려웠다. 지금도 두렵다. 


우미의 말에 의하면 좋아하는 남자의 애를 낳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에 나는 자꾸 설명을 요구받고, 그럴 때마다 너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를 고쳐? 그는 못 했지만 누군가는 했다. 바로 그 아이만을 낳고 싶다는 열망이 최초의 충동을 씨앗으로 멋대로 자라나, 날 앞질러 간다.



난 초등학교를 자퇴했다. 내가 낳은 애가 무리생활에 잘 적응할 것 같지 않다. 반대로 유순하다면 그걸 못마땅해하지 않을 자신도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걸 겪지 못하면 나는 어린 토니오 크뢰거인 채로 남게 된다. 한스 한젠을 핥듯이 지켜보는 창작자가 된다. 그러는 대신 한스의 내부에 나를 쭉 짜 넣고 싶다. 한스의 일부를 만들고 싶다. 한스의 아이는 한젠을 미들네임으로 가진 크뢰거가 된다. 당신이 새것 같은 소년을 원하듯 나는 엎어진 모래시계처럼 맹렬하게 나이 드는 남자를 원하고, 내가 만나지 못한 젊은 시절을 만나보고 싶어진다...모래가 다 쏟아지기 전에.  

  


1 <The Majority Report>의 인터뷰.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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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할 권리

<아미아 스리니바산> 저/<김수민> 역

출판사 | 창비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강보라>,<서장원>,<성해나>,<성혜령>,<이희주>,<현호정> 공저

출판사 | 문학동네

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저/<안삼환> 등역

출판사 | 민음사

돈덴

<만리포> 글그림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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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메뉴 하나를 자주 먹는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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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